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재개, ‘개미’만 허리 휜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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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융주에 한해 제한 조치 풀어…개인투자자들, 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

ⓒ그림 이우정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남북 간 긴장 고조, 여기에 미국 GM의 파산 보호 신청 임박설까지 더해지면서 모처럼 상승 추세를 연출하던 국내증시에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1천5백 포인트 돌파를 앞둔 것처럼 보였던 코스피는 지난 5월21일부터 5일 만에 70포인트가량 하락해 과잉 유동성 논란마저 잠재운 듯하다. 여기에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재료가 추가되었다. 6월1일부터 허용되는 비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허용이다.

금융위원회는 올 들어 주가 변동성이 공매도 제한 이전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시장이 안정화된 측면을 고려해 지난해 10월1일부터 시행해온 공매도 제한 조치를 해지한다고 발표했다. 9개월 만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즉각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지 발표 이후 한 증권 포털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5.3%가 공매도 허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외국인과 기관에만 도움이 되고 변동성이 확대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외국인·기관에만 허용되는 거래 방식…“불평등한 게임” 지적도

공매도(short selling)는 말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매도하고, 매도 자금을 이용해 나중에 동일한 주식을 사서 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공매도한 주식의 가격이 매도할 때의 가격보다 하락해야 이익이 발생한다. 세부적으로는 보유하지 않은 주식(실물이 없는 상태에서)을 매도하는 네이키드 숏셀링(naked short selling)과 타인으로부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고 나중에 동일 주식을 매수해서 돌려주는 커버드 숏셀링(covered short selling)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키드 숏셀링은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공매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타인으로부터 미리 빌려야 한다. 자신이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리는 것을 대차거래라고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대차거래의 잔고가 얼마가 되는지는 금융투자협회(www.kofia.or.kr)에 공시되어 있다. 이런 거래 방식은 외국인과 기관에만 허용되며 주로 외국인들이 이용한다. 결국, 특정 종목의 ‘대차 잔고가 많다는 것’(외국인이 그 주식을 많이 빌려갔다)은 잠재적인 매도 물량으로 해석이 된다.

예상대로, 공매도 허용이 발표된 다음 날 주식시장에서는 대차 잔액이 많은 종목을 중심으로 주가가 일제히 떨어졌고, 이 여파로 코스피지수도 사흘 만에 하락세를 보였다. 공매도가 허용되지 않은 금융주들은 오히려 가격이 상승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매도 허용 조치에 대해 거래를 중개해서 수수료를 받는 증권사나 실제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외국인, 기관 등은 당연히 환영이다. 실제 공매도 허용 조치를 이끌어낸 배후에 외국인들의 집요한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업계에서도 공감하는 상황이다. 국내 기관들의 입장에서도 보유한 주식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으니 당장은 이득이 된다는 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매도가 시장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득실을 따져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공매도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의 정명지 수석연구원은 “공매도 거래를 통해 내재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고평가된 종목이 시장 균형 가격을 빠르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헤지펀드들 중 상당수가 롱/숏(long/short; 고평가된 종목을 매도하면서 동시에 저평가된 종목을 매수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공매도를 통해 마련된 자금이 다른 종목의 매수 자금으로 사용되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증시의 현실이다. 공매도는 외국인과 기관에게만 허용된다. 현물시장만을 놓고 보면 개인들은 현물 매수(long only)를 통해서 주가가 올라야만 수익을 낼 수 있는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공매도를 통해서 주가가 내려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양손의 무기를 가지고 전투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주형 동양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개인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자나 증권사 등으로부터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는 대주거래가 6월부터 허용되므로 개인투자자들도 기회는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막대한 자금력과 신용도를 기반으로 한 기관과 외국인의 대차거래에 비해 개인의 대주거래 활용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의 가장 중요한 축인 개인과 외국인·기관 사이에 불평등한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증시에서 가장 높은 거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개인이다. 지난해 주식시장 침체기에 그 비중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금액 면에서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50%, 코스닥시장에서 9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기관과 외국인의 비중은 유가증권시장에서 각각 21.72%와 25.41%로 개인의 절반 수준이다. 코스닥시장에서의 비중은 3.25%와 5.00%에 불과하다. 결국, 공매도 허용의 단기적인 영향은 외국인들이 주로 투자하는 유가증권시장에서 나타날 것이다. 최근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선물을 매도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도 공매도 허용에 따른 단기적인 충격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매도 종목에 대한 세부 정보 실시간 공개 의무화해야”

호재에 둔감하고 악재에 민감해지는 시기에 공매도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세계 증시가 최악의 시점을 지나면서 공매도를 금지했던 것이다.

장기적으로 공매도의 허용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시장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필요한 조치이기는 하다. 그러나 허용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는 “매수·매도의 정보가 공개되는 것처럼 공매도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공개되고 이에 따른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매도시 시장 가격 이하로 매도할 수 없도록 하는 업틱룰(uptick rule)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개인투자자들로서는 공매도 허용시 악성 루머, 시장 불안, 변동성이 확대되어 정상적인 투자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고, 공매도 종목의 공매도 수량, 금액, 거래 창구를 HTS(홈트레이딩시스템) 등에 실시간 공개할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당국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명지 수석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이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르고, 대차 잔고가 많은 종목을 피하는 것도 변동기의 위험 회피법이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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