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목 타는 경기도… 경남에선 ‘김두관 바람’ 거세질까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10.03.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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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지방선거 판세 점검 / 충북·충남 살얼음판 대결도 볼만

▲ 3월10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참여당 광역단체장 후보들 합동 기자회견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를 선언한 유시민 전 장관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종군기자로서 베트남 전쟁에서 이란-이라크 전쟁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분쟁까지 무려 30년 동안이나 전쟁을 직접 지켜본 에릭 두르슈미트(Erik Durschmied)가 책을 썼다. 우리말 번역서의 제목은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이다. 전쟁의 실패 원인으로 아집을 거론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달았으리라.

이 책에서 두르슈미트는 전쟁을 패배로 이끈 ‘얼치기’를 비판하고 있다. ‘편견에 찬 고정관념으로 급변하는 상황을 재단하는 지도자, 명료한 상황 판단이 아닌 무지와 복수심, 또는 개인적 영광 때문에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곧 얼치기이다.

흔히 선거도 전쟁에 비유된다. 선거에도 예측 불능의 요인이 작용하기도 하고, 정말 멍청한 생각을 하는 얼치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있다. 승패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전쟁의 온갖 악덕을 빼고 남는 ‘미덕’은 오직 하나, 진정한 지도자와 얼치기가 곧바로 판명된다는 점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각 당 후보들의 윤곽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에 따라 선거구별 판세 또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광역단체를 중심으로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판세를 점검했다.

우선 최대 승부처 수도권이다. 서울은 여야, 특히 한나라당 후보가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는 등 진도가 제일 더딘 곳이다. 그래도 판세는 있다. 리서치회사 ‘더 피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2월12일 조사부터 3월12일까지 네 번 실시한 가상 대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는 여야 1 대 1의 구도에서는 격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다. 3월 조사에서는 격차가 8%포인트에 불과했다. GH코리아가 2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오시장이 한 전 총리에게 51.1% 대 37%로 14%포인트 이상 앞섰었다.

현재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무죄를 받는다면 상승세를 탈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원희룡 의원의 발언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만약에 한 전 총리가 무죄를 받고 야권의 후보가 된다면, 여당으로서는 매우 힘든 선거를 치를 것이다. 앞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서 선거의 판세가 심하게 변동될 것이다.”

다만, 서울시장 후보로서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이나 정책 따위를 종합한 ‘후보 정체성’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부담이다. 또, 야권 단일화 협상에서 이탈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존재와 득표력도 짐이다. 추대가 아니라 경선을 요구하는 당내 경쟁자들의 아우성도 고려해야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위험 요소는 1심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받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후보가 재조정되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경기도지사의 경우, 새로운 유력 후보의 등장으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유시민 전 장관이다. 앞의 여론조사에 여러 후보들을 모두 넣은 가상 대결에서 유 전 장관은 14.4%로 민주당의 김진표 의원에 0.9%포인트 뒤졌다. 야권 단일 후보로서의 경쟁력에서도 김의원과 비슷한 정도였다. 여당의 김문수 지사와의 가상 대결에서, 김의원은 53.1% 대 25.1%, 유 전 장관은 55.0% 대 28.9%로 뒤처지는 지지율 구도를 보였다. 아직 야권의 다른 후보를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다.

문제는 김의원의 득표 한계와 유 전 장관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다. 기왕에 실시한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김의원은 김지사에게 많이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찌감치 뛰었음에도 이런 구도가 바뀌지 않아 그에게는 ‘필패 후보’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고착되어 있다. 반면에, 유 전 장관은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드러나듯 20~30대 유권자층에서 강세이다.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투표에 불참한 사람들,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층이 20~30대이다. 따라서 가능성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지지를 추동해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힘을 보여줄 수도 있다. 즉, ‘승리 후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그의 상승세가 두드러질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다. 지금의 지지율 구도로는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강제하기가 어렵다. 또, 민주당의 기초단체장 후보 등을 감안할 때 기호 2번 민주당 후보 없이 민주당이 선거를 치르기는 힘들기 때문에 단일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게다가 상당한 수준의 비토 세력도 부담이다. 따라서 유 전 장관의 등장이 단일화가 아니라 분열 양상이 심화되는 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천, ‘송영길 변수’ 따라 격전지로 떠올라

수도권 세 단체장 선거 중에서 판세가 격변한 곳은 인천이다. 기왕에 거론되던 야권 후보들은 여당의 안상수 시장에 비해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송영길 변수’가 생겼다. 앞의 여론조사에서 안시장과 송의원은 1 대 1 대결에서 각각 37.9%와 33.8%의 지지율을 보였다. 3월9~10일에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안시장 38.1%, 송의원 32.7%로 나타났다. 오차 범위 안 내지는 근접 상황에서 둘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의미 있게 볼만한 지역이 충청권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거의 석권했으나, 대선과 총선에서 호남을 제외하면 가장 약세를 보인 곳이다. 세종시 이슈 등으로 인해 이런 흐름은 여전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전에서는 염홍철 전 시장이 강세이다. 한나라당 소속인 박성효 시장과 민주당 후보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충북과 충남은 지지도 격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다. 충북에서는 한나라당의 정우택 현 지사 40.3%, 민주당의 이시종 의원 32.6%, 충남에서는 한나라당의 김학원 전 의원 18.4%, 민주당의 안희정 최고위원이 23.6%의 지지율을 보였다. 충남의 경우, 세종시 수정안 때문에 사퇴한 이완구 전 지사의 움직임, 심대평 의원의 행보가 변수이다.

나머지 지역 중에서는 경남이 관전 포인트이다. 한나라당 내 이방호 전 의원과 이달곤 전 장관의 대결도 이목을 끌 만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김두관 바람’이다. 김두관 전 장관은 이 전 장관과의 대결에서는 31.3% 대 24.1%, 이 전 의원과의 대결에서는 27.8% 대 27.6%로 약간 처져 있다. 해볼 만한 구도인 셈이다. 한나라당이나 대통령을 보는 시선에서 대구·경북에 비해 덜 우호적이었던 곳이 경남이다. 서거 1주기가 다가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도 깊은 지역이다. 여기에 민노당 김병기 후보가 8% 내외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들 사이에 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흥행 대박이 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직 지방선거의 판세나 성패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이번 선거는 ‘까봐야’ 결과를 알 만한 혼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로 오랜만에 선거다운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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