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9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김충조 민주당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이 아홉 명의 이름을 느릿느릿 하나씩 불러나갔다. 16명의 후보 가운데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 경선(컷오프)을 통과한 이들이었다. 박주선·정세균·천정배·손학규 후보까지의 반응은 ‘그러려니’였다. 그 다음, ‘이인영’이 불리자 ‘아~’ 하는 안도감이 흘러나왔다. ‘최재성’이 나오자 ‘어~’ 하고 동요가 일었다. 마지막 아홉 번째로 ‘백원우’가 불리자, ‘와~’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486 세 명 모두가 본선 진출권을 얻은 것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애초부터 ‘빅3’ 구도가 형성되며 이들 중심으로 판이 돌아갔다. 경선 규칙(룰)과 관련해서도 이들 세 명에게 유리한 구도가 무엇인지를 놓고 계파 간 합종연횡이 벌어졌다. 지난 2년 동안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왔던 정세균·손학규 전 대표는 손 전 대표가 2012년 공천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동영 의원 쪽과 손잡으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결국 경선 규칙을 정하는 전대준비위원회는 표결 처리라는 세 대결 형식을 통해, 집단지도체제 도입과 당권·대권의 대선 1년 전 분리를 확정했다. 투표도 대의원 투표(70%)+당원 여론조사(30%)를 섞기로 했다.
대표-최고위원을 통합하는 집단지도체제 도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쪽은 당내 486 세력이었다. 이들은 기존대로 대표-최고위원 분리 투표를 치른다는 전제하에, 대표로는 정세균 전 대표를 지원하고, 최고위원에는 486 진영 두세 명을 진출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통합 선거가 치러지면서 정세균·정동영·손학규·박주선 등 중진 후보들이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486 소장파가 설 자리가 확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들이 집단지도체제 극복 방식으로 내세운 이슈는 ‘단일화’였다. 지난 9월5일 전대 룰이 확정되자마자, 우상호 전 대변인과 임종석·이철우 전 의원 등 486은 긴급히 모임을 가져 최재성·이인영·백원우 후보의 단일화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9일 컷오프는 각자 치르고, 이튿날인 10일까지 단일화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정작 ‘이변’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486 세 명이 모두 아홉 명 후보군에 들었을 뿐 아니라 손학규·정동영·정세균 등 이른바 ‘빅3’ 중 ‘누군가 한 명’이 하위권으로 처진 반면, 486 후보 3명이 모두 중상위권에 들었고 여기에 이인영 전 의원이 2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빅3’라는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세대교체론이 본격화되며 당내 새로운 권력 구조가 탄생할 것임을 시사하는 신호탄이었다.
본선에서 누가 1등 차지하느냐에 따라 ‘빅3’ 운명 갈릴 듯
486의 선전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민주당의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삼각 체제는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민주당이 비록 ‘공정한 본선 게임’을 위해 득표율·순위를 절대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하위권에 머문 ‘누군가 한 명’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세 명의 미래에 대한 의심을 자아낼 것이 분명하다.
우선 이들 대주주가 지금까지 누려온,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군이라는 위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대가 당권이 아니라 대권으로 가는 교두보임을 내세워온 손 전 대표나 2007년에 이어 2012년 대권을 겨냥해 ‘담대한 진보’라는 ‘노선 정치’를 시작한 정의원, 당장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민주당의 ‘안정 관리’를 통해 대권의 꿈을 꾸고 있는 정 전 대표 모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만약 본선에서 486 단일 후보가 빅3 중 누군가를 밀어내며 3위 안에 들 경우 이들의 위상은 더욱 위협을 받게 된다.
486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룸에 따라, 일단 컷오프를 통과한 일곱 명은 모두 당 지도부에 들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은 본선에서 여섯 명인 선출직 최고위원에 여성 후보가 선출되지 않을 경우에는, 여성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한 후보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한때’ 대권 후보군에 속했던 추미애 후보를 제친 조배숙 후보는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최고위원직을 맡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최고위원이 되는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고려한다면, 일곱 명 모두 당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다.
앞으로 빅3의 운명은 누가 1등을 차지할 것인지, 득표율 순위는 어떻게 될지에 달려 있다. 1인2표제로 치러지는 본선에서, 486의 파괴력에 맞서 빅3 간에 연대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 486 후보가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등장한다면, 당 지도부는 훨씬 긴장감 있게 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래 486을 기반으로 삼아 연합군을 형성해 온 정 전 대표는 486 후보와 함께 비주류들과 대립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천정배·정동영·박주선 등 당내 비주류 모임인 쇄신연대 후보들은 함께 뭉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호남의 대표성을 내세워온 박주선 후보와 개혁 노선이 선명한 천정배 후보가 본선 이후에는 각기 독자 행보를 하면서 ‘자기 정치’를 해나갈 수도 있다. 손 전 대표의 경우에는 좀 더 복잡하다. 독자 행보를 하거나 이들 비주류 후보들과 때에 따라 연대하거나 아니면 486 후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당내 기반을 좀 더 다지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주류-비주류-손학규 전 대표의 삼각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좀 더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빅3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빅3 가운데 누군가가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기력한 당의 체질과 체력을 개선해 수권 정당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 이는 결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함께 손잡고 2012년 총선·대선에 임할 수 있느냐는 데까지 이어진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확인되었듯 야권 연대·야권 통합의 시대적 소명과 화두를 누가 적극적으로 거머쥐고 ‘민주당호’를 지휘할 수 있을까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