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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비판해도 ‘보수성’ 못 깼다

<자이언트>, 지난 시대의 그늘 들춰 시청률 상승에 호평까지…재벌 두둔하는 스토리에 실망할 수도

하재근 | 대중문화평론가 ㅣ 승인 2010.08.10(Tue) 13: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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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월화드라마의 경쟁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1위를 질주하던 MBC <동이>가 시청률 20% 선을 향해 주저앉는 중이고, 절반의 실패작으로 간주되었던 SBS <자이언트>가 20% 선을 향해 치고 올라가며 독주 체제가 양강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자이언트>는 시청률 상승 말고도 또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방영 초기에는 보수적인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비난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자이언트>가 박정희 정권의 부패, 중앙정보부의 공작, 광주 학살, 삼청교육대의 폭력 등을 묘사하며 보수성이라는 꼬리표를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난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히려 비판적인 시대극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시청률도 올라가고 호평까지 받는 겹경사를 맞은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자이언트>의 시청률이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자이언트>의 보수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 <자이언트>에서 절대악으로 그려지고 있는 중앙정보부 과장 역을 맡은 정보석(오른쪽).
ⓒSBS 제공

<자이언트>는 최근 들어 통속 멜로와 막장 드라마적 성향이 강해졌다. <자이언트>가 막장 드라마라는 것이 아니라, 막장 드라마에서 보이는 코드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먼저 통속 멜로 쪽을 보자. <자이언트>는 신분 갈등이 내재된 삼각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건설 재벌 회장의 딸을 둘러싸고 중앙정보부 간부의 엘리트 아들과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이범수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급·신분 차이가 내재된 삼각관계는 통속 멜로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주인공 세대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세대인 이덕화도 ‘천한’ 술집 여자에게서 낳은 딸과 정실 부인 사이에 끼어 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제빵왕 김탁구>도 이런 식의 ‘천한 소생’ 자식과 본처의 갈등이 주요 대립 축이다. 이런 식의 구도는 주부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익숙하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동생인 황정음도 버스 안내원과 가수 지망생 등을 하며 익숙한 1970~80년대식 멜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이언트>는 튼튼한 시대극이다. 그것으로 장년층 남성 시청자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거기에 최근 들어 위에 열거한 통속 멜로적·막장 드라마적 경향성이 강화되며 인기에 탄력이 붙은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상징적인 모습들이 배치되어 추억을 자극하기도 한다. 비난이 호평으로 바뀌며 이 작품을 보는 언론과 네티즌의 시선이 달라진 것도 시청률 상승에 한몫했다.

중앙정보부가 나오고 독재와 정치 부패가 나온다고 해서 <자이언트>의 보수성이 다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이 1970~80년대와 같은 독재 상황이었다면 독재 비판이 진보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이미 미국식 민주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보수성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미국의 보수적인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국가 권력이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대신에 개인과 기업의 위대성, 자유가 찬양된다. 한국에서의 보수성의 기준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보수성 판단에는 시장·자본·개인에 대한 입장을 새 기준으로 삼아야

<자이언트>에서 절대악은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이다. 대체로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정권측 인물들이 차갑게 그려지고, 건설협회 기업가들은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잘못은 독재 세력에 있을 뿐 기업은 살기 위해 협력한 죄밖에 없다는 식이다. 건설 재벌인 이덕화는 부패와 투기에 야합하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협력하게 된다. 그는 한국 최고의 건설 재벌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수없는 위기를 돌파하며 근면 성실하게 일한다. 부를 누리는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돈을 버는 과정도 대체로 정당하게 그려진다. 이것은 정권의 특혜로 자본을 축적한 한국 기업들의 과거를 은폐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박정희는 이미 죽었고, 독재 정권도 사라진 지 오래다. <자이언트>는 모든 악덕을 지나간 권력에게 떠넘기며 현재의 권력인 자본을 정당화한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기업가인 이범수의 자수성가 이야기까지 나올 예정이다. 모든 자수성가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이범수의 성공은 그 구도상 1세대 자본이 독재의 핍박을 받으며 피땀 흘려 일군 성공 위에 2세대인 이범수가 더욱 깨끗한 자본으로 우뚝 선다는 이야기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보수 영화의 주인공은 기업가, 가부장, 전사의 이미지를 가진다고 한다. <자이언트>의 이범수도 기업가, 가족, 전사의 이미지를 유사하게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이 과거 독재 권력의 어두운 면을 그린다는 이유로 보수적이지 않다는 매체들의 판단은 시대착오적인 오판이다. 이제 한국에서 보수성의 기준은 독재 여부가 될 수 없다. 시장, 자본, 개인에 대한 입장이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적어도 현재까지의 <자이언트>는 보수적인 작품이다.  

 박상민·정보석·황정음 “대박~”

 
▲ <자이언트>에서의 박상민(오른쪽).
ⓒSBS 제공
박상민이 <자이언트>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박상민은 <장군의 아들> 이후 하락세였다. 최근 들어서는 그저 그런 아저씨 배우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박상민은 마치 <아이리스>의 김승우처럼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수혜자로는 정보석을 꼽을 수 있다. 정보석은 시트콤에서는 웃기는 남자로 성공을 거두더니, 이 작품에서 악역 연기로 자신이 정통 연기자임을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정극 연기에 합격점을 받은 황정음도 수혜자라고 할 수 있지만, 스타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다. 이범수와 박진희는 아직까지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두 주연의 카리스마가 살아나지 않은 것이 시청률이 더 탄력받지 못하는 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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