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달려 남은 건 빈손뿐”
  • 김성종 (물류신문 취재팀장) ()
  • 승인 2008.06.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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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노동자들, 고유가 감당 못해 ‘운송 거부’…“일하면 할수록 손해” 유서 남기고 자살도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유가 인상에도 운송료를 올리지 못해 힘든 상황이라고 말한다.

치솟는 기름값에 직격탄을 맞은 곳은 화물 운송업계다. 더 이상 고유가를 감당할 수 없다며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운송 거부에 나섰다. 이들의 파업은 전국 30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누구는 파업하고 싶어서 하나요? 일할수록 손해인데 방법이 없어요. 경유값은 조만간 2천원을 넘는다고 하지, 그나마 있던 유가 보조금도 6월이면 끝나지. 대통령은 아무 대책도 없지. 파업 아니라 파업 할배라도 차 세우는 수밖에 없어요.”

파업 현장에서 만난 한 젊은 운전기사는 속사포같이 불만을 쏟아냈다. 파업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운전대를 잡으면 신용불량자요, 운전대를 놓으면 실업자’가 되어 버리는 기막힌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는 결국 비극을 불렀다. 지난 5월23일 부산 남구 용당동에 사는 지입차주 강 아무개씨(40)가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 일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박상현 화물연대 법규부장은 “지금 화물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앉아서 죽으나 파업하고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파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 이들을 파업과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5월28일 광주 하남공단 삼성전자 앞. 이 지역 화물연대 광주지부(지부장 김성호) 1지회 소속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벌써 10일째 운송료 인상을 위한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상대는 삼성전자. 이들은 지난 2005년에도 삼성전자를 상대로 파업을 벌여 하남공단을 마비시킨 적이 있다. 2년여 만에 다시 천막 농성이라는 극한 방법을 택한 것은 기름값 인상 때문이다.

민노총 광주본부 문형숙 사무부장이 제시한 운송 경비 내역을 보자. 광주에서 광양항까지 삼성전자 제품을 운송할 때 화물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운송료는 총 18만5천원. 여기서 기름값 15만5천원, 톨게이트비 1만2천4백원, 식대 1만원, 수리비 2만8천원, 보험료 1만원, 지입관리비 1만5천원을 빼면 오히려 5만4백원이 적자다. 감가상각비와 생계비를 포함하면 적자는 훨씬 늘어난다.

“하루 18시간씩 시키면 시키는 대로 회사의 어려운 사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새벽잠 마다않고 운전대를 돌렸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도 오르고 있는 기름값 때문에 화물차에 불을 질러야 할지 내 몸에 신나를 부어야 할지 갈등하고 있다.” 컨테이너 차량을 운전한다는 박종태 씨의 말은 비장하다 못해 처절했다.

가장 많은 화물이 움직이는 서울-부산 간 컨테이너 운송비 내역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재 부산-서울 간(5백㎞) 고시된 표준 운임은 59만원. 그런데 화주들이 관례적으로 차주들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80% 수준인 34만9천원이다. 이 금액을 가지고 운송비(소모성비, 직접비, 별도비 등)를 계산해보자. 먼저 5백㎞를 운행하는 데 들어가는 기름값이 36만2천2백50원. 이미 기름값에서부터 운송비를 초과한다. 여기에 톨게이트비 3만4천원, 하루 두 끼 식대 1만원, 숙박비 3만원을 합하면 43만6천2백50원이 나온다. 8만7천2백50원이 적자다.


계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차량 할부금, 보험금 등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1억원가량의 차량을 구입한 경우 대략 5년 기한으로 할부금을 낸다. 한 달에 약 1백80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보험금 약 22만원, 기타 비용 5만원을 포함해 차량 관련 비용만 2백7만원에 이른다. 가족들의 생계비를 제외한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물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기적’이다.


“운전대 잡으면 신용불량자, 놓으면 실업자 되는 헛방 인생” 개탄

결국 화물차 운전자들은 마이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 운행’을 할 수 밖에 없다. 무리하게 밤 운송을 고집하거나 내리막길에서 기어를 중립에 놓은 채 주행하는 것이다. 차 안에 기름이 남아 있기라도 하면 집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밤새 기름을 빼가는 ‘기름 도둑’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인 5월29일 오전 10시. LG전자 경남 창원공장 앞 도로에는 파업 중인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 1백70여 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곳의 분위기 역시 광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파업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던 한 운전기사는 “기름값은 1년 새 ℓ당 1천1백원에서 2천원 안팎으로 올랐는데 운송료는 그대로다. 일해도 남는 것이 없다. 우리보고 운전대 놓고 죽으라는 겁니까?”라며 반문했다.

이들은 LG전자의 물류 자회사인 하이로지스틱스측에 운송료 23.4% 인상을 요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5% 내외의 인상안이었다. 화주들은 경쟁력 차원에서 물류비 인상은 치명적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물류비 절감이라는 대명제 앞에 운전기사들의 생존을 위한 주장은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화물연대 울산지부 강북지회 오덕환 대의원은 “울산 와서 헛방이란 말을 배웠는데 그것이 딱 우리 꼴”이라며 자조 섞인 말을 했다. 차량수리비, 보험료, 밥값 다 내 돈 들여가며 일해야 하니 차를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울산에서 만난 화물차주 장 아무개씨가 털어놓는 현실은 더 어두웠다. “위험을 무릅써가며 2~3일 꼬박 일해도 수중에 남는 돈이 5만원도 되지 않는다. 그거라도 현금으로 받으면 낫다. 운임비를 3개월짜리 어음으로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먹고사나?” 운전기사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유가 인상으로 가뜩이나 울고 싶던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빰을 때려준 것은 정부였다. 숨통을 겨우 이어주던 유가 보조금마저 삭감한 것이다. 지난 3월10일 정부는 ℓ당 3백42원을 지급하던 유가보조금을 64원이나 깎았다. 유류세를 10% 내리면서 사업용화물차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세율 인하율만큼 뺀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기름값 인상과 유가 보조금 삭감이라는 이중고에도 운송료 인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원가가 오르면 화주나 중간 알선업자인 운송업체도 타격을 입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일 밑단의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피해의 대부분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지입제 운영이라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운전기사들이 운송료 인상의 열쇠를 쥐고 있는 화주기업을 상대로 파업을 하는 것은 현행법 아래서는 불가능하다. 파업에 나선 운전기사들이 자가 차량을 소유한 일종의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자(운전자)가 사업자(화주)를 상대로 파업을 벌이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화물 노동자들의 불만은 유가 상승과 유가 보조금 삭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원가가 오르면 그 원가에 상응하는 운임을 받는 것이 당연하나 그런 구조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움직임을 취하려고 해도 이는 단합의 행위로 비칠 수 있어 교섭조차 할 수 없다. 물류 시장의 최하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관련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때문에 이들은 정부에서 직접 나서 운임을 현실화하고 면세유를 지급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이들을 또 한 번 실망시켰다. 정부는 지난 5월28일 ‘고유가 대책’을 발표하면서 오는 6월 중단하기로 한 유가 보조금 지급을 2년간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대책에 대해 화물연대는 강하게 반발하며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파업 현장에서 만난 권 아무개씨. 그는 20대부터 지금까지 50년 간 화물차를 몰았다며 “내 나이가 이제 칠십이오. 이 핸들이 어떤 핸들인지 압니까? 오일 쇼크를 두 번이나 맞았을 때도 안 놓은 핸들이요. IMF 때도 핸들을 잡았소. 헌데 이젠… 이젠 정말 이놈의 지긋지긋한 도라꾸 생활 쫑 쳐부러야 할 것 같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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