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해지는 대우건설 매각 특혜 시비도 ‘모락모락’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2.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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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자본 컨소시엄 등 3파전 양상…매각 주관사 산업은행의 시행착오 계속돼

 

▲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 정상화 관련 기자회견. ⓒ시사저널 이종현


대우건설 매각이 오리무중이다. 국내외 업체가 앞 다투어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으나 매각 주관사 산업은행(이하 산은)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매각 시기만 늦춰지고 있다. 산은은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정상화 방안에 대한 동의서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인도 자본이 주축이 된 TR아메리카 컨소시엄(이하 TRAC)은 ‘산은이 채권단 대표이자 매각 주관사로서 채권 확보라는 자기 임무를 망각한 채 대우건설을 특정 기업에게 넘기려 한다’라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대우건설 노조도 “산은이 아무 원칙 없이 특혜 시비를 일으키며 대우건설을 부적격 업체에게 넘기려고 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 경쟁은 지난해 공동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던 TRAC가 지난 2월16일 인수 재추진을 선언하면서 불이 붙었다. TRAC는 미국계 건설회사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으로 미국 뉴욕 1위 건설업체 티시맨, 인도 건설업체 DSC, 금융 보안 서비스업체 아메리카 뱅크노트를 비롯해 9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TRAC 대표는 문정민 AC개발그룹 회장이 맡고 있다. TRAC가 대우건설 인수를 선언한 다음 날 STX그룹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 1월7일 대우건설 인수 의지를 밝힌 동국제강 역시 적극 검토하고 있어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3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TRAC는 “산은이 국제 비즈니스 관례상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문정민 TRAC 대표는 <시사저널>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 대우건설 인수 협상 과정에서 TRAC는 일방적으로 배제되었다”라고 말했다. 문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TRAC는 산업은행 요구대로 12월24일 투자확약서(LOC)가 첨부된 자금 조달 계획서를 제출했다. 미심쩍어 하는 산업은행에게 은행 잔금 통장까지 보여주며 자금 동원 능력까지 증명하려 했다. 대우건설 주식 인수 가격을 주당 1만9천원에서 2만원까지 올리라는 산업은행 요구까지 받아들였다.

특정 기업에 인수 제안하면서 매각 대금 인하 조건 제시한 의혹도

그로부터 며칠 뒤 TRAC는 TV 보도를 통해 최종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대표는 “산업은행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협상 결렬과 관련해 TRAC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언론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 관계자를 인용해 ‘TRAC가 투자 확약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자금 동원 능력도 명확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되었다’라고 보도했다. 문대표는 “산은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수락했고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된 TRAC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산은은 협상 상대에게 아무 통지도 없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산은이 결례를 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TRAC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협상 담당자인 조현익 산업은행 부행장과 김석균 담당팀장과 연락을 시도했다. 문동기 산업은행 홍보팀장은 당사자 인터뷰를 거절하고 “산업은행은 지난해 말 채권단이지 매각 주체가 아니었다. 매각 협상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진행했으니 할 말이 없다. 산업은행 관계자가 TRAC 관계자를 만난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상자 기사 참조).

 

▲ 금호 아시아나그룹 박삼구 명예회장, STX그룹 강덕수 회장, 산업금융지주 민유성 회장(왼쪽부터). ⓒ시사저널 유장훈·임영무


TRAC는 재인수에 나서면서 자금 조달 계획을 강화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전략적 투자자(SI)의 자금 규모를 총 인수 대금의 60%에서 70%까지 끌어올렸다. 대우건설 지분을 성공적으로 인수할 경우 컨소시엄 소속 회사들이 보유한 60조원에 달하는 해외 건설 수주에 대우건설을 참여시키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TRAC는 외국계 자본 투자회사에 대우를 넘길 수 없다는 반대 여론을 불식시키고자 SI가 보유 지분을 제한하는 조건까지 제안서에 담았다. 특정 업체가 지분 20%를 넘게 보유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TRAC가 인수 재추진 의사를 밝힌 지 하루 뒤에 STX그룹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해외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건설 분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자 대우건설 노조가 즉각 특혜 시비를 들어 반발에 나섰다. 대우건설 노조 이용규 대외협력부장은 “대우건설 매각 대금 3조원 가운데 1조원만 내면 STX가 대우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명백한 특혜이다. 산업은행이 왜 이런 식으로 매각하려고 하는지, 왜 언론에 이런 내용을 흘리는지 의도를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STX측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확인해줄 것이 없다’라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이성희 STX 홍보 담당자는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인수를) 제안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STX가) 인수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산업은행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사모투자 펀드(PEF)에 투자할 대기업으로 STX 이외에도 2~3개 대기업들과도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대화가 상당히 오간 기업이 동국제강이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지난 1월7일 철강협회 신년 인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산업은행에서 제시한 주당 1만8천원 인수 대금은 다소 비싼 감이 있다며 합리적인 가격 조건으로 제안한다면 적극 검토해보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대우건설 노조, “산업은행이 뚜렷한 원칙 없이 추진” 불만

