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료, 제정신이 아니야”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7.0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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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큐 영화 <시코>로 ‘시끌’…“쿠바보다 못한” 의료 시스템 신랄히 까발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당신이 총을 메고 직접 이라크에 가보라”고 내뱉는 독설가다. 무어 감독은 이번에 ‘미국은 쿠바 수준의 3류 국가’라고 규정하고, 제약회사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은 현직 정치인들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고발했다. 무어는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공장을 폐쇄하면서 발생한 지역 사회의 문제점을 거대 기업의 횡포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 그리고  9·11 뉴욕 무역센터 테러 사건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화씨 9·11>을 통해 이미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거장으로 손꼽히는 감독이다. <화씨 9·11>은 칸 영화제에서 그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화제작이다.
그는 이번에 미국 의료 시스템을 고발한 <시코>로 다시 한번 미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환자’ ‘정신병자’ ‘변태자’를 뜻하는 영어 ‘시코’(SICKO)는 조금 오래된 영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신조어다. ‘병들다’는 영어의 ‘시크’(Sick)와 스페인어의 어미 ‘오’(O)를 붙여서 만든 단어이거나 정신병자를 뜻하는 ‘사이코’(Psycho)의 변형이라는 설명도 있다. 무어가 자신의 작품에 ‘시코’를 타이틀로 붙인 것은 미국 의료 시스템이 병들었거나 제정신이 아니라는 의미인 동시에 의료계 정상에 있는 미국의 거대 기업이나 개인을 변태자에 비유한 독설인 것은 분명하다.
<시코>는 무어가 2년6개월에 걸쳐 제작한 2시간3분짜리 영화다. 무어는 이 영화에서 4천7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의료 무보험자와 불리한 의료보험 약관에 우는 다수 미국인의 고통과 불행을 다루면서 이들 위에서 이익을 챙기는 의사와 의료보험 회사 및 제약회사의 횡포, 그리고 이들로부터 막대한 정치 자금을 받는 미국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무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 의료 시스템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서 보듯 쿠바 바로 위인 37위에 머물러 있고, 이는 세계 최고 부자 나라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 수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에는 쿠바와 같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미국 정치권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무어는 그의 ‘시코 홈페이지’에서 병든 미국 의료 시스템을 고치는 처방전을 제시했다. 첫째는 전국민 평생 의료보험 제도 채택, 둘째는 의료보험 회사의 이윤 제거, 셋째는 제약회사의 부당 이익금 발생 제거 등이다. 이는 사회보장 제도가 잘되어 있는 프랑스,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영화 <시코>는 이 세 가지 처방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는 셈이다. 영화 비평가들은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무어를 좌파로 규정한다. 보수 우익들은 그를 ‘빨갱이’라고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반면에 진보 성향의 언론 등은 그를 미국 의료 개혁의 기수라고 추어올린다. 미국에서 무어와 <시코>를 둘러싼 좌우 보수-진보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시하는 증거들이다.
영화 비평가들은 무어의 <시코>를 다큐멘터리이자 코미디이고 가족 드라마이자 공포 영화라고 평한다. 철저한 현장주의와 사실 위주의 구성에 관람자들이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믹한 사실을 첨가하고 있어서다.

 

대선 앞둔 정치권에도 큰 영향 미칠 듯


지난 6월29일 미국 전국 개봉에 앞서 23일에 실시된 뉴욕 시사회에는1천5백명의 관람자가 몰렸으며 상당수는 입장을 하지 못해 영화관 밖에서 모니터로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15분간에 걸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웬만해서는, 감동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굳을 대로 굳은 일부 영화 비평 기자들도 <시코> 시사회 도중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시사회로 보아서는 <시코>가 대박을 터뜨릴 것 같은 분위기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는 다큐멘터리를 극영화 수준으로 구성하고 편집한 무어의 영화인으로서의 재능이 이끌어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른 신문은 주저하지 않고 무어를 천재라고 불렀다.
<시코>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부분은 미국 의료 제도에서 치료를 거부당한 미국인 환자 3명을 쿠바로 데려가 치료받게 한 일이다.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 혁명 후 사회주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무료 교육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다. 이들 3명의 환자들은  9·11 테러 사건 직후 현장 처리 작업에 참가했다가 불충분한 안전 대책으로 질병을 얻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의료보험이 없거나 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회사가 치료비 보상을 거부한 사람들이다. 무어는 플로리다 주에서 작은 배를 타고 우선 쿠바 섬에 위치한 관타나모 미군기지로 찾아갔다. 거기서 확성기로 이들 환자가 동행한 것을 알리고 관타나모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포로에게 시행하는 것과 똑같은 의료 제공을 부탁했다. 그러나 접근이 거부된 데 이어 기지에서 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무어는 얼른 관타나모를 벗어나 바로 아바나로 향했다. 동행한 환자들은 쿠바 의료 당국으로부터 7명의 전문의가 참가한 가운데 진료를 받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진료였다고 증언한다.
무어의 쿠바행은 <시코>가 완성되어 올해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되기 전부터 미국 내에서 문제가 되었다. 우선 미국 재무부가 무어를 애국법 위반과 정부의 쿠바 여행 제한 조처를 위반한 혐의로 조사에 나섰다.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선 프레드 톰슨 상원의원은 무어가 미국의 무역 제재 대상국인 쿠바를 방문한 것은 미국법을 어긴 반역자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미국 보수파를 대변하는 뉴욕 포스트는 “피델 카스트로로 하여금 미국 의료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맡기자는 말이냐”라며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이 신문은 심지어 무어 자신이 ‘시코’라고 말하고 “그가 돈이 없다면 치료를 위해 의료비를 대주겠다”라고 했다.
무어는 웹사이트 ‘시코 닷컴’을 통해 미국 재무부에 공개 편지를 보냈다. 그는 쿠바 여행 몇 주 전에 쿠바 여행 허가를 신청했으나 재무부로부터 아무런 회신이 없어서 항해를 결행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자신의 쿠바 방문은 미국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어와 <시코>를 둘러싼 이같은 논란이 앞으로 미국 정치에 의외의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고 정치 분석가들은 점치고 있다. 특히 급진 좌파 성향이 강한 <시코>가 던지는 메시지는 보수 공화당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민주당마저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도 의료 제도 개혁을 정강 정책으로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어가 주장하는 것처럼 쿠바나 유럽 복지 국가 수준의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도 <시코> 앞에 서면 진보 색채가 퇴색하고 오히려 보수 정당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무어는 특히 민주당의 선두 주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 대한 비판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클린턴 의원이 의회에서 ‘부시의 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데 이어 제약회사의 로비성 정치 헌금을 받으면서 의료 개혁의 의지를 상실했다는 내용이다. 미국 언론들은 무어의 이같은 클린턴 비판은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무어의 <화씨 9·11>이 지난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지는 못했지만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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