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앞에서 쩔쩔매는 ‘안보’
  • 김종대 (월간 D&D Focus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4.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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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략 무기에 대응할 국방 정책 ‘모호’…PSI·MD 가입도 어려워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북한의 장거리 로켓이 함경북도 무수단리 발사대에서 우주로 나간다. 2006년 핵실험에 이은 이번 미사일 시험으로 북한은 전략 무기의 완성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주 로켓과 핵탄두가 결합되는 상황이 온다면 북한은 강력한 독침을 곤두세우는 한 마리의 외로운 전갈이 된다. 재래식 군사력이 아니더라도 단 한 방으로 상대를 마비시킬 수 있는 두려운 존재의 출현, 지난 50여 년의 냉전을 무색하게 하는 새로운 국면이다.

한·미 양국이 사전에 충분히 예고되었던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구상해왔는지는 불분명하다. 동해에 한·미·일 3국의 이지스함이 배치되어 열심히 북한 로켓을 추적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는 했는데, 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는 애초부터 모호했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유엔 제재나 6자회담에서 미사일 문제를 다룬다는 식의 모호한 대응책 외에 어떤 대북 정책과 전략이 준비되어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한다고 공언했고, 미국은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그러나 PSI나 MD는 막대한 정치적·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사안이다.

지난해 1월1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국방부를 방문해 김장수 전 국방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장관은 MD나 PSI에 참여할 때 수반되는 정치·재정·군사적 부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이 설명에 만족한 이대통령은 이후로 일절 이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었다. 정권 출범 이후 1년은 ‘김장수 구상’에 의해 MD나 PSI 문제가 유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정책의 전환을 시도할 경우 이제껏 북한을 주적으로 한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 치중해온 국방 정책은 크게 수정되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MD나 PSI가 과연 북한을 전략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책이 되는지 전혀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지스 체계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미국의 MD 체계에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이같은 입장이 최근 한국 국방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국방 관계자 역시 의미 있는 사실을 전했다. 지난해 4월 초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 직전에 국방부는 미국이 한국 영토에 북한의 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는 X밴드 레이더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해올 것으로 예상하고 전문가들을 모아 두 차례 비밀 대책회의를 열었다. 여기에서 전문가들은 미국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그 대신 한반도 인근의 해상에 배치하는 방안을 미국에 권유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 한반도 동해로 출동하는 미국 이지스함. ⓒ연합뉴스

초보적인 MD 갖추는데 11조원 들어

특히 국방부는 미국의 요구에 의해 한 발짝이라도 MD 체계에 발을 들여놓을 경우 초보적인 MD 체계를 갖추는 데 최소한 11조원이 소요되며 그러고도 성공 여부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인식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하층이나 중간궤도뿐만 아니라 고층에서도 합동 작전으로 요격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데, 이 경우 북한만이 아닌 중국을 적성국으로 하는 정치적 부담도 뒤따른다는 분석이었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입장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근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3월19일 미국 상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미국의 TMD에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직까지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한·미 양국의 군사적 공조 체제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앞으로도 갈 길은 요원하다. 적어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문제 역시 간단치 않다. 미국은 이미 전세계 75개국으로부터 PSI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이 냉전 시대부터 운용했던 해상 감시 위성과 레이더 그리고 최첨단 화물 감시 시스템, 구상 참여국 정부와 민간 해양업자, 정보 기관을 망라한 글로벌 협력 시스템을 갖추어 바다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이 전면적으로 참여하려면 현재 우리의 해군 또는 해경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추가적인 구축함 건조가 필요하고 첨단 감시시스템을 추가로 도입해야 한다. 남북 관계 역시 악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역시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간에 과연 위협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미국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앞으로는 핵·미사일과 같은 비대칭 위협이 초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정보 당국이나 주한미군 관계자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북한의 재래식 위협은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새로운 것이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한·미연합사가 작성하는 한반도 정보판단서(PIE)에서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전면전의 위협은 감소하고 있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난 3월10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마이클 네이플스 미국 국방부 정보국(DIA) 국장은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전진배치하고 있지만 장비 부실과 훈련 부족으로 남한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이다”라고 못 박았다. 더불어 그는 “이런 한계 때문에 북한은 주권을 보장받고 기술적 우위에 있는 상대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핵 능력과 탄도 미사일을 강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가 지난 2월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으로 발간한 <국방백서>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 그중에서도 특히 특수부대의 위협이 2년 전에 비해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특수부대는 12만명에서 18만명으로 6만명이나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북한군 제2제대에 속해있던 특수부대가 제1제대로 통합됨으로써 경보병 위주의 특수부대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터 샤프 사령관이 3월19일, 미국 상원에 보고한 보고서에는 북한 특수부대는 우리 <국방백서>보다 10만명이 적은 8만명으로 명기되어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다른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위협에 대한 한·미 양국의 인식이 현 정부 들어와서 더욱 벌어지고 있다면 앞으로 양국 간에 갈등이 불거질 소지도 있다.

