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위기 관리 흔들리는 대북 정책
  • 김종대 ( 편집장) ()
  • 승인 2009.06.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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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성과주의·섣부른 정보 누설 등으로 허점 노출 과거 NSC 같은 전문 기구 부재로 인한 혼선도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7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상희 국방부장관으로부터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한 경과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에서는 내가 북한에 대해 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북한의 광명성 2호 로켓 발사로 뒤숭숭했던 지난 4월 초,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외교안보자문단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자신은 나름으로 북한에 대화를 제안하는 등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언론이 이를 평가해주지 않는 데 대한 이대통령의 아쉬움이 매우 컸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은 4·29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국정 쇄신을 논의하는 5월 중순의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또 한 번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이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이렇다.


“대북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남북 접촉의 재개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 위기 등으로 인해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음이 드러나고 있는데, 현 정부가 이를 책임지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말은 남북 접촉을 성의를 갖고 추진하되, 북한에 끌려다닌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현재 남북 관계의 위기는 현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과거 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한 결과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대통령은 보스워스 미국 대북 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간 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의 고위 인사가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이유를 파악하라”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측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김 전 대통령을 활용할지도 모른다’라는 경계심을 청와대가 드러낸 것이다. 이어 이대통령은 “6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와 대북 정책을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철저히 준비하라”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대통령, ‘정부 외교저널 창간’ 지시도

이대통령이 남북 관계에 대한 자신의 노력과 대통령 외교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얼마나 큰 아쉬움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다. 올 3월 청와대 대변인실은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에 “1년에 두 번 정도 발행되는 정부 외교저널을 창간하라”라고 지시했다. 언론이 부각시키지 않는 성과를 정부가 직접 나서서 홍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외교 성과를 외교부가 아닌 문화부에서 홍보한다는 것에 대해 외교부가 반대하면서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는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직은 남북 관계든, 외교든 홍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라는 외교부의 자체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대통령의 언급과 청와대 참모들의 분위기는 남북 대화를 추진하되 과거 김대중·노무현 브랜드는 지워버리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과거 청산의 바탕 위에서 현 정부의 독자적인 브랜드와 정책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강력한 기본 입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과거 ‘청산’은 있었으되 새로운 ‘창조’는 없었다는 비판의 소리가 많다.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이대통령에게 악몽일 수도 있다. 과거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데탕트 외교를 추진할 때 초당적으로 협력을 구하고 범국가적인 외교 기구를 운영했던 통합의 리더십이나,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처하면서 보여주었던 관리의 예술을 재현해달라고 요구하기에는 현재 국내 정치의 질곡이 너무나 깊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중순, 청와대 정무 라인은 ‘4·29 재·보선에 패배한 현 정국은 리더십·소통·정책이라는 3가지가 부재하다’라는 이른바 ‘3무’ 평가와 함께, 당·정·청의 과감한 쇄신을 건의하는 보고서를 이대통령에게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자”라며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약 열흘 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초특급 태풍이 불어왔다. 그 직후에는 북한의 2차 핵실험이라는 또 하나의 허리케인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결국, 자기 혁신의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현 정권의 위기 관리 역량은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우물쭈물하고 결단하지 못하면서 수세로 몰리는 가운데 현 정부는 특급 대북 정보를 다루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언론에 보도되도록 한 것이 그 첫 번째이고, 김정일 후계자로 김정운이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성급한 판단이 그 두 번째이다. 미국은 6월 초부터 한국의 이 두 가지 판단에 대해 “아직은 그렇게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신중할 것을 주문했고, 한·미 연합정보자산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한국 정부가 무단으로 활용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히 검증 단계에 오르지 않은 두 가지 정보가 그대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한반도 위기설’을 부풀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조짐마저 나타났다는 것이다.

