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깬 ‘연착륙’?, 위기는 이제부터?
  • 채은하 | 프레시안 미디어 담당 기자 ()
  • 승인 2009.12.0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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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찬반 투표 부결로 파업 불발…노조 “김인규 사장 반대 투쟁은 계속”

▲ 김인규 KBS 신임 사장(오른쪽 사진 가운데)이 11월24일 오전 취임식을 갖기 위해 KBS 본관으로 들어섰으나 노조의 강력한 저지로 결국 취임식을 취소한 채 되돌아갔다. ⓒ시사저널 유장훈


김인규 KBS 신임 사장은 ‘행운의 사나이’일까. 지난해  KBS 사장 응모 과정에서 안팎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포기 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스스로 대선 후보 캠프에 가면 사장이 안 된다는 선례가 된 셈”이라며 ‘분루’를 삼켰던 그에게 이병순 전 사장에 뒤이은 ‘제19대 사장’이라는 임기는 결과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가 되었다.

단순히 비교해도 당시 맡을 수 있었던 임기는 1년 반이고, 지금의 임기는 3년이다. 그의 임기는 2012년 11월23일까지로 자신의 임기 내에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 정국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시기를 거쳐 현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업어  연임까지 성공한다면 다음 정권까지 최대 6년을 생각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병순 전 사장의 연임이 아닌, 김인규 사장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사장은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방송전략팀장을 맡은, 이른바 ‘특보 출신’이다. 한 KBS 기자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당장 불거질 ‘낙하산 사장’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확실한 ‘내 사람’을 심으려 한 것이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반대로 김인규 사장을 맞는 KBS 구성원들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핵심인 공영방송에서 ‘특보 출신 사장’이라는 이력은 KBS 구성원들이 선임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결격 사유이다. KBS 노동조합의 현 집행부 또한 지난해 이병순 사장 취임 때부터 “김인규 사장 선임 반대”만은 일관된 주장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KBS의 분위기는 과거 서기원·서동구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일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2월2일 재적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지 못해 부결된 KBS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이다. 이날 오전만 해도 KBS 노조 집행부는 84.5%라는 높은 투표율에 ‘압도적인 가결’을 예상했으나, 전체 조합원 4천2백3명 중 2천24명이 찬성표를, 1천5백53명이 반대표를 던져 결국 재적 대비 찬성률이 48.18%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는 KBS의 딜레마를 그대로 반영한다. 사내 지지 기반이 없었던 이병순 전 사장과 달리 KBS 내부에는 김인규 사장의 지지 세력이 건재하다. KBS 내부에는 정연주 전 사장 시절부터 이른바 ‘김인규 사장 만들기 모임’ 성격인 ‘3인회’ ‘6인회’ ‘수요회’ 등이 존재해왔고, 그들 대부분이 요직을 맡고 있다. 김사장의 취임 후 첫 인사를 두고는 “논공행상식 인사”라는 반발이 일기도 했다.

사측은 투표 부결을 사실상 ‘신임’으로 여겨

평조합원 사이에도 김인규 사장을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대부분 이병순 체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된 반작용으로 “김인규는 그래도 이병순보다는 나을 것이다”라는 기대 심리에 의한 것이다. 한 조합원은 “이병순 사장은 지난 1년 반 동안 ‘흑자 경영’을 내세워 각종 제작비를 삭감해왔고 ‘공정·공익’을 내세워 조직을 경직화시켰다. 이병순 사장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병순 체제에 대한 KBS 구성원들의 높은 반감은 지난 사장 선임 국면에서 ‘이병순 연임 반대’를 분명히 하지 않은 현 KBS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한 KBS 노조 조합원은 “현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신임을 완전히 잃었다. 사내 게시판만 봐도 노조가 공지만 올리면 반대하거나 비꼬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라고 전했다.

또, 기자·PD·기술직·행정직 등 각 직군에 따라, 각 정치 성향에 따라,  세대에 따라 분열되어 있는 KBS 내부의 분위기도 김인규 사장에 대한 일치된 대응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평가이다. 보도국 고참 기자들과 일부 기술직·행정직 등에서는 김인규 사장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다. 이들이 대부분 ‘김인규 사장 반대 파업’을 제안한 KBS 노조 현 집행부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것도 KBS 노조를 고민스럽게 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KBS 노조는 “김인규 반대 투쟁은 계속한다”라는 입장이지만, 사측은 이번 투표 부결을 사실상 ‘신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KBS 안팎에서는 “김인규 사장의 실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취임사에서 당면 과제로 내세운 ‘수신료 인상’과 함께 평소 지론으로 주창해 온 ‘방송 직군 통합’ 등이 어떤 구조조정과 프로그램 개편으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PD 직군에서는 그 불안감이 더 크다. 한 PD는 “김인규 사장은 어쨌든 이명박 정부의 대선 특보 출신으로 지방선거, 총선, 대선 등을 앞두고 ‘이병순 사장 때보다 확실하게’ KBS를 바꿔야 한다는 책임을 지고 들어온 것이다. 이미 ‘관제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는 KBS의 경직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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