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들 “믿을 건 신약뿐”
  • 석유선 (의료전문 프리랜서) ()
  • 승인 2009.04.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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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치료제 거의 수입 의존…삼천리제약 신약 개발 후 동아·삼진제약도 나서

▲ 한국화학연구원과 질레드 사이언스가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 기술 이전 성과를 발표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최근 로슈 사의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국내 공급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면서 에이즈 감염인들의 치료 현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 HIV(에이즈 바이러스) 누적 감염인 수가 총 6천1백20명(사망 1천84명)이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에 ‘신고’된 감염인과 실제 감염인 수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UNAIDS(Joint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는 우리나라의 감염인 수를 1만3천명(2007년 말 기준)으로 추계한 바 있다.

치료비 후불 지원에 치료 중단하는 사태 벌어지기도

국내 HIV 감염인들은 과연 정부로부터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일까. 현재 정부는 HIV/AIDS 관련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100%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환자 부담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본인 부담이 필요한 약의 경우, 환자가 먼저 돈을 내고 관할 보건소에 비용 청구를 하는 식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없는 환자들은 치료제 복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관계자는 “정부가 무상으로 HIV 감염인 치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질병이 점차 진행될수록 지원이 안 되는 비보험 치료가 늘고 있다. 후불 지원 시스템도 문제이지만, 이같은 치료비는 정부의 고정 예산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지원이 중단될지 몰라 치료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예산이 바닥나는 연말께 자비로 진료비를 낸 감염인들이 당장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 시내 한 구청 보건소 관계자는 “HIV 감염 환자가 늘어난다고 예산이 자동적으로 느는 것이 아니다. 일부 예산이 부족한 구에서는 환자 지원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라고 시인했다. 물론 당해연도 예산이 소진되고 이듬해 예산이 배정되는 동안 치료비 지원을 못 받는 환자는 사실상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공공의약센터 권미란 간사는 “일반적인 에이즈 환자들은 1년에 약 1천3백만원어치에 달하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한 달에 약 100만원꼴인 약값 가운데 25~30%를 본인이 부담하고 보건소에서 후불로 돌려받지만 당장 20만~30만원이 없어 필요한 약을 못 먹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시민단체들은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과 환자의 관리 및 지원을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 관할 보건소가 협력만 하면 이런 치료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100% 건강보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별도로 본인 부담금을 사전에 지급하는 방식에는 난색을 표시한다.

관련 기관 협력하면 시스템 개선 가능

▲ 한국화학연구원이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 샘플.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치료제 지원 방식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푸제온’처럼 획기적인 기전(치료 원리)을 지닌 약이 모두 외제라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약이라도 외국 제약사가 국내에 공급을 하지 않는다면 HIV 감염인들에게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국내 에이즈 환자들이 필수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 가운데 1종 외에는 거의 모든 약이 외국에서 수입된다. 1987년 세계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아지도싸이미딘(azidothymidine, 상품명 ‘지도부딘’)이 글락소스스미스클라인(GSK)에서 개발된 이후 각국에서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삼천리제약이 1991년 화학연구원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아지도민’이라는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한 것이 유일하다.

 지도부딘의 경우 개발된 지 약 6년 만에 약제 내성이 확인되었다. 내성 발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환자의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내성 HIV 감염으로 인해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전문의들은 “HIV 치료의 핵심이자 관건은 이미 개발된 치료제의 약제 내성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이것이 에이즈 확산을 막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즉, 새롭고 다양한 치료제와 획기적인 신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보통 HIV 감염 초기 치료에는 NRTI와 NNRTI 및 PI계열 약물을 병합해 ‘고효능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이하 HAART)’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같은 초기 치료가 실패하면, 약물 전체를 바꾸어 다시 시도하는 것이 치료 원칙이다.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들이 융합 억제제, CCR5 길항제, 인테그라제 저해제이다. 기존의 표적물(RT, Protease)과 다른 표적물을 억제하는 기전을 이용한 최초의 치료제가 ‘푸제온’이며, CCR5 길항제인 ‘셀센트리’와 인터그라제 억제제로는 ‘이센트레스’가 출시되어 있다. 푸제온, 셀센트리, 이센트레스는 서로 다른 표적을 갖는 기전의 약제로 대체 가능한 약물이 아니기 때문에 내성 HIV를 치료할 때 반드시 필요한 약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다양한 에이즈 치료제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에이즈 치료제 30가지 가운데 국내에서 보험이 적용되어 공급되는 것은 13가지에 불과하다. 더구나 푸제온처럼 기존 약제에 내성이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에이즈 치료제 가운데는 보험이 적용되어 공급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최근 에이즈 치료의 관건은 기존 치료제에서 비롯되는 HIV 내성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의 약물 개발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 에이즈 신약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삼천리제약이 1991년 국내 유일의 에이즈 치료제 ‘아지도민’을 개발한 이후 국내 제약사에서 이럴다 할 성과는 없지만 에이즈 백신을 비롯한 치료제 개발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선 국내 1위 제약사인 동아제약에서는 2001년 포항공대 성영철 교수팀이 개발한 에이즈 치료 백신 ‘GX-12’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 백신은 1999년 말 독일 영장류동물센터(DPZ)에서 실시한 원숭이 실험에서 4∼20주 만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해 주목을 받았던 신약이다. 지난 2001년 3월부터 약 1년간 우크라이나에서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시험에서도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고, 미국에서도 사람과 유전자 구조가 98.6% 일치하는 침팬지 대상 동물 실험에서도 치료 효과를 보여 백신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삼진제약에서 개발 중인 에이즈 치료 신물질 ‘SJ-3366’이 미국 임상 시험 신청을 완료하는 등 활발하게 에이즈 치료제 상품화에 힘쓰고 있어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삼진제약 관계자는 “전략적 제휴사인 미국 임퀘스트 사가 지난해 12월31일 ‘SJ-3366’을 경구용 에이즈 신약으로 개발하기 위해 미국 FDA에 임상 실험 승인 신청을 마무리했으며, 조만간 승인이 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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