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자국 선명한 ‘가시밭길’ 오르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8.10 18: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식 조용히 치러

▲ 8월5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집권 2기 취임식에서 국민 단합을 촉구하고 외세 간섭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지난 8월5일 취임했다. 이란 신정(神政)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이니는 이보다 앞서 8월3일 아마디네자드를 4년 임기의 2기 대통령으로 공식 인준했다. 이로써 이란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1개월 반에 걸친 소요와 혼돈의 시대를 접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대통령 취임식에 해당하는 인준 행사는 초라하고 암울했다. 주요 야당 지도자들은 물론 일부 신정 요인들은 불참했고, 국영 TV는 행사를 생중계하지도 않았다. 과거처럼 축제도, 열광도 없었다. 오히려 전국에서 6월12일의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법정에서는 반정부 시위를 하다 체포된 100여 명에 대한 비공개 재판이 진행되었다. 수도 테헤란은 보안군의 철통 같은 경계 속에 점령된 도시처럼 침울하고 어두웠다. 

새 정부의 등장은 위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다. 집권 세력은 분열된 반면, 신정 반대 세력은 단결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지도자들은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디네자드의 경쟁자였고 부정 선거 규탄 시위의 중심 인물인 호세인 무사비와 두 전직 대통령 모하메드 하타미와 하세미 라프산자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목을 끈 것은 1979년 혁명을 주도했던 호메이니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의 불참이었다. 이는 30년 전 혁명이 퇴색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메이니는 “이 용감하고 성실하고 현명한 지도자를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라고 선언했으나 메아리는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거리의 시위자들은 아마디네자드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그가 인민을 상대로 쿠데타를 했다고 비난했다. 테헤란 중심가에 모인 일단의 군중들은 ‘허위와 살인과 사기의 정권에 축복’을 주문했다.

반정부 시위 계속…거물급 야당 지도자 검거 임박 소문도

▲ 8월4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 시위자가 ‘이란의 절대적 독재자’라고 쓴 포스터를 들고 있다. ⓒEPA

국영 TV는 하루 앞서 시위 주동자 두 명의 자백을 공개했다. 전 부통령과 전 내무차관이었던 두 사람은 검찰 진술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는 서방 세력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으며 부정 선거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자백’은 고문과 약물 중독 상태에서 강요된 것이었다는 것이 반체제 인사들의 주장이다. ‘반역자들’이 죄를 인정했다는 국영 TV의 보도는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든 시위에 다시 불을 질렀다. 재야 세력은 두 사람의 강제 자백을 반정 시위를 재개하는 촉매제로 삼았다. 정부도 강하게 나왔다. 향후 다시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법 시위를 하는 사람은 무차별 처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거물급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검거가 임박했다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분위기는 흉흉했다.  

이란은 이제 십자로에 섰다. 정부는 갈라지고 약화되었다. 권위도 없어졌다. 지금 상황은 1979년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 전야와 비슷하다. 역사적으로 이란 정부는 권력을 지탱하는 네 가지 지지 기반을 향유했다. 국정 수행 능력, 종교적 권위, 독립수호 의지, 사회적 안정 확보가 요체였다. 이 모든 축은 붕괴되었다. 부정 선거로 인해 대통령의 권위와 통치 능력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시위는 권력의 정통성을 앗아갔다. 특히 국민을 적대시하는 최고 지도자 하메이니의 강경 발언은 그에 대한 국민의 마지막 기대와 신뢰를 무너뜨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신권 정치의 정통성은 오래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권력 누수는 정권과 이슬람 교계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국정의 결과를 모두 신의 뜻으로 치부한 구차한 변명은 결국, 대국민 사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슬람 헌법은 모호하게나마, 최고 지도자의 권위는 신의 명령이 아니라 국민의 투표에서 나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란 지도자들이 이 대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자 국민들은 유권자의 뜻에 따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게다가 하메이니 정권은 이란의 독재를 가능케 했던 권력 기반까지 상실했다. 시장과 지주들에 대한 경제의 룰을 위반한 결과이다. 신정 지도자들은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의 비열한 권력 분배와 치부를 외세의 위협을 막는다는 구실로 정당화했다. 핵무기 개발, 미국과의 대결 정책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 점에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대이란 적대 정책은 이란 지도자들에게 안성맞춤의 구실을 제공했다. 그러나 미국에 오바마가 등장하면서 대화와 화해를 부르짖는 바람에 외세를 빙자한 국민 통제는 명분을 잃었다. 더 이상 외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신정을 받쳐주던 이슬람 성직자들 대부분이 군부 강경파와 재계의 마피아로 대체된 점이다. 국가혁명수비대는 현재 모든 정부 기관을 독점하고 신정의 성직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이전의 왕정처럼 현재의 권력은 대내외의 두 지지 기반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민중의 소요에는 취약하다. 1976년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과 2008년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뽑힌 것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이란은 카터의 왕정 지지를 외세의 위협으로 보았다. 그래서 혁명을 했다. 같은 논리로 만약 오바마가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포기한다면 이란 신정은 외세의 위협에 따른 위기론을 이용할 수 없다. 이는 즉각 소요로 이어져 30년 전과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은 1979년 혁명을 초래한 소요와는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 1979년의 위기가 서방과의 대결을 위한 외부 요인에서 온 데 반해 현 위기는 내부 요인으로 발생했다. 즉, 야당 후보자 무사비를 낙선시킨 선거 부정이 원인이다. 다만,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권력의 통제가 워낙 가혹하기 때문이다.

권력 기반 약해 민주화 흐름 막지 못할 듯

그렇다면 이란은 앞으로 어디로 가는가. 이란의 미래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하메이니 자신이 만든 교착 상태의 귀결에 의해 좌우된다. 선거 부정이 있었고 하메이니 자신이 ‘벨벳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쌍방을 극단으로 몰았다. 어느 쪽이든 입장 변화는 정치적 자살을 의미한다. 이제 와서 하메이니나 아마디네자드는 선거 부정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 순간부터 정치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과 이번 선거의 야당 후보 무사비도 하메이니의 요구를 수락할 경우 대중의 지지를 상실한다. 다시 말해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있다.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란 통치자들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엘리트 그룹을 양분시킨 뒤 어느 한쪽을 말살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집권층은 바로 이 단계에 도달했다. 신정 체제의 핵심 요인들이 아마디네자드에 반대하고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악화되는 경제 위기도 문제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융합하면 권력의 존립 기반은 없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이란의 미래는 이란 국민들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저항을 중단해도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저항을 계속하면 전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후자의 길로 간다면 이란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올 기회는 생긴다. 호메이니 혁명 후 초대 대통령을 지낸 바니 사드르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심상찮은 결론을 암시했다. 현재까지의 모든 정황으로 보아 민주화 혁명의 방향으로 이란 국민의 뜻이 모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