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독 묻힌 테러 ‘큰손’
  • 조홍래 (언론인·전 연합뉴스 외신국장) ()
  • 승인 2007.08.1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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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의 실체 / ‘미국 파괴’에 올인…“빈 라덴과 결별은 결코 없다”

 
“미국이 이슬람을 인질로 잡고 있다. 탈레반의 최종 목표는 미국을 파괴해 그 존재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것이다.” 탈레반 지도자인 모하메드 오마르가 2001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정신 세계는 이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인질로 인식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인질로 삼는 모순된 행위에서 오마르의 비뚤어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1959년 칸다하르 부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 때문에 오마르는 어려서부터 가사를 맡았다. 그때부터 그는 험한 세상과 부딪히면서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운명과 비슷한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9·11 사태 때문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오마르의 지원을 받아 9·11을 자행하고 오마르의 보호 속에 아프가니스탄에 은신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오마르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 정권을 세웠다. 
 
오마르와 빈 라덴의 인연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계속된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동지가 되어 소련군에 저항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9·11 주모자로 지목하지만 오마르는 이를 부인한다. 미국이 자체 정보 수집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빈 라덴에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오마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이슬람을 인질로 삼은 행위에 해당한다. 적어도 오마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는 따라서 미국을 파괴하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는 것도 오마르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CIA의 음모설과도 연관된다. 즉 정보 수집에 실패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9·11의 배후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케네디의 데탕트에 반대한 CIA가 케네디 암살을 음모했다는 설과 유사한 사례이다. 서방 세계에서 오마르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9·11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은 6년간의 집권 기간 중 아프가니스탄의 고질적 부패를 척결하고 혼란을 진정시킨 야심적 지도자가 왜 잔혹한 테러리스트로 변모했는지에 대해 희미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가 다수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어쩌면 9·11 배후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와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는 집권 당시 국가 원수나 대통령 같은 통속적 호칭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의 타이틀은 ‘신자의 사령관’(Commander of the Faithful)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이 호칭에 한없이 환호한다. 그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고 원칙에 충실하다는 반증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마르와 빈 라덴의 관계는 단순한 게릴라 전사로서의 동지 차원을 능가한다. 오마르는 빈 라덴의 큰 딸을 아내로 맞이했고 빈 라덴은 오마르의 딸을 네 번째 아내로 삼았으니 이들의 혈연 관계는 한국식 촌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탈레반은 이런 관계를 부인한다.
오마르를 만난 서방 기자는 없다. 그의 외부 세계 접촉은 자신이 임명한 자칭 외무장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대다수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오마르는 이름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직접 본 사람들은 오마르가 턱수염을 기르고 검은 터번을 쓴 40대의 건장한 남성이라고 말한다. 소련군과 싸울 때 파편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지금은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 은신하고 있지만 탈레반 집권 당시 오마르는 수도 카불에서 열리는 원로회의에 참석할 때 말고는 남부 도시 칸다하르를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그가 거주한 칸다하르의 집은 빈 라덴이 지어준 것으로 제법 큰 저택이다. 두 사람은 위성 통신을 이용해 거의 매일 대화한다. 낚시를 함께 한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오마르는 집권 시절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은 가급적 집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취학과 취업을 금지했다. 간통을 한 여성에게는 돌로 쳐 죽이는 형을  가했다. 남성 동성애자는 벽돌담으로 깔아 죽이고 도둑의 손은 잘랐으며 살인자는 희생자의 가족으로 하여금 공개 처형하게 했다. 개종한 자는 사형으로 다스렸다.

“미국 궤멸 계획, 신의 뜻 따라 진행 중”
오마르는 2001년  BBC 및 미국의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A)’와 회견했다. 물론 인공위성을 통해서였다. 이 회견 내용은 오마르의 내면을 일부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말한 ‘미국 파괴’가 무엇을 의미하며 구체적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 계획은 신의 뜻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이다. 이 과업은 거창한 것이다. 인간 의지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것이다.”
그는 또 빈 라덴이 미국을 향해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위협한 데 대해 “우리의 목표가 미국의 소멸인 만큼 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라고 말했다. 빈 라덴을 포기하거나 추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이슬람의 자존과 아프가니스탄의 전통에 관한 문제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VOA와의 회견에서 언급한 두 가지 약속은 흥미를 끈다. 그는 신의 약속과 부시의 약속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신의 약속은 지구상 어디에서나 신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며 부시의 약속은 신에 발각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은신처가 존재하지 않는 악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오마르는 미국이 이슬람  세계를 인질로 잡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미국은 이슬람 국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슬람을 따르고 싶어하지만 미국이 이를 방해한다. 미국 지배 하의 이슬람 정부들은 이슬람 추종자들을 체포·고문·살인한다. 이는 미국이 하는 짓이다. 미국은 이슬람을 공격하는 악을 창조했다. 나와 빈 라덴이 죽은 후에도 미국의 악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미국은 여타 세계, 특히 이슬람 세계에 미국식 제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
그는 파키스탄 기자와의 회견에서는 더욱 끔찍한 말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절반이 파괴되었다. 남은 절반이 파괴되는 한이 있어도 빈 라덴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오마르와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 두 사람은 언젠가 미국을 패배시키고 신의 가호를 받는 평화로운 아프가니스탄 건설을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무고한 한국인들을 납치하고 생명을 담보로 협상을 하는 지금의 모습은 그들의 이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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