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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뿌리를 건드리지 마라”

일본 내 원주민 아이누족, 차별ᆞ억압 딛고 정부로부터 소수민족 인정받아

김회권 ㅣ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7.15(Tue) 14: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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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인류의 상당수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원주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좋은 상태로 우리의 자연을 자손에게 주고 싶다.” 일본 아이누족의 오라카와 오사무 장로(70)는 기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혹한의 홋카이도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온 아이누족은 일본 속의 소수민족이다. 훗카이도에는 2만4천여 명의 아이누족이 산다. 하지만 자신이 아이누족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누족 단체들도 “일부러 숨기는 사람, 자신이 아이누족인지 모르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전국에 10만명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유신 이후 북방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아이누족을 탄압했다. 그들만의 고유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실시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제했다. 아이누족의 전통적인 수렵 생활도 금지시켰다. 엄격한 동화 정책을 시행한 셈이다. 오랜 차별과 억압의 역사는 아이누족 스스로가 자신의 뿌리를 숨기거나 거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9월 유엔에서 채택된 ‘원주민 권리에 관한 선언’은 빼앗긴 원주민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요구한 국제적 약속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선언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해왔다. 원주민의 정의가 애매하다는 이유에서다. 선언을 인정하고 아이누족의 권리를 인정할 경우 일본이 그동안 주장했던 ‘단일민족 국가’라는 명제가 깨진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인격체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갈 길 멀어

비록 소수이지만 아이누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일본 정부의 발언에 줄곧 저항해왔다. 1986년 당시 나카소네 총리는 국회에서 “국제 인권 규약에 규정된 소수민족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오히려 조용하던 아이누족의 복권 운동에 불을 붙였고 나카소네는 훗카이도를 돌면서 자신의 발언을 해명해야 했다. 지난 2001년에도 히라누마 다케오 경제산업상이 홋카이도에서 “일본처럼 높은 수준의 단일민족을 이루고 있는 나라는 없다”라고 주장했다가 아이누족 단체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기도 했다.

아이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끈질긴 노력들은 지난 6월6일 결실을 맺었다. 이날 일본 의회는 ‘근대화 과정에서 다수의 아이누족이 차별을 받고 어려움에 처했던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아이누족을 독자의 언어·종교·문화를 보유한 원주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자민당을 비롯해 여야 각당이 도야코 서미트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초당적으로 결의문을 낸 것을 두고 국제 사회에 인권 국가로 보이기 위한 홍보 정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공은 일본 정부에게 넘어갔다. ‘인간’을 뜻하는 ‘아이누’가 진정한 인격체로 일본 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결의문이 통과된 날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정부는 이를 진지하게 다시 인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로이터는 “아이누족으로 인정받기 위한 자격 기준이 논란이 될 것이고 토지 소유권이나 금전적 배상 문제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여전히 예민한 문제로 남을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다문화 국가라는 홍보 효과를 노린 일본 정부가 정치적 자결권 등 민감한 부분을 아이누족이 요구했을 때 어떻게 나올지도 두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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