'세 갈래, 네 갈래' 찢기는 가슴
  • 오윤환(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1.30 10: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탈당 앞의 등불' 열린우리당, 앞길 막막...대통령과 의원들 '오기 싸움' 양상도

오윤환 (자유 기고가)

 
노무현 대통령의 1월23일 신년 연설이 끝나자마자 나온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당의장과 천정배 의원의 코멘트가 가관이다. 정 전 의장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내 삶의 문제와 학교 나온 아들 딸들의 취직이 잘 안 되고 장사가 안 되는 문제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보이지 않는 데 분노하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쏘아붙였다.
천의원도 “과거 정권보다 부동산 값이 더 올랐으면 올랐지 안정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노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꼬집었다.
노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다음날 아침에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탈당한다고 밝혔다. 임종인·이계안 의원에 이어 세 번째다.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난파를 막기 위해 붙들고 늘어져보아야 소속 의원들의 마음과 몸은 계속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떠나고 있는 형국이다. 노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통합신당파들을 향해 “지역주의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라고 일갈했지만 본인의 구심력만 급격히 떨어질 뿐이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열린우리당 소멸은 시간 문제다. 열린우리당에서 뛰어내리는 의원들이 늘어날수록 통합신당파들이 힘을 받게 되고 당을 사수하려는 친노 세력은 탄력을 잃기 때문이다. 설령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지킨다 해도 노대통령과 그 수하 몇 사람만 난파선에 남는 극단적 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대통령이 국정 연설 이틀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쇄 탈당에 대해 “아주 유감스럽다”라면서도 “신당론·통합론 전부를 지역주의라 말하기 어렵고, 신당을 얘기하는 사람 모두 지역주의라 말하기 어렵다”라고 톤을 낮춘 것도 탈당 사태를 막기가 역부족임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신당하겠다는 사람과도 협상하겠다” “대통령 당적 정리가 신당 조건이라면 내가 당을 나가는 게 좋은 일 아니겠느냐”라고 탈당까지 시사한 것은 노대통령의 스타일에 미루어볼 때 엄청난 변화다.
노대통령의 후퇴가 탈당 사태를 저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그의 구상은 열린우리당에 남아서 변화를 꾀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죽었다”라고 단언하는 의원들을 붙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탈당한 의원 3명의 성격이다. 가장 먼저 탈당한 임종인 의원과 그 다음 탈당한 이계안 의원, 최재천 의원의 진로와 노선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임의원은 성향이 민주노동당에 가깝다. 이의원은 현대자동차 CEO 출신으로 자유 시장경제주의자이며 한나라당과 선이 닿는다. 최의원은 그 중간 위치이고 천정배 의원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 이들은 각각 열린우리당 밖에서 새로운 정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임의원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간에 차이가 없다”라며 진보 세력 결집을 모색하고, 이의원은 ‘실용주의 중도 정당’ 창당을, 최의원은 “통합신당은 도로 민주당, 도로 열린우리당밖에 되지 않는다”라면서 우선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염동연 의원 탈당하면 결정타 될 수도


 
이들을 보면 일단 열린우리당 세력이 3분되거나, 열린우리당이 존속할 경우 4분되는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집권당이 창당한 지 3년도 안 되어 갈기갈기 찢기는 참담한 장면이 연출될지 모르는 것이다. 노대통령 직계인 염동연 의원의 탈당은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천정배 의원이 “조난당해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상황이다. 이 길로 가는 것은 멋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죽는 길이며 그것이 당 사수”라고 말했을 정도라면 상황은 이미 심각하다.
연쇄 탈당으로 노대통령과 그 직계들의 처지가 옹색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14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질서 있는 변화’를 꾀한다는 목표가 연쇄 탈당으로 인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소멸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당초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던 기간당원제의 기초당원·공로당원제 변경을 위한 당헌 개정을 “수용하겠다”라고 굴복한 것은 참담한 패배다. 노대통령의 분신인 이광재 의원이 정동영·천정배 두 사람의 탈당 예고와 관련해 “탈당할 사람이 있고 탈당해선 안 될 사람이 있다. 위대한 선장은 함께 침몰하면서 스스로 죽는 게 인생의 길인데, 배를 만든 사람이 스스로 구멍을 뚫는 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맹렬히 비난한 것은 처절하기조차 하다.
열린우리당의 붕괴와 소멸은 그 성격이 최악에 가깝다. 금배지를 선사한 당을 뛰쳐나가는 행동부터가 비윤리적·비인간적인 데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정치공학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열린우리당 사수파인 신기남 의원은 “지금 탈당은 비상한 결단이 아니라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곳으로 가려는 ‘안전한 선택’일 뿐”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신의원의 비난은 이계안 의원의 고백과도 일맥 상통한다. 이의원은 “열린우리당은 죽었다”라고 주장했다. 사망 선고를 받은 여당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한나라당과 대화하는 의원도 있다”라고 했다. 여당 의원이 집권 기간에 아예 야당 의원이 되려 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다.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가 “열린우리당 김부겸·송영길·정장선·임종석 의원 등과 만나 중도 세력 통합을 위한 논의의 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라고 밝힌 것도 ‘마른 땅’을 찾는 열린우리당 의원이 훨씬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국민중심당 신국환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와도 만나 중도 통합 노력을 가시화할 생각이다. 아예 통합 준비기구를 구성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이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 민주당 입당을 타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국민 지지도 10%대의 노대통령과 역시 10% 지지도의 여당 사이의 오기 싸움도 열린우리당 해체를 재촉하고 있다. 연쇄 탈당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염동연·천정배·정동영 의원 등 중진들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이유는 열린우리당 간판을 포기하라는, 노대통령에 대한 압박이 아직 덜 끝났기 때문이다. 당장 당을 뛰쳐나가 보아야 신당을 만들 자금도 부족하고, 당을 만들었다 깨기를 밥먹듯 해온 3김(金)식 능력도 부족한 그들로서는 노대통령을 밀어낸 뒤 열린우리당 울타리에서 신장 개업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믿는 듯하다. 그런데 노대통령과 직계들이 열린우리당 간판을 고집하고 있으니 ‘탈당 위협’으로 고집을 꺾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오기 싸움이 끝난 뒤에 탈당해도 늦지 않다고 여기고 있음직하다.
그러나 이들의 오기가 객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노대통령의 애착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또 열린우리당 간판을 유지하는 것은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정치와 언론에서 손을 떼지 않겠다”라고 해온 의도와도 맞아떨어진다. 열린우리당에 ‘사망 선고’를 내린 소속 의원과 이들의 의도를 ‘지역주의’로 폄훼한 노대통령의 오기 싸움 때문에 지금 이 나라에 집권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