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정’의 한계 넘어설까
  • 김지훈 (서울신문 기자) ()
  • 승인 2009.05.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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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본21’, 한나라당 쇄신의 ‘기관차’로 주목…정치 개혁 위한 ‘제3 정치 세력화’ 표방

▲ 지난 5월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본21 주최 긴급 토론회. ⓒ시사저널 이종현

‘쇄신’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한나라당에서 다시 소장 개혁파가 주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개혁 성향의 초선 모임인 ‘민본21’이다. 민본21은 원칙적인 관점에서 한나라당 쇄신위를 견제·추동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여권에서 국정 기조의 변화와 정당 운영의 투명성 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쇄신론에 불을 지핀 것이 이들이다. 지난 5월4일 ‘민본21’은 국정과 당의 쇄신, 당 화합을 주장하며 예상보다 강도 높은 쇄신을 요구해 당내 이목을 끌었다. 이들은 △국정 기조의 쇄신 △당·정·청 인적 개편 △당 화합 등 3대 개혁 과제를 중심으로 5개 항의 건의사항을 이명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촉구했다. 민본21의 전면적인 쇄신 요구는 당내 논란을 촉발시켰고, 당 지도부는 원희룡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쇄신특위를 구성하며 백지 상태에서 쇄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민본21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 개혁을 위한 ‘제3 정치 세력화’를 표방할 것임을 선언했다. 공동간사인 김성식 의원은 “정책 의견 그룹에 머물렀던 민본21의 한계를 딛고, 앞으로 정치 개혁을 위한 초계파적인 실천에 적극 나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공부 모임에서 정치적 결사체로의 전환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16대 국회 때의 ‘미래연대’와 17대 국회 때의 ‘수요모임’에 이어 ‘민본21’이 18대를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개혁·소장파 그룹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기자회견장은 이들 초선 의원들의 결기가 느껴질 정도로 비장한 분위기였다.

계파·출신 다양해 계속 한목소리 낼지 의문

민본21은, 눈에 띄는 소장파 의원 모임이 없던 18대 국회 초반부터 주목되었다. 여당이면서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내놓자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안이다”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서도 “감세의 폭을 축소하고 감세의 초점도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맞춰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주 토론회를 열고 국회 개혁과 정당 개혁을 위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연히 이들에게는 ‘여당 내 야당’ ‘초선 반골들’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민본21이 모임을 결성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모임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국정 운영에서 이명박 정부가 독주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공동간사인 주광덕 의원은 “촛불 정국 때 고민이 많았다. (수입 위생 조건의) 관보 게재를 연기하고 어떻게든 추가 협상을 하고 국민과 소통해 풀어나가자는 견해들이 한나라당 내에서 적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모였고, 발족하는 그 자체로 소명 의식을 느끼며 더 열심히 해보자는 취지였다”라고 설명했다. 공동간사인 김성식 의원도 “민본21은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쓴소리도 마다않는 소금 역할을 하려고 한다. 당이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성 당시에는 권영진·권택기·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영우·신성범·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황영철 의원 등 12명이었지만, 이후 박민식 김세연 의원이 합류해 14명으로 숫자를 늘렸다.

회원들의 계파와 출신도 다양하다. 권택기·김영우·정태근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 안국포럼 출신이고, 김선동·현기환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이다. 김성식·황영철·김세연 의원은 중립 성향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뜻이 통하는 만큼 (계파가 다르다고) 별 문제는 없다”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이 한나라당 개혁파의 바통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핵심은 민본21이 얼마나 세를 얻고, 개혁 행보에 추동력을 가질 수 있느냐이다.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원조 소장파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남원정’은 한나라당 내 대표적인 개혁 소장파로 불리며 지난 17대 총선 공천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주도했었다. 당시 최병렬 대표를 포함해 60여 명의 현역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의 역할도 컸지만 ‘남원정’이 없었다면 이런 물갈이는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앞서 지난 2002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박근혜 전 대표를 다시 복당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이들이었다.

‘남원정’은 한때 한나라당의 개혁을 바라던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7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 다음으로 원희룡 의원이 2위를 차지하며 지도부에 입성한 것도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원조 소장파는 개혁의 열망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비판은 했지만 비전과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또, 결정적인 순간 자신을 던지는 희생과 용기를 보이지 못했던 것도 실패의 한 요인이다. 한때 한나라당의 미래라고 불리던 이들은 지난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걷는 ‘중진’이 되었다.

무계파 의원들의 지지·동참 이끌어내고 정책 대안도 갖춰야

‘남원정’의 대오에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전당대회 때이다. 당시 ‘수요모임’과 ‘푸른정책연구모임’이 사전 경선을 통해 권영세 의원을 단일 후보로 선출했지만, 정작 본선에서 권의원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은 것이 분열의 씨앗이었다. 이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각자 다른 행보를 보였다. 남경필 의원은 당초 대선 후보로 나선 원의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지만 경선 직전 이명박 후보 지지로 선회했다. 정병국 의원은 일찌감치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전문가들은 ‘남원정’이 개인 플레이를 한 것을, 소장파 개혁이 실패한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과거의 ‘남원정’은 자기 정치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 한계였다. 당내 계파가 당권을 놓고 맞붙었을 때 개혁이나 쇄신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원심력에 휘둘렸다. 기존 당내 권력에 편입되는 한계를 보인 것이 큰 문제였다”라고 분석했다.

남경필 의원도 “민본21이 우리들의 실패를 거울 삼아 업그레이드해서 당내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면서 △정치에만 매몰되고 정책에 소홀한 점 △구호는 있으나 대안은 없었던 점 △세(勢)를 만들지 못한 점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민본21의 의욕 넘치는 초선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산이 놓여 있다. 바로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라는 거대한 계파의 벽이다.

당내 소장파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해체의 길에 들어선 것도 지난 대선 경선 때부터 형성된 ‘친이-친박’의 프레임 속에 목소리를 잃고 대부분 양대 계파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민본21이 자신들의 소망대로 ‘제3 정치 세력’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친이·친박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무계파 의원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 무계파의 한 의원은 “민본21이 주장하는 정치 개혁과 그에 대한 진정성은 믿는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행동을 통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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