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PD 줄소환 우는 것은 중소 기획사
  • 김천석 (자유기고가) ()
  • 승인 2008.08.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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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 착수 ‘막전막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정권 교체 시기와 궤를 같이하는 검찰의 연예계 집중 사정이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 마약 투약 연예인에 대한 잇단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연예인 해외 원정도박 수사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탈세 혐의를 포착하기 위해 연예인의 밤무대 출연 실태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연예인의 밤무대 몸값이 검찰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가장 결정타가 될 수 있는 연예계 비리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2년에 이어 6년여 만에 다시 재개된 연예계 비리 수사가 이번에는 로비 수단으로 주식(또는 관련 정보) 또는 카지노 칩 등이 이용되어 예전의 연예계 비리 수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만큼 연예계 비리 실태 역시 시대에 맞춰 ‘진화’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연예계 비리 수사의 출발점은 팬텀엔터테인먼트라는 한 거대 기획사였다. 지난해 검찰이 팬텀 최대 주주 및 경영진의 주가 조작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방송국 PD들에게 주식을 저가에 제공했다는 의혹을 발견한 것이 단초였다. 우회 상장과 거듭된 인수·합병을 통해 팬텀의 주식은 40배가량 폭등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기존의 현금 로비보다 훨씬 파괴력 있는 로비였던 셈인데 수사가 간단치는 않았다. 특히 주식을 직접 제공하지 않고 관련 정보만 넘긴 사례도 많았지만, 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팬텀 주식을 갖고 있거나 이미 매매해 상당한 시세차익을 거두어들인 PD들이 로비를 받은 것으로 의심받았지만 단순 투자인지 로비인지를 구분하는 것 역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로비 내역 기록한 비밀 장부 발견…PD 30~40명 출국금지 조치

그렇게 하나의 의혹으로 마무리지어질 듯이 보였던 연예계 비리 수사는 담당 부서가 바뀌면서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주가 조작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가 담당했던 데 반해 올해 연예계 비리 수사는 그동안 대형 비리 수사를 전담해온 서울지검 특수1부가 맡았다.

서울지검 특수1부가 전면에 나섰다는 얘기는 곧 그만큼 검찰의 수사 의자가 강하다는 의미이지만 과연 원활한 수사가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증거 확보 등 수사 진행이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수사를 시작한 서울지검 특수1부는 팬텀 사무실을 비롯해 전 최대 주주 이 아무개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하는 데 성공한다. 방송국 예능 PD에 대한 로비 내역을 기록한 비밀 장부가 발견된 것. 여기에 등장하는 방송국 PD가 누구인지, 몇 명의 이름이 올라 있는지에 대해 검찰은 현재 입을 다물고 있다. 매스컴은 거듭 검찰 내부 관계자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하려 하고 있지만 고작 서너 명의 PD가 언급되었을 뿐이라는 보도부터 수십 명의 PD에 대한 로비 내역이 상세히 적혀 있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추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연이어 특수1부는 강원랜드나 마카오 등 해외 카지노에서 연예관계자들이 방송국 PD에게 칩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로비를 해왔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이를 통해 수사 범위는 팬텀 한 회사에서 연예계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ㅇ기획, ㅈ기획 등 다른 대형 연예기획사로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칩을 제공하는 방식의 로비가 마치 유행처럼 방송가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재 연예계 최대의 관심사는 검찰의 비리 수사다. 검찰이 의혹을 받고 있는 방송국 PD들을 연이어 소환하면서 그날그날 소환 대상 PD가 누구였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이미 30~40명의 PD들을 대상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놓고 본격적인 소환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올림픽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중국으로 출장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능 PD들이 많아 중국 현지를 찾아 올림픽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소환이 이어지면서 풍문도 범람하기 시작했다.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는 중견 연예인 ㅈ씨와 연예기획사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아들이다. 유명 연예인의 아들인 ㅈ대표가 방송국 PD들과 다른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맡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중견연예인 ㅈ씨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소환된 PD들 가운데 “나는 모든 의혹에서 벗어나 출국금지에도 풀렸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주장과 검찰 수사 내용이 실제로 일치하는지는 수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확인이 어렵다. 다만 방송 관계자들은 소환 대상이 된 방송국 PD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사법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검찰이 확보한 정황이나 증거가 아직은 빈약한 수준일 것이라는 얘기인데, 이는 또 그만큼 연예계가 복잡하고 치밀하게 로비를 진행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소환 대상 PD 역시 30~40명이 아니라 기껏해야 10여 명 수준일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도 많다.검찰 수사 초기부터 이번 연예 비리 수사의 핵으로 지목된 한 방송국 예능국 고참 PD의 경우 가장 먼저 소환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아직 소환되지 않고 있다.

‘스타 권력화’ 실상 드러날 수도…연예 프로 제작 위축 등 타격 예상

이번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로 인해 연예계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우선 지난 몇 년 사이 연예계를 달군 ‘스타 권력화’ 현상의 실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검찰이 혐의를 두고 있는 연예기획사의 대부분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연예기획사다. 팬텀의 경우 한창 때는 80여 명의 연예인을 보유한 국대 최대 규모의 연예기획사였다. 특히 잘 나간다 싶은 인기 MC의 상당수가 팬텀 소속이었던 터라 오히려 방송국 PD들이 팬텀에 잘 보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가요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ㅇ기획도 매한가지다. 결국, 스타 권력화 현상으로 인해 연예계 비리가 근절되었다고 보았던 연예 관계자들의 시각이 이번 사건으로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그 정도 수준의 대형 연예기획사까지 이런 로비에 깊숙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예상 외로 수사 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수사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도 크다. 검찰이 연이어 연예인 관련 수사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두고 촛불 집회로 뒤숭숭한 정국에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이같은 수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청와대와 방송사들 간의 갈등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연예계 일각에서는 ‘권력’에 끼지 못한 많은 연예 종사자들의 현실에 대한 한탄의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팬텀처럼 거대한 연예기획사가 주도적으로 비리를 자행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지 못한 중소 연예기획사의 경우 방송사들로부터 더욱 외면당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리 수사가 확대되어 연예 프로그램 제작이 위축되면 타격은 중소 연예기획사들이 먼저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연예계 비리 수사의 가장 큰 희생자는 시청자들이며 가장 직접적인 희생자는 중소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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