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횡령하는 ‘불량’ 교수들
  • 민현희 | 한국대학신문 기자 ()
  • 승인 2010.07.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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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새 10명 이상 적발 … 빼돌린 돈, 유흥비·펀드 투자·차 구입 등에 탕진

최근 각 대학에서 연구비를 횡령한 교수들이 줄줄이 적발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성을 대표한다는 교수들이 잇달아 비리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 정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정부와 대학은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을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나 현재 시행 중인 방안들은 대부분 실효성이 별로 없다. 이에 따라 정부와 대학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대책과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honeypapa@naver.com

교수들이 연구비를 횡령한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 기관들이 대학에 지원하는 연구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횡령 빈도나 액수 또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초부터 7월 초까지 1개월 동안에만 총 10명이 넘는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사례가 적발되었다. 교수들은 대부분 물품 대금 부풀리기, 인건비 빼돌리기 등의 수법으로 연구비를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사례 1   광주지검은 지난 6월29일 연구 기자재 납품업자들과 짜고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로 순천대 교수 두 명을 구속하고, 네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6년부터 올해 3월까지 기자재 납품업자들과 짜고 기자재 구입 대금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총 14억5천만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가로챘다. 이들은 횡령한 연구비를 사채를 갚거나 유흥비로 쓰며 탕진했다.

#사례 2   감사원은 지난 6월7일 강원대 A교수가 연구비를 부당 집행했다며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A교수는 2006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다양한 국책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원생을 연구보조원으로 등록해 3천7백여 만원을 타내고 연구보조원 다섯 명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자신의 계좌로 입금해 5천7백여 만원을 챙기는 등 총 1억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횡령했다. A교수는 빼돌린 연구비를 펀드에 투자했다.

#사례 3   부산지검은 지난 6월9일 부산대·부경대 등 부산 지역 국립대 교수 두 명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우선 부산대 B교수는 2003년 5월부터 100여 회에 걸쳐 연구보조원 인건비로 마련된 연구실 공금 총 1억9천여 만원을 빼돌렸고, 대학 산학협력단에 허위 인건비를 청구해 3억5천만원을 챙기는 등 총 5억4천만원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했다. 더불어 검찰은 부경대 C교수도 연구보조원 인건비 5천3백여 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약식 기소했다. 부경대에서는 지난해 5월에도 납품업자들과 공모하거나 인건비를 허위로 신청하는 등의 수법으로 두 명의 교수가 총 13억원을 횡령해 구속 기소된 바 있다. 기소된 부산 지역 교수들은 빼돌린 공금을 부동산·주식에 투자하거나 승용차를 사는 데 사용했다.

이 밖에도 지난 7월1일에는 전남대 D교수가 연구보조원들의 통장으로 입금된 돈 1천만원을 챙긴 혐의로 입건되었고, 현재 일부 대학 교수들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등 전국 곳곳에서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연구비 횡령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교수들의 비도덕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허술한 감시·처벌 체제가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두 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서울 노원구 서 아무개씨(54)는 “두 자녀의 학비를 내려면 매 학기 허리가 휜다. 어렵게 대학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정작 교수들은 학생이 아닌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학자·교육자로서의 양심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라고 한탄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횡령 사건 재발 낳아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대학원에 다니는 박 아무개씨(27) 역시 “다른 대학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소식을 접하면 ‘혹시 우리 교수님도?’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으로서 스승을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속상하다. 연구비 횡령 혐의가 적발될 경우, 해당 교수에게 지도받았던 학생들이 느끼는 회의감은 상당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대학은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을 방지하기 위해 △인건비 풀링제 △연구비 카드제 △내·외부 감사 △기자재 구매 감독 등의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들은 단순히 형식으로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대학은 연구비를 횡령한 교수에게 일시 정직·감봉 등의 솜방망이식 처벌만을 내리고 있다.

순천대·부산대 등을 수사했던 광주·부산 지검 관계자는 “연구자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함께 연구비 집행에 관한 체계적 관리·감독 체계가 미흡한 것이 횡령 사건이 반복되는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대학의 수시 관리와 사후 점검이 대단히 허술한 것도 문제이다. 정부·대학 차원에서 연구비 집행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전남 지역의 한 대학 교수는 “현재로서는 교수들이 연구비 횡령에 대한 유혹을 느낄 때 이를 실제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개인의 양심밖에 없다. 연구비 사용에 대한 관리·감독이 허술해 많은 교수가 ‘설마 걸리겠어?’라는 마음으로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연구비 횡령을 원천 봉쇄할 방지책을 마련하고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또 횡령 교수들에 대한 처벌을 장기 정직, 파면 등으로 대폭 강화해 부정행위를 저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옳다”라고 밝혔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5월 정부가 지원한 연구비를 횡령할 경우 횡령금의 최대 10배에 상응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산업기술혁신촉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동안 정부는 대학·기업 등이 연구비를 유용하면 출연금을 환수하고, 향후 정부가 시행하는 R&D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징계 조항만을 두고 있었다.

지식경제부는 “기존 징계 조치로는 연구비 유용·횡령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과징금 등으로 금전적 제재를 가하면 연구비 부정 집행을 좀 더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양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6월 국내 최대 MRO 구매 아웃소싱 기업인 서브원과 계약을 체결하고, 전국 대학 중 최초로 ‘연구 재료 중앙 구매 아웃소싱 서비스’를 도입했다. 한양대는 연구에 필요한 실험 소모품, 각종 시약, 비품 등의 구매를 서브원에 아웃소싱함으로써 연구비 관리의 투명성을 더할 방침이다. 또 지난 6월 교수 6명의 연구 횡령 혐의가 무더기로 적발된 순천대는 시민 감사 옴부즈만제, 삼진아웃제 등을 도입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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