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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녹으니 벌떼처럼 달려드네

온난화로 해빙 빨라지자 강대국들 ‘영유권 전쟁’ 러시아·미국·캐나다 등 풍부한 해저자원 노려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ㅣ 승인 2008.04.07(Mon) 16: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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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럽연합위원회가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구 온난화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환경 재앙을 우려하던 그동안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보고서는 “지구온난화가 세계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지난 3월10일 영국의 가디언은 EU 위원회의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하비에르 솔라노 외교 대표가 중심이 되어 작성해 EU 정상회의에 제출한 이 보고서는 “이대로 온난화가 진행될 경우 기근이나 역병이 만연하고 식량이나 물의 부족이 심각해져 세계 곳곳의 사회적인 위험도가 증가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내용도 추가되었는데 북극해의 빙하가 녹으면서 선박의 이동 범위가 넓어졌고 이는 해저의 석유나 천연가스 등 자원 쟁탈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북극해의 빙하는 최근 심각하게 녹아내리고 있다. 덴마크 국립우주센터의 페데르센 교수는 “북극해의 빙하는 과거 10년간 연간 약 10만㎢씩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무려 3백만㎢나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여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대륙붕 연결’ 입증하면 자원 개발권 인정받아

빙하가 녹아내리고 접근이 용이해지자 그동안 북극을 ‘자원의 보고’라며 호시탐탐 노리던 주변국들이 달려들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컨설팅업체인 우드 맥킨지에 따르면 이미 생산이 시작된 알래스카 프로도 만의 유전을 포함한 북극해의 자원 매장량(원유 및 천연가스 포함)은 석유로 환산했을 경우 2천3백30억 배럴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에는 1천6백억 배럴 정도가 추가로 묻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의 총 석유 소비량이 지난해 약 3백억 배럴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1982년 제정된 유엔 해양법은 북극해를 ‘인류의 공통 자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극해 주변의 5개국(러시아,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은 일반적인 해저 영유권의 규정대로 해리 2백 마일까지만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2백 마일을 벗어난 북극해 소유권은 인정받지 못한다.

   
 
ⓒREUTERS=연합
 

하지만 해양법에는 예외 조항이 있다. 만약 근처에 있는 해양 대륙붕이 자국의 대륙에서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면 기존의 경제수역에서 1백50마일을 확장할 수 있다. 게다가 추가된 지역에 대한 자원 개발권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빙하 때문에 자세한 조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고, 이들 5개국은 서로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북극해를 노려왔다.
그런데 이 카르텔을 러시아가 깨버렸다. 북극해와 2분의 1 정도의 경계가 맞닿아 있는 러시아는 지난 200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엔 대륙붕획정위원회(CLCS)에 자신들의 대륙붕을 확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위원회는 러시아에게 2009년까지 과학적인 증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해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지난해 7월 약 1개월 반에 걸친 심해 해저 조사를 수행했다.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과 미니 잠수함 ‘미르’ 2대가 북극해 중심부의 로모노소프 해령과 그 주변의 1백20만㎢을 탐사하면서 이 주변이 시베리안 연안으로부터 연결되는 대륙붕이라는 증거를 채취했다. 러시아의 정치 전문 주간지 <노보예 브레먀>는 “이번 조사로 러시아의 영역은 1백20만㎢가 넓어질지도 모르는데 이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3국을 합친 크기다”라고 보도했다. 이 조사는 내년에 한 번 더 이루어질 예정이다.

조사단을 이끈 사람은 탐험가 출신인 아르투르 칠린가로프 국가 두마(하원) 부의장이다. 그는 탐사가 끝날 무렵 북극점 아래의 심해 4천3백2m 지점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는 ‘쇼’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2월21일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북극 해저에 러시아 깃발을 꽂은 잠수함 승무원들에게 국가 최고 훈장인 ‘러시아 연방의 영웅’을 수여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북극해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행동이 유엔 해양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국제 해양법재판소의 아나톨리 코로드킨 재판관은 모스크바의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엄격한 국제법의 범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북극해 지역의 어느 국가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며 단지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선제 행동 나서자 미국은 “작전 기지 건설”

러시아의 이런 행동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국가는 캐나다이다. 러시아가 북극점 심해에 국기를 꽂은 날 캐나다의 피터 멕케이 외무장관은 “지금이 15세기도 아닌데 깃발을 꽂았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논평했다. 캐나다는 이전부터 로모노소프 해령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해왔다.

