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살림살이, 누구 말이 맞나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8.11.2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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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예산안 놓고 한나라당 ‘감세·재정 지출 확대’에 민주당 “어림도 없다” 맞서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국무위원과 주요 정부 기관장들에게 질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지금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예산 전쟁이 한창이다. 11월7일 국회에 제출된 2009년도 예산안에 대한 본격 심사가 시작된 것이다. 예산안 심사는 기본적으로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 장치이다. 원내 소수여서 설움을 당해왔던 민주당 입장에서는 답안지를 낸 정부 앞에서 ‘빨간 펜’의 힘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해야 하는 한나라당이 이를 수수방관할 리 없다. 해마다 예산안이 법정 시한(12월2일)을 넘기는 지각 처리를 되풀이해온 데에는 이처럼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예산 전쟁의 파도가 이전보다 더 거셀 전망이다.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어 정부 예산의 기조가 완전 바뀐 데다,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총 2백83조8천억원에 달하는 이번 예산안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감세(14조원)이고, 다른 하나는 당초 예산안에 비해 10조원이나 증액된 대규모 재정 지출이다. 한나라당은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려면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정부 원안대로의 통과를 주장한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같은 예산안의 기조를 전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 입장 차 너무 커 파행 불보듯

특히 감세에 대한 입장 차가 확연하다. 정권 교체로 집권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전통적으로 감세를 주장해왔다. 이들은 감세로 소비 지출이 확대되면 내수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종합부동산세, 대기업 법인세, 상속·증여세를 낮추는 감세 법안이다. 이번 예산안은 이 감세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전제로 짜여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이른바 ‘부자 감세안’에 대한 대폭 수정 없이는 예산 심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감세 철회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내놓았다. 종부세 1조5천억원, 대기업 법인세 2조8천억원, 상속·증여세 6천억원, 양도세 4천억원, 소득세 7천억원 등 총 6조원의 감세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는 감세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고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감세에 의해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국민이 소비 지출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감세 효과가 한계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에 집중되어 있어 감세 정책이 내수를 부양하는 효과는 더욱 제한적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종부세 등 감세 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되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산 부수 법안인 감세 법안이 빨리 통과되어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가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상임위에 법안이 통과되는 것부터 막고 있어 전망이 불투명하다. 국회법 84조는 세목 및 세율과 관련된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을 전제로 해, 미리 제출된 예산안은 심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자칫하면 예산안 심사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예산안의 또 다른 특징인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에 대해서도 여야의 입장 차가 크다. 정부 안에 따르면 당초 10조4천억원이었던 재정적자 규모는 예산안 수정을 통해 21조8천억원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규모만큼 대대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에 투입하자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가뜩이나 ‘부자 감세’로 세수가 줄어드는데 재정 지출 확대까지 동시에 추진하면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가 초래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부 안대로라면 국가 채무가 3백50조8천억원으로 급증해 GDP의 34.3%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당은 “국가 채무가 급증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낮아져 경제 안정에 저해 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한다. 현재 민주당은 부자 감세를 철회하는 등으로 적자 국채 발행을 원래보다 7조원가량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당내에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적자 재정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이견도 있다. 대공황 때 시행되었던 대규모 재정 지출 정책인 이른바 ‘뉴딜 정책’은 미국 민주당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따라서 노선과 이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민주당이 재정 지출 확대까지 반대한다면 발목 잡기로 비칠 수도 있다. 당의 한 재선의원은 “재정의 건전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민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파적 이해보다 경제 위기 극복에 힘 모아야

어쨌든 민주당은 현재 세출 예산의 대규모 삭감을 공언하고 있다. 이미 문제 예산 항목도 리스트로 만들어놓았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는 특수활동비의 삭감 폭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게 될 전국 주요 도로 건설사업의 40%(공사비 기준)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 지역과 연관된 사업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SOC에서 3조원을 줄인다는 원칙을 세우고 30개 신규 착공 고속도로·국도 사업은 일괄 삭감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이렇게 되면 포항 지역 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또 당 소속 의원들에게 각 부처의 공개된 특수활동비는 물론, 여론조사 및 집기 구입 등 명목으로 숨어 있는 장관의 쌈짓돈을 찾아내라는 특명을 내린 상태이다. 특수활동비는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이 예산 심사 때마다 대여 공격의 단골 소재로 삼았던 내용이다. 현재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2006년 “참여정부 5년간 영수증이 필요 없는 ‘묻지마 활동비’, 즉 특수활동비가 무려 3조6천6백44억원에 이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수가 바뀌었다.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기관장·장관 판공비가 지난해보다 1백15억원 증가하고 쌈짓돈으로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가 8천6백24억원이나 책정되었다”라며 대폭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은 수정 예산안이다. 당초 10월2일 제출했던 예산안은 경제 위기 상황을 반영하지 않아 대폭 수정을 해서 다시 제출한 것이다. 수정 예산안 제출은 역대로 세 번밖에 없었다. 1981년 예산안 때가 마지막이니 27년 만이다. 그만큼 경제 위기 상황이 엄중하다는 얘기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이번에는 정파적 이해보다는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대의를 앞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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