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턱밑에 치고 올라간 ‘486’
  • 이유주현 | 한겨레 정치팀 기자 ()
  • 승인 2010.09.1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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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 대회 예비 경선 결과 3명 본선 진출…손학규·정동영·정세균 삼각 체제, 변화 기로에

지난 9월9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 김충조 민주당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이 아홉 명의 이름을 느릿느릿 하나씩 불러나갔다. 16명의 후보 가운데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 경선(컷오프)을 통과한 이들이었다. 박주선·정세균·천정배·손학규 후보까지의 반응은 ‘그러려니’였다. 그 다음, ‘이인영’이 불리자 ‘아~’ 하는 안도감이 흘러나왔다. ‘최재성’이 나오자 ‘어~’ 하고 동요가 일었다. 마지막 아홉 번째로 ‘백원우’가 불리자, ‘와~’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486 세 명 모두가 본선 진출권을 얻은 것이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애초부터 ‘빅3’ 구도가 형성되며 이들 중심으로 판이 돌아갔다. 경선 규칙(룰)과 관련해서도 이들 세 명에게 유리한 구도가 무엇인지를 놓고 계파 간 합종연횡이 벌어졌다. 지난 2년 동안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왔던 정세균·손학규 전 대표는 손 전 대표가 2012년 공천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동영 의원 쪽과 손잡으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결국 경선 규칙을 정하는 전대준비위원회는 표결 처리라는 세 대결 형식을 통해, 집단지도체제 도입과 당권·대권의 대선 1년 전 분리를 확정했다. 투표도 대의원 투표(70%)+당원 여론조사(30%)를 섞기로 했다.

대표-최고위원을 통합하는 집단지도체제 도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쪽은 당내 486 세력이었다. 이들은 기존대로 대표-최고위원 분리 투표를 치른다는 전제하에, 대표로는 정세균 전 대표를 지원하고, 최고위원에는 486 진영 두세 명을 진출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통합 선거가 치러지면서 정세균·정동영·손학규·박주선 등 중진 후보들이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486 소장파가 설 자리가 확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이들이 집단지도체제 극복 방식으로 내세운 이슈는 ‘단일화’였다. 지난 9월5일 전대 룰이 확정되자마자, 우상호 전 대변인과 임종석·이철우 전 의원 등 486은 긴급히 모임을 가져 최재성·이인영·백원우 후보의 단일화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9일 컷오프는 각자 치르고, 이튿날인 10일까지 단일화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정작 ‘이변’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486 세 명이 모두 아홉 명 후보군에 들었을 뿐 아니라 손학규·정동영·정세균 등 이른바 ‘빅3’ 중 ‘누군가 한 명’이 하위권으로 처진 반면, 486 후보 3명이 모두 중상위권에 들었고 여기에 이인영 전 의원이 2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빅3’라는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세대교체론이 본격화되며 당내 새로운 권력 구조가 탄생할 것임을 시사하는 신호탄이었다. 

▲ 9월9일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 예비 경선에서 손학규·정세균·정동영(왼쪽부터)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본선에서 누가 1등 차지하느냐에 따라 ‘빅3’ 운명 갈릴 듯

486의 선전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민주당의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삼각 체제는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민주당이 비록 ‘공정한 본선 게임’을 위해 득표율·순위를 절대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하위권에 머문 ‘누군가 한 명’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세 명의 미래에 대한 의심을 자아낼 것이 분명하다.

우선 이들 대주주가 지금까지 누려온,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군이라는 위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대가 당권이 아니라 대권으로 가는 교두보임을 내세워온 손 전 대표나 2007년에 이어 2012년 대권을 겨냥해 ‘담대한 진보’라는 ‘노선 정치’를 시작한 정의원, 당장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민주당의 ‘안정 관리’를 통해 대권의 꿈을 꾸고 있는 정 전 대표 모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새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만약 본선에서 486 단일 후보가 빅3 중 누군가를 밀어내며 3위 안에 들 경우 이들의 위상은 더욱 위협을 받게 된다. 

486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룸에 따라, 일단 컷오프를 통과한 일곱 명은 모두 당 지도부에 들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은 본선에서 여섯 명인 선출직 최고위원에 여성 후보가 선출되지 않을 경우에는, 여성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한 후보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한때’ 대권 후보군에 속했던 추미애 후보를 제친 조배숙 후보는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최고위원직을 맡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최고위원이 되는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고려한다면, 일곱 명 모두 당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다.

앞으로 빅3의 운명은 누가 1등을 차지할 것인지, 득표율 순위는 어떻게 될지에 달려 있다. 1인2표제로 치러지는 본선에서, 486의 파괴력에 맞서 빅3 간에 연대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까지 상상해볼 수 있다. 486 후보가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등장한다면, 당 지도부는 훨씬 긴장감 있게 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본래 486을 기반으로 삼아 연합군을 형성해 온 정 전 대표는 486 후보와 함께 비주류들과 대립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천정배·정동영·박주선 등 당내 비주류 모임인 쇄신연대 후보들은 함께 뭉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호남의 대표성을 내세워온 박주선 후보와 개혁 노선이 선명한 천정배 후보가 본선 이후에는 각기 독자 행보를 하면서 ‘자기 정치’를 해나갈 수도 있다. 손 전 대표의 경우에는 좀 더 복잡하다. 독자 행보를 하거나 이들 비주류 후보들과 때에 따라 연대하거나 아니면 486 후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당내 기반을 좀 더 다지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주류-비주류-손학규 전 대표의 삼각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좀 더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빅3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빅3 가운데 누군가가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기력한 당의 체질과 체력을 개선해 수권 정당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 이는 결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함께 손잡고 2012년 총선·대선에 임할 수 있느냐는 데까지 이어진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확인되었듯 야권 연대·야권 통합의 시대적 소명과 화두를 누가 적극적으로 거머쥐고 ‘민주당호’를 지휘할 수 있을까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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