대우건설 노조는 역시 극렬히 반대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지난 1월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산업은행이 동국제강을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시키겠다고 하면서 5천억원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다가 사회적으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투자 금액을 1조원으로 슬쩍 올렸다. STX에 제안한 매각 진행 방식과 비슷하다. 자칫 ‘제2의 금호그룹’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우건설 노조는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을 추진하면서 뚜렷한 원칙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불평한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7월1일 대우건설 매각 주관사로 선정된 이후 대우건설 인수 물망에 오른 기업만 여섯 개에 이른다.

산업은행이 매수 주체를 찾지 못하자 한시가 급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속은 검게 타들어가고 있다. 금호그룹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이어 금호석유화학마저 워크아웃 대상으로 결정되면서 자금 확보를 위해 대우건설을 하루빨리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금호그룹의 애타는 마음은 지난 2월1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금호그룹은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내고 TRAC 인수 재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주요 내용은 TRAC가 주당 2만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할 의사와 능력이 확실하다면 투자 확약서와 이행 보증금을 납부하라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산업은행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이 있다면 매각 협상을 서두르기를 원하고 있다. 이에 문대표는 “매각 주관사가 이행 보증금 1천7백억원을 먼저 예치하라고 요구하면 수락할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등쌀에 밀린 산업은행은 지난 2월18일,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2월22일 전까지 정상화 방안에 대한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FI 17개사 가운데 7개 기업이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이다. 주요 FI인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도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PEF3본부 본부장은 “협상 과정에 있다는 말밖에 해줄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2월26일까지 동의서를 100% 받아낸 뒤에 대우건설 인수 절차를 밟아나간다는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서두를 수밖에 없다. 이미 FI들이 풋백옵션 행사 기한을 한 달 연장해주었다. 그것마저도 이미 지난 1월15일을 기점으로 지났다. 하루라도 시간을 끌게 되면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 대우건설은 1999년 말 워크아웃 이후 10년 동안 이미 세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고난을 겪었다. 알짜 기업으로 소문난 대우건설의 ‘주인 찾기’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TRAC와 산업은행의 진실 공방

<시사저널>은 지난 2월17일 문정민 TRAC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문대표는 ‘지난해 말 대우건설 인수 협상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TRAC를 부당하게 배제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시사저널>은 2월18일 오전 9시 문대표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산업은행측의 해명을 듣고자 산업은행과 접촉했다. 김영식 산업은행 홍보실장은 “왜곡된 사실이 보도될 수 있었는데 연락주어서 고맙다. 질의서를 보내면 당시 협상 당사자였던 조현익 산업은행 부행장, 김석균 담당팀장과 상의해 산업은행 입장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시사저널>은 문대표가 산업은행과 관련해 언급한 발언 요지를 정리해 보냈다. 이와 함께 ‘조현익 부행장이나 김석균 팀장과 만나거나 통화했으면 한다’라는 뜻도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용기 산업은행 홍보팀장은 전화로 “김석균 팀장이 들어오는 대로 당시 상황을 파악해 답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산업은행은 취재에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산업은행의 입장이 돌변했다. 문팀장이 오후 2시40분 전화 통화를 통해 “TRAC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산업은행 담당 임원이나 팀장이 TRAC 관계자를 만난 적이 없다. 지난해 말 대우건설 매각을 주도한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므로 산업은행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석균 팀장과 통화를 거듭 요청하자 문팀장은 “(산업은행이) <시사저널>의 질의에 일일이 답변할 의무가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기자가 “그러면 TRAC 주장에 대해 산업은행 공식 입장은 ‘노코멘트’로 처리하면 되겠냐”라고 묻자 문팀장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후 문팀장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대우건설 매각 과정과 관련해 양쪽 주장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TRAC 관계자는 “(TRAC 일행이) 2월18일 오전 11시 민유성 산업은행장과 만나기로 했다”라고 주장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조현익 부행장이나 김석균 팀장은 TRAC 관계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문정민 대표는 협상 중에 받은 조부행장과 김팀장의 명함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문대표가 산업은행을 음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받은 두 사람 명함을 챙긴 것이 아니라면, 산업은행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산업은행과 TRAC 사이에서 벌어지는 진실 공방은 대우건설 매각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탁상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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