동시에 적극적인 행동에도 나섰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 캐나다 북단에 위치한 바핀 섬에서 심해 광산을 건설할 계획을 밝혔다”라고 보도했다. 약 1억 캐나다달러(한국 돈 1천억원)를 투자하는데 누나부트 준주의 군사 훈련 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광산 시설에 투자하는 것과 동시에 북방 항로의 군사 경계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캐나다는 이미 또 다른 이해 당사국인 덴마크와 북극해를 놓고 맞선 경력이 있다. 캐나다와 덴마크는 1.3㎢에 불과한 나레스 해협의 ‘한스 섬’이라는 무인도를 두고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단은 1973년 한스 섬의 영유권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효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양국이 아무런 합의도 하지 않은 채 별 문제로 간주하지 않고 나레스 해협의 중간 지점을 양국의 국경선으로 확정했다.

   
 
ⓒAP 연합
 

하지만 1984년 덴마크의 그린란드 담당 장관이 한스 섬에 상륙해 덴마크 국기를 세우면서 ‘덴마크에 어서 오십시오’라는 쪽지를 남겼고, 이사건은 다시 한스 섬을 외교적 문제로 불거지게 만들었다. 최근까지도 갈등은 진행 중이다. 캐나다의 통신사 캐나다 프레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7월20일 캐나다의 그레이엄 국방장관은 덴마크측에 아무런 연락 없이 한스 섬을 방문해 덴마크를 자극했다고 한다. 덴마크는 그 답례로 그 다음 달인 8월 한스 섬에 군함을 파견했다.

한스 섬에 관한 결론은 북극해 주위의 영토가 어느 국가의 소유인지를 가늠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두 국가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그만 무인도가 이처럼 갈등의 원인이 된 데에는 한스 섬을 국토로 인정받으면서 생기는 자원 탐사권과 더불어 북극해가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인 ‘항로’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지도를 가로로 보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북극해를 중심으로 놓고 지구본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로로 보았을 때 멀게 느껴지던 아시아와 유럽이 생각했던 것보다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북극해가 녹으면서 그동안 이용할 수 없었던 북극해의 북서 항로가 조만간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북서 항로를 이용하면 유럽과 아시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이동 거리가 대폭 줄어든다. 부산항만공사의 ‘중장기 발전 전략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부산항과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 간의 컨테이너선 운항 시간은 24일이지만 북서 항로를 이용할 경우 10일 안팎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이유로 북서 항로가 세계 교역의 중심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리고 한스 섬이 위치한 나레스 해협은 이 북서 항로를 잇는 중요 길목이다.

미국도 움직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10월19일 “미국의 해안경비대가 북극 지방에 처음으로 작전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기지는 알래스카 주 노스슬로프 연안에 건설될 예정인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방 경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지는 계속 확장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도 북극해의 영유권을 주장할 목적으로 증거 수집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미국의 해양학자 팀은 해안경비대의 쇄빙선인 ‘힐리’를 타고 알래스카 북부의 해저 조사를 끝냈다. 그리고 조사 지역에서 미국의 북극해 영유권과 관련해 여러 가지 과학적인 증거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파탐지기를 사용한 조사에서 수만㎢의 해저가 미국의 영토로 편입될 가능성이 시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해저에는 방대한 양의 에너지 자원과 광물 자원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뉴햄프셔 대학의 해양학자이자 당시 조사팀에 참여했던 래리 마이어는 “이번 여름은 빙하의 후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에 이전에 이루어졌던 조사보다 수백km 후방까지 해저를 조사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움직임은 미국의 관찰 대상이다. 지난해 5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석유와 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된 북극해 지역이 러시아에 포함되지 않도록 만든 해양조약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에 즉시 가맹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 잠수함이 국기를 꽂은 날,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러시아가 북극점 아래에 국기를 꽂으며 요구한 북극해 영유권 주장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한쪽에선 온난화 걱정, 한쪽에선 제 배 채우기

북극해의 자원이 곧장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인 수준을 고려했을 때 북극해의 자원을 개발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원유의 경우 2천m가량의 심해저에서도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심해 유전 생산 비용도 고유가가 유지되면서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천연가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현재 북극해에서 확인된 자원 중 85%는 천연가스로 알려지고 있는데 수송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라고 전망했다. 천연가스를 수송하려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액화 플랜트를 가동해야 한다. 하지만 북극해에서는 두 가지 모두 건설하기 어렵다. 원유의 경우 생산은 그럭저럭 가능하지만 유전에 얼음을 방지하는 기술 등 북극권에서 필요한 기술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 5개국의 자원 전쟁은 지금보다는 먼 훗날을 내다본 포석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에너지 자원보다는 항로를 둘러싼 상업적·전략적 요충지로서 가지는 매력이 단기적으로 더욱 끌린다는 평가가 많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해 12월 세계 1백90개국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열어 ‘발리 로드맵’을 채택했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극해의 빙하가 녹는 것을 두고 한쪽이 걱정하는 동안 옆에서는 이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모순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렇게 말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북극의 차가운 얼음 아래에서는 뜨거운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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