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돌린 8백98억원, 어디로 갔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7.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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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건설 전 자금부장 잠적 후 행적 오리무중…부인 “강원랜드에 드나들었다”

▲ 서울 광진구 구의동 동아건설 본사 1층에 박상두 전 자금부장을 수배하는 전단이 곳곳에 붙어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 즉시 현상금 3억원을 지급하겠습니다.’ 지난 7월18일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는 ‘현상금 3억원’을 내건 출처 미상의 수배 전단지가 붙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경찰이 만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동아건설 임직원이 내걸었다.

동아건설이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찾는 사람은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박상두 전 자금부장(48)이다. 박 전 부장은 회사가 은행에 맡긴 채무 변제자금 1천5백67억원 중 8백98억원을 빼내 지난 7월8일 잠적했다. 박씨의 공범인 유 아무개 전 과장(37)은 동아건설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회사에서 체포되었다. 공범이 체포되면서 박 전 부장의 신병 확보는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 전 부장의 행방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졌다.

도주한 지 열흘이 지나도 행방이 묘연하자 동아건설은 ‘현상 수배’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회사 임직원들이 여름 휴가비 중 일부를 십시일반 보태서 3억원을 만들었다. 회사측은 수배 전단지 5만장을 따로 제작했다. 서울 시내 주요 역과 터미널 등에는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수배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동아건설 본사(프라임센터 내) 1층 로비 곳곳에도 수배 전단지가 붙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 전 부장의 집이 있는 송파구 풍납동의 ㅎ아파트에는 동아건설 직원들이 밤낮으로 잠복 근무를 하고 있다. 동아건설이 박 전 부장의 행방을 찾는 데 전사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

동아건설 관할인 서울 광진경찰서도 박 전 부장을 전국에 수배하고 뒤를 쫓고 있지만 아직까지 단서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박 전 부장은 도대체 어디에 숨은 것일까. <시사저널>이 ‘8백98억원의 미스터리’를 집중 취재했다.

동아건설은 원래 동아그룹의 지주회사였으나 그룹이 해체되면서 급격히 몰락했다. 지난 2001년 5월 법원에서 파산 선고가 내려지면서 공중분해 직전까지 갔다. 그 뒤 가까스로 회생 절차를 거쳐 지난해 3월 프라임그룹에 인수되었다.

동아건설의 회생계획안이 법원의 인가를 받은 것은 지난 2007년 10월이다. 당시 동아건설 관리인은 미확정 회생채권을 신탁할 은행으로 신한은행을 선정하고 에스크로계좌(특정금전신탁계좌)에 1천5백67억원을 맡겼다. 동아건설의 신탁자금을 관리했던 곳은 신한은행 서초동 법원지점이었고, 동아건설에서 회생채권 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박상두 전 부장과 유 아무개 전 과장이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자금팀에 있으면서 신탁재산의 허점을 상세히 꿰뚫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은 꼴’이다.

박 전 부장이 신탁재산을 빼돌리는 수법은 간단했다. 회사 인감을 위조한 후 하나은행 을지로지점과 시화지점에 동아건설 명의의 위조계좌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신한은행 신탁부에 수익자를 지정하고 위조계좌에 돈을 입금하도록 했다. 신한은행은 박 전 부장이 지정한 수익자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3월4일부터 6월26일까지 총 8차례에 걸쳐 9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빼돌릴 수 있었다. 범행 기간이 3개월이나 되었는데도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았다.

사건이 터지자 신한은행과 동아건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우선 사건의 성격이 ‘횡령’이냐, ‘사기’냐를 놓고 각자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동아건설측은 박 전 부장과 유 전 과장이 신한은행의 에스크로계좌에 예치된 자금을 채권자 계좌가 아닌 위조계좌로 빼돌렸기 때문에 은행을 상대로 한 ‘사기’라는 주장이다. 또한, 신한은행은 신탁재산의 운용과 지급 내역에 대해 회생계획안을 제출한 채권자(11개 금융 기관)와 동아건설에 서면으로 통보해야 하는데도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현재 동아건설 파산법인의 신탁자금 수익자(채권자)는 1백42명이다.

각 수익자별로는 지급한도가 정해져 있는데, 수익자 중 하나인 동아건설의 경우 지급한도는 14억원이다. 이처럼 지급한도가 한정되어 있는데도 신한은행이 수백억 원을 동아건설 계좌로 입금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태규 동아건설 홍보담당 상무는 “수탁은행인 신한은행이 신탁재산 관리의 기본인 수익자 확인과 수익자별 지급한도 등을 확인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신한은행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동아건설·신한은행, ‘횡령이다’ ‘사기다’ 공방

▲ 동아건설 채무 변제 자금의 신탁관리를 맡고 있던 신한은행 서초동 법원지점. ⓒ시사저널 이종현

신한은행도 할 말은 있다. 일단 절차상 하자는 없었다고 강변한다. 박 전 부장 등은 기존에 하던 방식 그대로 인출일 전날 신한은행 신탁부에 전화해서 수익자를 지정하고 다음 날 자금을 인출해 달라고 요청했고, 수익자의 규정변제금 내에서 신탁자금을 인출했기 때문에 정당한 절차였다는 것이다. 또한, 자금이 인출된 후에는 곧바로 동아건설에게 그 사실을 서면이 아닌 e메일로 통보했다고 한다.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도 관행적으로 e메일 통보를 해 왔다는 것이다.