▲ 지난 6월3일 방한한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외교통상부를 방문해 권종락 차관과 만나 회담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정보의 성급한 누설은 북한에 대한 한·미의 정보 수준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전략의 우위를 상실케 하고, 통상 정보사항은 확인해주지 않는다는 정보 관리의 기본 원칙을 정부 스스로 파기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위기 관리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문제점을 남겼다. 과거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자신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대화록을 언론에 넘겨 물의를 빚은 일에 비견된다는 평가이다.

국방부장관 ‘독주’도 비판받아

정부 차원의 위기 관리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도 강하게 지적되고 있다. 참여정부 브랜드라며 이미 정권 초에 해체해버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대신할 만한 강력한 외교안보 정책조정 기구가 현 정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다 가지고 있는 국가안보 기구가 유일하게 한국에만 없는 셈이다. 현재 장관급의 협의 기구가 존재하지만 여기에서는 부처 이기주의와 비밀주의를 견제할 만한 역량이 준비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자 당장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참여와 관련된 지난 4월의 정부 내 갈등과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4월 중순의 주말. 외교부 북미국은 직원 단합 산행을 하면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주된 초점은 PSI 참여 문제의 주무 부처인 외교부 참여 건의를 청와대가 거의 다 무시했다는 불만과 함께, 그 이유를 둘러싼 분분한 추측과 의견들이 나왔다. PSI에 참여하기를 결정해놓고도 세 번이나 그 발표를 연기하더니 결국, 유보시킨 그 ‘사고’는 각 부처의 입장을 조율하는 체계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반증이었다.

이와 함께 북한과 일전불사를 외치는 국방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2월13일 이대통령에게 북한 도발시 대응 계획을 독대 보고한 바 있다. 그런데 단 사흘 만에 그 핵심 내용이 국내 한 유력 일간지에 그대로 보도되었다. 여기에서는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할 때 그 발사 기지를 F-15K 전투기를 동원해 타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상의 확전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이다. 파문이 커지자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마치 국방부장관이 정부 전체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라며 이장관과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장관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북한 도발시 자체 판단으로 초기에 승전하라”라는 자신의 강경 지침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무리 군이 전투에 대한 전문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에 관한 발언은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지적이다. 군사적 대응 방향과 지침을 하달하는 당사자는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이 아니라 최고 군령권자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 전쟁지도본부라는 것이다. 이들이 군에 대한 구체적인 사전 지침을 주고, 또 위기시 확실하게 군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문민 통제가 무너진 ‘위험 국가’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를 넘어서 국방부장관이 마치 국가의 전쟁에 관한 문제를 이리저리 결정하는 것 같은 튀는 언행으로 정부 내부에서조차 우려를 자아냈다는 것은 국가 위기 관리에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 역시도 지난 정부의 NSC 사무처와 같은 위기 관리 전문 기구가 부재함으로써 초래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안보·국방 인사들 ‘높은 수준의 결의’ 필요

이러한 일련의 사실을 종합해볼 때, 이명박 정부는 위협의 당사자인 북한 김정일 정권을 관리하는 데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관리 역량을 결집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금의 남북 관계 위기가 또 다른 기회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현 정권의 안보·국방 분야 핵심 인사들이 한반도 정세를 제대로 주도해보자는 높은 수준의 결의를 다질 때라는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외교안보 분야 고위직을 지낸 한 원로 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현 정부가 곱씹어볼 만하다.

“북방 정책에 큰 업적을 남긴 지난 노태우 대통령 시절, 서동권 안기부장과 이홍구 통일부장관, 김종휘 안보수석 등은 한반도 정세를 제대로 우리가 한 번 주도해보자는 결의로 뭉쳐진 핵심 세력이라고 평가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임동원 통일부장관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이종석 통일부장관 등 역대 정권에서는 항상 자신의 불이익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대통령을 대신해 온몸을 던지는 전략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재임 당시의 국내 여론으로부터의 평가보다 역사에 자신의 평가를 맡기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는 과연 누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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