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을 넘어 '세상'을 변주하는 준비된 거장들
  • 강은경 (음악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12.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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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으뜸' …연주자가 다수 포진

▲ 장한나 ㅣ 지휘자로 변신하는 실험 과정에서 잡음이 나왔지만 가을에 발표한 비발디 앨범으로 '역시 장한나'라는 평을 들었다. ⓒ그림 최익견

국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을 움직이는 차세대 리더’ 선정 결과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전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우선,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20~40대 음악인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단순히 뛰어난 연주력이나 음악성을 가진 연주자 내지 음악 전문가로서의 모습에서 나아가, 동료 예술가나 일반 대중을 선도하는 ‘지도자 그룹’으로서 브랜드를 구축한 음악인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특징으로 보인다. 신영옥·조수미와 같은 세계적 디바들이 10위권 밖에 밀려나 있는 반면, 장윤성·성기선·변욱 등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지휘자들이 상당수 순위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차세대 리더에게 단순한 재현 시장의 연주자로서의 역할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위를 차지한 장한나는 1994년 12세의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음악계에 혜성처럼 떠오른 이후, 국제적 연주자로서 차근차근 경력 관리를 받아온 경우이다. 장한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천재 소녀 첼리스트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철학도답게 첼리스트로서의 외연을 확장해가는 지적 리더로서 강하게 인식되는 듯하다. 최근 어린이 음악교육이나 지휘 영역에까지 도전하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위를 차지한 김대진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경력 이외에도, 뛰어난 음악 영재들을 배출해온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이자 청소년음악회 등 열린 음악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자로서,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을 이끄는 음악감독으로서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1인 다역의 활발한 활동으로 예술가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위한 의욕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적 카리스마 구현한 장영주는 3위

순수하게 연주자로서 천착하는 모습에서 지도자적 카리스마를 구현한 경우는 3위를 차지한 장영주일 것이다. 지난 세기 정경화가 구축한 국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위상을 넘겨받은 듯, 9세에 데뷔한 이후로 세계적인 연주 단체와 연주회장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연주 경력을 자랑해온 장영주는 모든 천재들이 겪는 딜레마가 비껴간 것처럼 기량을 앞세운 어린 천재에서 존경받는 음악 거장으로의 성장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행해온 드문 경우이다. 2006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차세대 여성 지도자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4위로 선정된 강충모는 바흐 시리즈 등 비중 있는 레퍼토리를 꾸준하게 펼쳐온 진지한 연주 행보로 인해 구도자적 음악인으로 각인된 경우이다. 피아니스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서, 음악기획자로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존경받으며 소리 없이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7위를 차지한 작곡가 진은숙은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과 쇤베르크상(2005년) 수상자이다. 일찍이 거장 사이먼 래틀이 진은숙을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는 점은 그녀의 국제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작품 위촉 및 철저한 자기 관리에 따라 정선된 작품 활동, 센세이셔널한 세계 초연 등으로 한국의 국보급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거주지인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2006년부터 서울시향의 상주 작곡가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아르스 노바’ 시리즈 등의 기획을 통해 현대음악의 전도사로서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 앞장서는 한편 국내에서 받은 상금 등을 후배 작곡가 육성에 사용하도록 하는 등 훈훈한 미담을 낳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들이 상위권 휩쓴 까닭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오로지 연주자로서의 길을 더 잘 걷기 위해, 서울대 교수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 소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특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건반 터치로 선배 거장 세대와 손열음·임동혁·김선욱 같은 신세대 연주자들 사이에서 항상 최고의 연주자 그룹의 한 명으로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이러한 면은 오로지 피아니스트로서 일생을 천착해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오른 선배 거장 백건우의 경우를 떠올리게도 한다.
10위권 안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음악인들이 피아니스트라는 점은 현악과 성악에 이어서 21세기에 들어 한국 음악계 전반에 확고히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임동혁·임동민 형제와 김선욱 등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스타덤에 오른 20대 남성 피아니스트들이 두드러지는데, 10대에 세계 권위의 리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해외 대형 매니지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국제 무대로 진출한 김선욱은 순수하게 국내에서만 공부한 음악인이라는 점 때문에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했다. 약관의 청년 김선욱의 장래 희망이 세계적 악단의 지휘자라는 점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한편, 선배 세대로도 분류될 만한 성악가 리더 그룹인 소프라노 조수미·신영옥 이외에 바그너 오페라의 세계적 권위자인 베이스 연광철(21위)과 미국과 유럽 최고의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테너 김우경(13위)은 성악계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꼽히고 있다.

김동규·유진박·이루마·오정해 등 미디어를 통해 대중 친화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음악인들 가운데, 최근의 사례로 흥미로운 것은 26위를 차지한 조윤범의 경우이다. 그는 콰르텟 X의 리더로서, 클래식의 경계에 서 있는 일련의 파격적인 시도들로 일찌감치 대중에게 신고식을 마친 뒤, 소극장과 케이블 TV를 활용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연한 클래식 강의 <파워클래식>을 펼쳐 스토리텔러로서의 브랜딩에 성공한 경우이다. 표방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김대진·강충모 교수가 각각 ‘스쿨 클래식’이나 ‘인투 더 클래식’ 같은 해설이 있는 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음악 멘토어로서 입지를 굳힌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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