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산업 성장 발목 잡는 게임위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4.20 15: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타크래프트2’에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 내려…업계, “심사에 일관성 없다”며 자율 규제 필요성 제기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스타크래프트2에 대해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게임 콘텐츠 심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 4월14일 게임위는 게임업체 블리자드의 기대작 스타크래프트2에 폭력성, 언어 사용, 약물 복용 사유로 18세 이상 이용 가 판정을 내렸다. 게임위 질문·답변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이 올린 글이 쇄도하고 있다. 대부분이 게임위의 일관성 없는 결정을 성토하는 글이다. 블리자드가 시험판으로 앞서 두 차례 신청했던 심의에서는 15세 이상 이용 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받은 버전은 싱글 플레이가 포함된 완성본에 가깝다. 그렇다고 표현 수위가 갑자기 높아진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배 게임위 정책지원팀 실무관은 “15세 이상 이용가 판정을 내릴 경우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PC방에서 등급을 준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게임 출시를 앞두고 심의위원들이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4월12일 문화부가 발표한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 대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 '스타크래프트2’ 베타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PC방에서 한 게이머가 플레이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게임업계는 게임위가 국내 게임 산업 부흥을 가로막고 있다고 불평한다. 게임위 심사에 일관성이 없다 보니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불만이 다수이다. 예상치 못한 등급을 받을 경우 업체가 예정했던 출시 일정을 맞추지 못한다. 마케팅 계획이 전반적으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블리자드도 스타크래프트2 표현 수위를 조정하거나 청소년용 버전을 내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위는 각계를 대표하는 13명의 심의위원이 등급을 결정한다. 심의위원이 게임을 직접 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시연하고 이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하는 것은 전문위원 19명이다. 보통 한 게임에 전문위원 한두 명이 참여한다. 직접 게임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정하다 보니 단편적인 부분을 볼 수밖에 없다. 한 온라인게임업체 관계자는 “심의 기준이 보수적인 면도 있지만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번 스타크래프트2처럼 툭 튀어나오는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등급 결정의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점도 불만 사항이다. 한 모바일게임업체 관계자는 “업체가 염두에 둔 등급이 나오지 않을 경우 수정 작업을 거치게 된다. 피 색깔이나 무기를 바꾸는 식이다. 지적 사항이 명확하면 그 부분만 바꾸면 되지만 선정성·폭력성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수정을 가해야만 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초반 계획과 전혀 다른 게임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종배 게임위 실무관은 “상세하지는 않지만 등급 결정 사유서를 업체에 보낸다. 직접 문의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이의 신청을 제기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 게임 심의를 전담하고 있는, 서울 충정로3가에 위치한 게임물 등급위원회. ⓒ시사저널 유장훈

‘패치’ 발표하는 데도 심의…모바일게임업체 성장에도 걸림돌

 게임에 변화를 주는 패치가 나올 때마다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게임위가 만들어진 1999년에는 패키지 게임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이 국내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게임성에 변화를 주고 게이머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온라인게임에서 패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패치를 발표할 때마다 심의를 받아야 하면 그만큼 대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게임위에 대한 불만은 소규모 게임개발업체와 개인 개발자들 사이에서 더 크다. 최근 사전 심의 문제로 애플 앱스토어에 이어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까지 국내 계정에서 게임 카테고리가 없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오픈마켓은 국내 모바일게임업체, 그중에서도 개인 또는 소규모 개발자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준 곳이다. 유통망을 확보하기 어려운 개발자들이 통신업체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국내 계정 게임 카테고리가 사라진 탓에 외국 시장만을 공략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컴투스, 게임빌 등 국내 선두 업체들은 오픈마켓에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그밖의 업체들에게는 모험이다. 모바일게임 개발 업체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업체는 국내에서 거둔 수익을 바탕으로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인상한 심의 수수료도 불만 사항이다. 규모가 큰 게임 개발사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개인 개발자와 소규모 개발 업체에게는 큰 부담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자율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자율 규제 제도를 도입하자는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 ‘바다이야기’로 인해 사행성 문제가 부각되고, 온라인게임 과몰입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뒤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ESRB, 유럽 PEGI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게임 심의를 자율 심의 기구에 맡기고 있다.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곳은 한국을 비롯해 독일, 호주, 싱가포르 정도이다. 자율 규제가 이루어지는 미국, 일본, 유럽에서 출시되는 게임이 특별히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율 규제를 도입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국가 기관이 심의를 하는 나라는 자율 심의 능력이 발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업자들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가지고 심의를 매길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자율 심의에 대한 논의에 심의 주체와 사업자 체질 개선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오픈마켓에 관한 한 자율 규제는 조만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국회에 발의된 오픈마켓 심의에 대한 게임산업법의 일부 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으며, 지난 4월13일에는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오픈마켓 게임물을 서비스 제공자가 자율 심의해 유통할 수 있는 조항을 담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애플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 게임 카테고리가 없어지면서 촉발된소규모 게임 개발사들의 불만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