채수웅 신한은행 공보팀장은 “동아건설은 하나은행 계좌가 위조계좌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위조계좌인지 알 수 없다. 하나은행 지점에서 정상적으로 업무처리를 했다면 우리는 정상계좌로 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9백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동아건설 운영계좌에 입금되었는데도 회사측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의심이 간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박 전 부장과 돈의 행방 그리고 제3의 공모자의 존재 여부이다. 우선, 동아건설과 신한은행은 자체 감사 결과 자사는 문제점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제3, 제4의 공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아건설의 경우 신탁재산이라고 해도 무려 3개월에 걸쳐 9백억원에 달하는 돈이 움직였는데도, 회사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왠지 석연치 않다. 만약 회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회계 관리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인 ㅎ 사의 자금담당 부장은 “나도 이 사건을 처음부터 주시하고 있는데, 이상하다. 아무리 신탁재산이라고 해도 회사가 모를 수는 없다. 어떻게 수백억 원의 돈이 움직였는데 최소한 담당 임원은 알고 있어야 한다. 동아건설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아건설의 재경담당 임원인 정영권 상무는 “(박 전 부장이) 위조계좌를 만들고 서류를 위조해서 보고했는데 어떻게 알겠느냐. 채권자들의 신탁재산은 엄밀히 따지면 우리 담당 업무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업무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다만, 직원들의 관리 소홀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은행 직원의 공모 여부도 밝혀야 한다. 신한은행은 자체 감사를 통해 공모 여부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거액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경찰에서도 신한은행이나 기타 은행 직원의 공모 가능성에 대해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출입국 기록에는 해외로 나간 흔적 없어

그렇다면 박 전 부장은 거액을 빼돌려 어디에 썼을까. 우선 이번 사건의 공범인 박상두 전 부장과 유 아무개 전 과장의 관계부터 따져보자. 박 전 부장은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하던 해인 지난 1978년 동아건설에 입사했다. 입사 후에는 대부분 경리, 회계, 자금 부서에서 일을 했다. 자금부에 발령받은 것은 지난 2005년 회사가 파산 선고가 나면서부터이다. 회사 동료들에 따르면 박 전 부장은 평소 성실하고 업무 능력이 뛰어났으며, 매너도 좋았다고 한다. 

박 전 부장과 공모했던 유 아무개 과장은 지난 1991년 동아건설에 입사했고, 2004년쯤 자금팀으로 발령이 났다. 두 사람은 덕수상고 선후배 사이로 자금팀에서 함께 일하면서 절친하게 지냈다.

박 전 부장이 빼돌린 돈은 정확히 8백98억2천1백95만원이다. 지난 3월4일에 2백40억원을 시작으로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자신들이 관리하던 동아건설 법인통장으로 이체한 후 인출했다. 경찰은 박 전 부장이 빼낸 돈 가운데 100억원가량은 강원랜드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수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냈다.

경찰은 또 박 전 부장의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올해 들어 수십 차례에 걸쳐 강원랜드에 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2억원 이상을 칩으로 교환해야 출입할 수 있는 VVIP룸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박 전 부장이 카지노에서 환전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2천만원 이하의 돈을 칩으로 바꾸거나, 게임을 하고 남은 칩을 다시 돈으로 환전할 때는 교환하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는다. 박 전 부장은 이러한 맹점을 이용해 수표를 칩으로 교환한 뒤 다시 칩을 주고 현금으로 받는 수법으로 자금을 세탁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 50명을 고용해서 이런 방식으로 돈을 세탁했다면 10억원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럴 경우 추적은 불가능하다. 경찰은 또 횡령액 중 50억원은 박씨가 신한은행 계좌에 있던 회생 채무 변제금에 손대기 이전에 빼돌렸던 또 다른 회사 돈을 메우는 데 사용한 사실도 밝혀냈다.

환치기를 통해 돈을 세탁했을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부장은 회계, 경리, 자금 쪽에서만 30여 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전문가나 다름없다. 위험 부담이 높은 사채시장을 이용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사채시장에 거액이 나왔을 경우 바로 경찰 정보망에 노출되어 추적당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환치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다. 환치기 조직은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경찰 정보망에 노출될 위험도 그만큼 적다. 거액을 세탁할 경우 대부분 환치기 수법을 이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 전 부장이 알고 있던 비선 루트가 존재할 수도 있다.

현재 출입국 기록에는 박 전 부장이 해외로 빠져나간 기록은 없다. 그렇다고 국내에 있다는 보장도 없다. 위조 여권을 만든 후 중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경찰 간부는 “뒤끝 없는 환치기 조직은 얼마든지 있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위조 여권도 만들 수 있다. 한 10억원 정도만 있으면 중국 같은 데서 편하게 먹고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전모는 몸통인 박상두 전 부장이 잡혀야만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경찰과 박 전 부장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언제 끝날 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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