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낙관에 ‘북핵’ 산통 깨질라
  • 엄태암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미국연구실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07.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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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실속 있는 진전’ 없어…한반도 평화 체제 등 때이른 논의 ‘걱정’

 
지난 1989년 여름, 동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붕괴해가던 모습을 바라보며 미국의 미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군주제와 파시즘, 공산주의 등 여타 이데올로기를 차례로 무너뜨려온 경쟁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미국인은 바야흐로 ‘역사의 종말’을 목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후 옛 소련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자 1990년대 초 이후 국제 정세를 평가하는 숱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최소한 향후 수십 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 이후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기울여온 군사력 변환 등 여러 가지 노력은 오히려 냉전 당시의 물질적·정신적 투자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미국은 언제나 인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에 선 최후의 인간임을 자부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라크 전장의 수렁에서 처한 진퇴양난의 곤경은 미국의 조야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탈출구를 갈망하게 하고 있다. 소신과 패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지휘하던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쟁으로 국민의 피로가 심할 것이라며 사실상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얘기가 되었다. 이라크 저항 세력의 급조 폭발물(IED)로 인한 미군과 험비 차량의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전개되는 병력 철수를 둘러싼 공방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국가 안보를 소홀히 혹은 안이하게 다룬 대가를 부시 행정부가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인데, 이는 철저한 대비가 결여된 정책 추진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지난 7월18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토의가 진행되기보다는 후속 추진 일정을 담은 언론 발표문에 합의하는 것을 성과로 삼아 폐막했다. 합의된 후속 추진 일정은 8월 말 이전 한반도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에너지 협력, 동북아평화안보 메커니즘 실무그룹 회의를 각각 개최해 공동의 컨센서스를 이행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그것은 9월 초 2단계 6차 6자회담 회의를 통해 실무그룹 보고를 청취하고, 컨센서스 이행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며, 동북아 안보 협력 증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장관급 회의를 조속히 개최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북한, “경수로 들어와야 한다” 주장 계속
내용인즉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사항을 이제부터 하나씩 논의해 나가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진전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같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그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인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던 6자회담 과정이 재가동의 모멘텀을 회복했다는 점이 바로 성과이며, 이번 회담에 참가한 어느 누구도 중요한 합의 도출을 목표로 삼고 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숙원이던 BDA 자금 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한 번 회의에 참석해주고 북한이 이처럼 환대를 받는 지경이라면 앞으로 어떤 양보와 시혜를 베풀어야 북핵 문제가 해결될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2·13 합의에서는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감시 및 검증 활동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의 복귀를 초청하며,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는 초기 조처가 완료되고 난 이후의 이른바 ‘다음 단계’에서 북한의 다른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 감속로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해 현존하는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가 추진되면서 도합 1백만t에 이르는 중유가 제공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 6자 수석대표 회담 직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HEU)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현존 핵 계획, 다시 말해 영변 핵시설을 가동 중단하고 무력화해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며 그러자면 경수로가 들어와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은 북한 핵문제의 앞날이 참으로 어둡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북한에게 핵 프로그램은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와 경제 원조의 대가로 양보하는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40여 년에 이르는 북한 핵무기 개발의 역사와 영변 원자로 등 핵시설이 북한 주민을 위한 전기 공급 용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오로지 북한 정권과 체제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실로 중요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 부분적으로 뒤지기 시작한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군사 전략적 필요성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김계관 부상의 주장에 대해 “북한이 본래 핵시설을 만들 때 전력 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경수로 요구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당연한 것으로 봐야 한다”라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의 최근 발언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지나치게 친절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한 이후 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의 현재 입장인 이상 김부상의 주장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더라도 북핵 문제 해결과는 별개 문제인 양 한반도 평화 체제와 종전 선언 논의가 난무하는 최근 국내의 현실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지난 7월20일 발효된 해양기본법에 근거해 후유시바 데쓰조(冬紫鐵三) 현 국토교통상이 수장을 겸임하는 해양상(해양담당 장관)을 신설하고 독도 등 해양 영토 문제를 포함하는 해양 정책을 총괄하도록 정비했다. 지난해 4월 한국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탐사를 추진한 사실과 지난해 7월 독도 주변 한국측 영해와 EEZ 내에서 실시된 한국측의 해양 과학 조사를 2006년판 방위 백서에서 이미 기술한 데 이어 2007년 방위백서에서도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표기하며 개정 헌법 초안 전문에 독도를 집어넣을 정도로 집착이 강한 일본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이며, 그에 따른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중국 해군 함정이 지난 7월9일 스프래틀리 군도(남사 군도) 인근 해역에서 베트남 어선에 발포한 것은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들이 영유권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했던 지난 1997년 12월의 ‘아세안+3’비공식 정상회담의 합의를 무위로 만들어버린 사건이다. 동북공정과 이어도 사건에 이어 우리의 서해상 가거초(과거명 일향초) 제2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대해 영해 문제를 시비하는 중국과는 앞으로 어떤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을까.
비전통·비군사적 안보 위협의 종류와 심각성이 나날이 증대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안보 위협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신중하고도 철저한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통일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국제화 시대의 밝은 면에 너무 취해 위기 대처에 소홀한 부분은 없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를 당하고서야 여권법을 손질하는 식의 안보 의식으로는 앞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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