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재개 ‘뇌관’은 남아 있다
  • 채은하 | 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0.05.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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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 문제 해결 또는 성과 없이 후퇴…징계 수위·민영화 문제 등 곳곳에 ‘화약고’

 

▲ 파업 과정에서 중단 여부를 놓고 MBC 노조 내부에서는 극명한 대립이 빚어지기도 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5월14일 MBC 노동조합의 파업이 40일 만에 끝났다. 지난 1992년 52일간 계속된 ‘최창봉 사장 퇴진’ 파업에 이어, MBC 역사상 두 번째로 긴 파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긴 파업에도 ‘김재철 사장·황희만 부사장 퇴진’을 내걸었던 노조로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물러났고, 자연히 MBC 내부에 불씨는 그대로 남아 있다. MBC 노조 집행부가 파업 중단 방침을 밝힌 5월10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또 하나의 신기록으로 남을 조합원 총회가 그러한 내부 기류를 방증한다. MBC 노조 집행부는 비대위 결정을 통해 ‘파업 중단’을 결정했으나, 이를 승인해야 할 총회에서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MBC는 나흘간 ‘집행부 퇴진-재신임’ 과정까지 겪으며 격렬하게 토론을 벌였다. 비록 파업이 끝났지만, MBC 사내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한 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다시 말해 언제든 노사 대립이나 파업 재개가 또 불거질 수 있는, 일시적 미봉책일 뿐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현재 그와 같은 화약고는 곳곳에 널려 있다. 김재철 사장은 파업이 끝나자 노조 집행부 18명과 8개 직능단체장, 파업 중 사장의 결자해지를 촉구한 TV제작본부 소속 보직부장 12명과 사원 4명 등 42명을 일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언론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대량 징계이다. 특히 노조 소속이 아닌 보직부장과 MBC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일반 사원들까지 징계 대상에 포함되어 반발이 적지 않다. MBC 노조는 파업 중단 선언을 하면서 “<PD수첩> 폐지나 단체협약 파기, 노조 집행부 중징계 등이 있을 경우 비대위 지침에 따라 총파업을 재개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인사위원회에서 노조 집행부 등을 대상으로 ‘해고’ 등의 최고 수위 징계가 나올 경우 파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파업 사태 논란의 중심에 있던 황희만 부사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기에 더욱 불씨가 크다.

MBC 내부에서는 징계 수위를 두고 “사장 선에서 결정될 것 같다”라며 대부분 함구하는 분위기이다. 김사장은 파업 기간 “주도자는 물론, 참가자에 대해서도 회사는 법과 사규를 엄중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파업으로 해고되면 복직은 없다”라는 등의 강경한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김사장이 그처럼 고강도 징계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해고 등의 중징계가 나올 경우 MBC 노조가 재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고, 6·2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친 상황임을 감안할 때, 김사장이  일정 수준에서 마무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MBC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이번 대량 징계는 김사장의 MBC 내부 장악 수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 만큼, 필요 이상의 징계로 논란을 확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재우 신임 방문진 이사장도 ‘불화’ 예고

김우룡 전 이사장의 후임으로 신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선임된 김재우씨도 MBC 노조 조합원들의 위기감을 높이는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김재우 이사장은 방송계 경력은 전무한 채 삼성물산 본부장, 벽산그룹 부회장, 아주그룹 부회장을 맡아오며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언론계에서는 그의 내정 소식이 알려질 때부터 “MBC에 구조조정이 단행되는 것 아니냐”라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김이사장이 보궐이사로 선임되기 전부터 MBC 내 보수적 선임자 노조인 ‘공정방송 노조’와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라는 소문이 MBC에 퍼지고 있다. ‘김재철 사장도 공정방송 노조에 포위되었다’라고 보고 있는 MBC 노조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요인인 셈이다. 김이사장은 선임된 직후 “MBC가 대단히 위험에 처해 있다” “MBC는 장기간 노사가 화합하지 못했다”라며 MBC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합편성 채널 선정 일정과 김재우 이사장 선임을 동시에 진행·발표하면서 ‘MBC 민영화’ 가능성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방문진은 MBC 주식의 70%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방문진법을 개정해야 한다. MBC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파업 중단 결정에는 방통위의 종편 일정 결정과 김재우 이사장 선임 역시 영향을 미쳤다. 정권이 MBC를 두고 모종의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부분에 대한 경계심을 노출했다.

이 밖에도 <PD수첩>의 폐지 혹은 순치 가능성이나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 등으로 후폭풍이 번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MBC 내부에서는 “일부 예능 프로그램을 외주화한다더라”라는 식의 소문도 돌고 있다. 그러나 <PD수첩> 폐지나 인기 프로그램의 외주화 등 극단적인 조치는 자칫 시청자들의 반발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김사장이 취임 초기부터 강행하고 있는 지역 MBC 통폐합 문제 역시 쟁점으로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MBC 노조에도 이번 파업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다. 파업 중단 여부를 두고 1990년대 사번과 2000년대 사번이 극명하게 갈려 대립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비대위의 결정을 조합이 추인하는’ 방식을 두고 2000년대 사번 그룹에서 비민주적이라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MBC 노조로서는 기존의 노동조합과 다른, 새로운 의견 취합과 결정 방식을 강구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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