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실업’ 앞 대책 없는 ‘대국’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12.2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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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불황 탈출구’ 중국·인도 경제도 붕괴 조짐…정치적 위기까지 겹쳐 ‘안갯속 항해’

▲ 11월24일 중국 허난 성 정저우 시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장 출입구가 구직자들과 경비원들의 몸싸움으로 어지럽다. ⓒAP연합

미국발 경제 위기가 신흥 경제 대국인 중국과 인도로도 번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 발전 속도가 빠른 중국과 인도 경제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좋지 않아도 이 두 나라만 잘 버텨주면 언젠가는 지구촌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두 나라 경제는 위기로부터 거의 무풍지대였고, 불황 탈출을 도와줄 견인차로 여겨졌다. 그러나 낙관이 순식간에 비관으로 바뀌었다. 이는 재앙의 예고편이다. 이제 중국 및 인도발 대량 실업을 전세계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불길한 예측에는 늘 과장이 따른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중국과 인도의 경제 위기는 정치적 위기가 중첩되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인도는 경기 침체에다 뭄바이 테러까지 겹쳤다. 건실한 경제 성장과 정치의 안정이라는 두 가지 안전핀이 무너진 것이다. 뭄바이 사건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지역 분쟁을 일으킬 개연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인도의 수출은 지난 10월 전년 동기에 비해 12% 감소했다. 수백 개의 중소 섬유회사들은 문을 닫았다. 자동차 업계의 탄탄한 기업들도 생산을 중단했다. 중앙 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7.5% 내지 8%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에는 5.5%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이는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중국, 수백만 농촌 출신 노동자들 생계 대책 ‘막막’

중국의 성장률이 이 정도로 추락하면 어떻게 될까? 국내외적으로 재앙을 몰고 온다. 중국은 ‘개혁 개방’ 정책 3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 개방은 연평균 성장률 9.8%를 상징한다. 기념 행사는 공산당중앙위원회에서 주관한다. 덩샤오핑이 주재하던 회의이다. 중앙위는 점진적으로 그러나 과감하게 마오쩌뚱의 독단적 요소들을 제거했다. 집단 농장을 폐쇄하고 외국 자본을 대거 유치했다. 또한 민간 소유 기업도 허용했다. 30주년을 기념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중국 역사상 이런 변화가 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 지구 인구의 5분의 1이 사는 이 나라에서 거의 2억명이 절대 빈곤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갔다. 11월 중 수출은  2007년 동기보다 2% 줄었고, 수입은 18% 감소했다. 중국의 관점에서는 충격적이다. 전력 생산도 7% 줄었다. 세계은행은 2009년 중국의 GDP 성장률을 7.5%로 예측했다. 이는 비교적 희망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절대 허용치 8%보다 낮다는 것이 문제이다. 최소한의 고용 시장을 보장하고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8%대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최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한 전문가는 경제 성장률이 8% 이하로 내려가면 대규모 사회적 소요 사태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미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변해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환경운동가들도 가세했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성장률을 5%까지 하향 전망했다. 후진타오 주석도 위기를 시인하고 거국적 노력을 당부했다. 

가장 심각한 우려는 ‘입과 지갑’의 간극에서 오는 갈등이다. 정부가 흑자 예산과 적은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11월에는 4조 위안(6천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발표되었다. 비판자들은 이 정책을 임시방편이라고 비꼰다. 낡은 방식의 예산과 공허한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책은 중국 인민과 외부 세계에 대한 프로파간다 성격이 짙다. 당면 문제는 매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수백만 농촌 출신 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현재로서는 없다. 인프라를 위한 돈이 언제 집행된다는 발표도 없다. 저소득 빈곤층을 이루는 농촌 주민들에게 토지 소유권을 더 허용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방향으로의 가시적 조짐이 아직은 없다. 특히 의료 분야에 관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중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은 나은 편이다. 중국에 비하면 인도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 정부가 무엇을 할지 방황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중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고 예상 적자는 GDP의 8%에 달한다. 따라서 경기 하강을 막을 부양책을 쓸 여유가 없다. 중국이 해마다 쏟아져나오는 약 7백만명의 신규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연 8% 성장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인도는 이와 유사한 대책을 세울 수 없는 형편이다. 인도 경제는 뿌리가 깊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1년에 1천4백만명의 새 노동자들이 생긴다. 세계 신규 노동자들의 4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그동안 경제를 견인한 세력이 다수의 저임 노동자들이 아니라 소수의 고급 인력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컴퓨터 관련 산업 또는 자본 시장 종사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이것이 중국과 다른 점이고 그래서 고민도 깊다. 

경제 인프라 좁은 인도, 1천4백만 신규 노동자 앞에서 ‘속수무책’

▲ 인도의 한 의류 공장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야채를 고르고 있다. ⓒAP연합

다행히 인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국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중국에 비해 경제 하강에 대한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 경기 침체로 발생하는 사회적 불만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적 시스템이 있다. 인도는 민주주의를 위해 상당한 경제적 대가를 이미 지불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소요와 저항이 만연했으나 정치가 충격을 흡수했다. 

중국은 이런 일에 면역이 되어 있지 않다. 소요가 생기면 경찰을 동원해 강제 진압하는 것이 고작이다. 중국 전문가임을 자칭하는 사람들은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 개혁이 수반될 것이라는 상투적 이론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분석은 맞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경제의 개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자유는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티베트 봉기 50주년, 톈안먼 학살 20주년, 중국 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유념해야 할 두 가지 사건은 오늘의 번영을 가져온 당 중앙위 전체회의와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운동이다. 이 사건들은 짧은 순간이나마 표현의 자유를 꽃피웠다. 중국을 고립시킨 문화혁명의 악몽을 청산한 계기이기도 하다. 덩샤오핑은 민주화 운동이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한도 내에서 반체제를 용인하다가 선을 넘는 순간 잔혹하게 진압했다. 이제 경제가 흔들리면서 중국은 다시 기로에 섰다. 번영과 민주화,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을 ‘X 요인’으로 진단했다. 모순과 합리가 혼합된 기적을 애매하게 표현한 말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두 번째 ‘대장정(大長征)’이 중국을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30년에서 X 요인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이다. IMF는 세계 경제의 회복에 지구촌 GDP의 2%인 1조2천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처럼 중대한 순간에 제2 장정의 전도마저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 불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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