청와대·국방부·통일부가 겉돌고 있어

▲ 반핵반김국민협의회 회원들이 광화문 앞에서 미사일 모형을 불태우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한·미 사이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내에서도 ‘과연 앞으로 북한의 무엇을 위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떻게든 국방 예산을 줄여보겠다는 청와대는 국방부가 만들고 있는 국방 개혁 기본 계획을 강력히 견제하고 있다. 올해 초 국방부는 향후 우리 군이 보유할 전력 구조에 대한 7가지 목록의 우선순위를 청와대에 보고했는데, 청와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현존 위협’이라며 우리가 대응해야 할 최우선 순위로 놓고 기본 계획을 작성했으나 청와대가 2월에 이러한 국방부 안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바람에 두 기관 사이에는 논쟁과 갈등이 일 조짐이다.

이렇듯 냉전 시대부터 유지되어온 북한의 재래식 위협과 로켓 발사로 촉발된 새로운 전략 무기 위협 사이에서 한국 안보의 풍향계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안보의 핵심적 과제인지 혼란스럽다. 여기에다 지난 2월 청와대는 국방부에 ‘세계 속의 성숙한 일류 국가’ 국정 비전에 부합되는 국방 분야의 대안을 만들라고 과제를 부여했다. 세계 안보, 동북아 안보, 한반도 안보가 다 중첩되어 있는 국방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되어 있는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군비 경쟁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의 무기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사적 대응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 일각에서는 지금의 위기 이후에 한반도 안보와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결의와 전략이 준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 북한의 NLL 위협과 작금의 위기 상황에서 외교안보 부처에 하나로 결집된 위기 관리와 국가 차원의 대전략이 체계적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지난 2월 개각 직후부터 수시로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장관은 이장관이 국방부 입장을 내세우면서 마치 정부의 대북 정책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장관 상견례 자리에서부터 거침없는 말을 토해냈다는 것이다. 이장관이 “그러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국방부 입장이 정부 입장이 아닌가?”라는 반문에도 현장관은 “그렇다”라고 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정문헌 통일비서관 역시 국회 국방위 인사들을 접촉하며 군사적 강경 대응 주장을 견제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은 4월 초 G20 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직전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더라도 “군사적 대응은 없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원세훈 국정원장을 미국으로 보내 대북 정책을 조율하도록 한 것으로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이대통령은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우리가 끌려가는 식의 대화는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부 내부의 이견과 갈등을 조정해야 할 청와대는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이 취약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정부 기관의 위기 관리 역량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하고 목소리 큰 장관에게 안보 정책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다.

당연히 국가 안보에 대한 현 정부의 철학이 무엇인지, 새로운 전략 무기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이 무엇인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런 카오스 상태가 북한의 위협보다 더 큰 불안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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