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바뀐 MBC 민영화 가시밭길로 끝내 들어서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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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계 인사 다수 포진…경영진 교체 나설 수도

▲ 지난해 7월2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 주최 토론회에서 김우룡 교수(가운데)가 발제하고 있다(왼쪽). ‘언론악법 원천 무효와 언론 장악 저지를 위한 100일 행동’은 지난 8월7일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청와대의 방문진 이사 선임과 관련해 “일방적 선임”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오른쪽). ⓒ시사저널 이종현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지난 7월31일 MBC의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새 이사진을 선임했다.

한나라당 추천 이사로는 김우룡 한양대 석좌교수, 최홍재 시대정신 이사,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남찬순 고려대 초빙교수, 차기환 변호사 등이 선임되었다. 민주당에서는 고진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원장, 정상모 MBC 통일방송연구소 전문위원, 한상혁 변호사 등을 추천해 이사로 선임되었다. 자유선진당 추천 이사로는 문재완 한국외대 법대 부교수가 선임되었다.

새로 선임된 아홉 명 이사의 면모를 살펴보면 보수 성향 이사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향후 MBC에 현 정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매머드급 변화의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변화로는 경영진 교체나 프로그램 개편, 구조조정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MBC 민영화 문제’가 핵심이 될 것이다.

보수 성향 이사들은 이사로 선임되기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MBC 민영화의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그 가운데서도 방문진의 새 이사장으로 가장 유력하게 부각되는 김우룡 교수가 대표적인 ‘MBC 민영화론자’이다. 그동안 민영화를 강하게 반대해 왔던 MBC 노조 등이 김교수를 비롯한 보수 성향 이사들의 선임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김교수가 지난해 7월29일 ‘뉴라이트 방송통신 정책센터’가 주최한 ‘MBC 위상 정립 방안’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날 김교수는 “MBC 민영화는 ‘방문진 체제’를 기본 골격으로 3단계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MBC 민영화 3단계론’을 주장했다.

다음은 당시 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그의 3단계론을 옮긴 것이다. ‘첫째, MBC 지역 방송사를 순차적으로 매각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지역 방송사의 자생력을 키우고 톱-헤비(top-heavy, 상부 조직의 비중이 큰 조직)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 소유 직할국(owned and operated)을 가맹국(an affiliate) 시스템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둘째, MBC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방문진이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인수하도록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장학 사업’을 충분히 지원토록 하되 방문진이 100% 대주주가 되도록 한다. 지방사 매각 대금은 정수장학회 지분 인수에 전용하게 된다. 정밀 평가를 해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지방사 매각으로 초기 5천억원 정도의 자금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방문진의 100% 지분 가운데 70%를 ‘국민개주제’(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국민만 청약할 수 있는 제도)와 종업원 지주제로 전환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MBC 소유 구조는 방문진 30%, 국민주 60%, 우리사주조합 10%로 바뀐다.’ 한마디로, 지방 방송사를 팔아 정수장학회 지분을 사들여서 소유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이 김교수가 제시한 MBC 민영화의 밑그림이다.

김우룡 교수 “과거 민영화 안, 원점에서 재검토”

하지만 당시에도 김교수는 자신의 민영화 방안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우선 ‘지역 방송사 매각’과 관련해 그는 “‘내 고장의 자랑’인 방송국을 통폐합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이다. 자칫하면 ‘사장’ 자리만 몇 개 줄일 뿐 갈등과 불협화음만 커질 위험도 적지 않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수장학회의 지분 30%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쉽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정수장학회의 ‘실질적인 주인’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지분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민영화의 선결 요건이다”라고도 했다. 여기에 ‘국민개주제’를 주장하면서도 “MBC가 국영이나 공사가 아닌 ‘주식회사’인데 MBC를 국민주 형태로 민영화할 수 있느냐는 점이 걸림돌이다”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김교수는 8월6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는 “내가 연구자로서 했던 민영화 주장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집행할지 다른 방안이 있는지는 다른 이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한다. MBC 자산에 대한 정밀한 측정을 한 다음에 ‘액션’이 나와야 한다. 법률 검토도 하고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해야 하고 이사들의 의견도 조율해야 한다.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지게 되면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과거에 내가 민영화 주장을 했다고 그 카드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MBC 노조의 ‘민영화 반대’ 방침은 확고하다. MBC 노조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방문진에서 MBC 민영화를 비롯해 전면적으로 MBC 길들이기를 시도한다면 노조뿐 아니라 간부들이나 경영진에서도 가만히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MBC 민영화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02년에도 민영화 논란이 일었다. 2007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MBC 민영화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지난해 초 한국광고주협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KBS 2TV와 MBC의 민영화를 건의하는 정책과제집을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광고주협회는 “KBS 2TV와 MBC는 광고 수입에 의존하고 내용도 민영방송 형태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공영방송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1공영 다(多)민영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MBC 민영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MBC 안팎에서는 일부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여권으로부터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호의적이지 않다”라고 ‘찍힌’ 프로그램들이 그 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그리고 TV의 <PD수첩>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특히 한나라당 추천 이사들은 “<뉴스데스크>가 보도의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라고 그동안 공공연히 밝혀왔던 터였다.

엄기영 사장 “어느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겠다”

하지만 현재의 방문진법에는 방문진이 프로그램이나 보도 내용을 ‘간섭’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친여 이사들이 경영진 교체를 통해서 프로그램 개편을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와 맞물려 최근 언론계 안팎에서는 엄기영 MBC 사장이 취임한 지 2년째인 내년 2월에 MBC 경영진이 모두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엄사장도 이를 의식했던 것일까. 그는 방문진 이사진이 선임된 후인 지난 8월3일 임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통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했다.

엄사장은 “많은 사원이 앞으로 방송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우리 MBC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자신에게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저는 어느 정파, 어느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가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또한, 현재를 ‘고비’라고 규정하면서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송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에도 공정하고 동일한 경쟁 규칙이 적용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MBC의 한 고참 기자는 “MBC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방문진 이사들이 경영 실적을 문제 삼아 엄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람들로 교체하려고 할 경우 노조의 신임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 노조의 힘을 받아 엄사장이 방문진의 인사 조치를 비판하며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면 거대 권력과 맞선 ‘스타’로 떠오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MBC 안팎에서는 대체로 방문진과 MBC 구성원들이 ‘대격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안도 걸려 있지만 무엇보다 MBC 구성원 상당수가 보수 성향 이사들이 다수 포진한 방문진을 ‘MBC 점령군’으로 본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김우룡 교수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MBC를 ‘좋은 방송’으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방송을 만드는 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령 다운사이징을 한다고 하면 인력 감축을 한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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