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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을 달군 '불꽃 연기' 한국 영화 얼음장도 녹일까

여우주연상, 전도연에게 찬사 '봇물'...극장가에 새 활력소 기대

JES ㅣ 승인 2007.06.04(Mon) 11: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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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영화 <밀양>으로 2007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 그녀에게 '카멜레온 같은 변신이 돋보였다'는 등의 극찬이 잇따랐다.
 
 
전도연의 연기는 이 대목에서 정말로 기어에 딱 맞물린 듯(click into gear) 제 힘을 발휘한다. 그녀는 쌓인 슬픔과 실망을 내보내고 ‘재생’을 경험한다. 한국의 다른 여배우들 중에서 이런 연기를 납득이 가게 연기해낼 배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힘든 변신 과정을 통해, 그녀는 100%의 광신자가 된다. 심지어 그녀의 아들을 죽이고 수감된 범인(조영진)을 용서하기 위해 만날 결심까지 한다.”
미국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영화 <밀양>에서의 전도연에게 바친 찬사이다. 업계 전문지와 영화 평론지 양쪽에서 미국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버라이어티>는 영화 <밀양>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지만 유독 전도연에게만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7년 칸 영화제가 <밀양>에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주기보다는 전도연에게 종려나무 가지를 바친 것과도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다.
전도연이 받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가치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한국 배우가 국제적 권위의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여배우로 넓혀 보더라도 2004년 장만옥 이후 사상 두 번째 기록. 하지만 장만옥은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프랑스 영화 <클린>에 출연해 영어로 연기를 한 결과 상을 받았다. 동양인 배우가 자국 영화로 상을 받은 것은 전도연이 사상 처음이다. 남자 배우까지 확대해보아도 동아시아 출신의 배우가 상을 받은 것은 다섯 번째. 1994년 중국 배우 거유가 장이모우 감독의 <인생>, 2000년 양조위가 <화양연화>, 2004년 일본의 아키라 유야가 <아무도 모른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전부이다.
어찌 보면 전도연에게는 행운이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일단 이창동 감독을 만난 것이 첫 번째 행운이었다. 지난해 고현정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의 여인>에 출연했을 때 “유럽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싶은 게 아니냐”라는 우스개가 돌았을 정도로, 국내에서 한국 배우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데려갈 수 있는 감독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이미 전설이지만 여전히 현역인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박찬욱·홍상수·김기덕 감독 등 국내 흥행과는 상관없이 상당한 시간에 걸쳐 유럽 무대에서 작품의 힘을 인정받은 감독들이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이런 면에서 국내 최고의 수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우선 데뷔 작품인 1997년 작 <초록물고기>가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했고, 2000년 <박하사탕>은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세 번째 작품인 <오아시스>는 베를린 영화제 특별감독상과 신인여우상(문소리)을 수상했고, <밀양>은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감독으로 데뷔한 뒤 네 작품을 모두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권에 올려놓았다. 국내 어떤 감독도 이루어내지 못한 성과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후 귀국한 배우 송강호 ·전도연, 이창동 감독(왼쪽부터).  
 
이창동 감독 작품·장만옥과의 친분도 ‘한몫’

이쯤 되면 이창동 감독이 유럽 유명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갖고 있는 성향을 꿰뚫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칸이나 베니스 같은 세계적 영화제들은 낯선 감독의 영화에 상을 주지 않는다. 한 번 한 영화제에서 수상한 감독이 그 영화제에서 다시 수상하는 일도 흔치 않지만, 3대 영화제에 첫선을 보인 감독에게 상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고른 것은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었다.
두 번째 행운은 심사위원 가운데 포함된 장만옥의 존재. 2004년 여우주연상 수상자 자격으로 심사위원진에 이름을 올린 장만옥은 유럽 출신의 심사위원들에 비해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이고, 지식도 풍부하다. 특히 전도연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했다는 후문이다.
전도연과 장만옥은 시상식 직후 칸 교외에서 VIP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파티에서도 자매처럼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다른 어떤 행운도 전도연 자신의 타고난 연기력보다 큰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 그리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 전도연은 출연작마다 만만찮은 울림을 남겼다. 영화 데뷔작인 1997년작 <접속>으로 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영평상 신인상을 휩쓸었고 박신양과 공연한 <약속>(1998)에서의 여의사, 이병헌과 공연한 <내 마음의 풍금>(1999)에서의 나이 많은 초등학생 역으로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라는 평판을 굳혔다.
이어 <해피엔드>(1999)에서는 불륜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에서는 순진한 학원 선생,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서는 비정한 폭력 세계에 몸담은 술집 여성 역을 맡았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에서는 조숙한 숙부인으로, <인어공주>(2004)에서는 해녀와 도시 회사원 1인 2역을 여유 있게 연기해냈다. 동년배의 어떤 배우도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녀의 연기력이 정점을 이룬 것은 바로 <너는 내 운명>(2005)이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 종업원의 순수한 사랑으로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밀양>은 그녀가 데뷔 17년 만에 출연한 10번째 작품이다.
외신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버라이어티>의 선임 평론가이며 아시아 영화 전문가인 데렉 엘리는 “카멜레온 같은 변신이야말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인정했고 영국의 <스크린 데일리>도 “그녀가 없었다면 <밀양>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도 칸에서 열린 시사회 이후 “역대 칸을 빛낸 여배우 대열에 끼었다”라며 여우주연상 수상을 점쳤을 정도이다.
강수연이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상황과 전도연의 수상 사이, 20년 동안 한국 영화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질적이나 양적으로 엄청난 발전이 있었지만, 2007년은 한국 영화계에 암운이 짙게 드리운 상황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지난해 한국 영화가 100편이 넘는 제작 편수로 기록적 팽창을 했다면 올해는 가는 곳마다 한숨 소리이다. 2007년 극장에 올려진 한국 영화 가운데 한동안 ‘대박’의 기준이 되었던 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전도연의 수상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지만 일단 글자 그대로 <밀양> 한 편만은 확실히 ‘전도연 효과’를 누릴 것 같다.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 3>가 전체 스크린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관객을 쓸어 모으는 사이 첫 주말 흥행에서 고전해 “종영 전까지 100만 관객 동원도 어려울 것 같다”라는 평이 있었지만 전도연의 수상 이후 <밀양>은 급속도로 상영관을 늘려가고 있다. 그 하나만이라도 잘되기를 기원하는 것이 대다수 영화인들의 바람. 아직 ‘제2의 전도연’을 말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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