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왜 합쳐” 들끓는 군심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10.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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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관학교 출신들 ‘통합안’에 특히 반발…청와대, 육·해·공군 ‘합동성’ 강화 위해 임기 내 마무리 방침

정부가 육·해·공 사관학교의 통합을 재추진하고 있다. 3군 사관학교의 통합은 지난해에 추진하다가 군의 반발에 부딪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대통령 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국방사관학교’(가칭) 설립을 검토하면서 다시 시동이 걸렸다.

지난 9월3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방 개혁 보고’에도 국방사관학교 설립 등 사관학교 통합안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육·해·공군의 합동성 강화를 위해 사관학교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임기 내에 통합을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육군 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와 육군 3사관학교를 먼저 통합하고, 그 다음에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국방부 직속의 국방사관학교 설립이다. 즉, 선발과 생도 교육은 통합·운용하고, 졸업 때는 각 군 장교로 임관시킨다는 것이다. 정부는 조만간 토론회와 각계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친 후에 타당성 여부를 판단한 후 통합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관학교 통합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어, 군의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가 관건이다. 특히 육군 3사관학교를 육사에 통합하는 안이 알려지자 3사 출신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3사 총동문회는 ‘실력 행사’까지 운운하며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사관학교 통합안이 나왔을 당시에는 3사 통합이 없었다가 이번에 새로 등장했다.

 

▲ 지난해 10월1일 충남 계룡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각 군 사관생도들이 도열해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3사 총동문회는 9월7일 김태영 국방부장관에게 ‘육사-3사 통합 관련 질의서’를 보낸 상태이다. 손은숙 3사관학교 총동문회 사무총장은 “전체 동문들에게 각 기수별로 지침을 내려보냈다. 각 동대장들에게도 이런 상황을 전파하고 반대 서명을 받고 있으며, 모금을 통해 (반대하는 내용의) 신문 광고도 낼 것이다. 만약 육사와 3사의 통합을 강행할 경우 시위 등 실력 행사에도 나서겠다. 현역들에게는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현역 소령들 중에는 ‘분신하겠다’라고 하는 이도 있는 등 상당히 동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군내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9월 초쯤에 육사, 3사, 육군 교육사령부에 ‘장교 양성 과정 정비 토의 계획’을 제목으로 하는 학교 통합과 관련한 공문을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학교 통합과 관련해 이해시키자는 차원에서 공문이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통합과 관련해 육군본부에는 함구령이 떨어지는 등 군내의 동요를 막기 위해 조심하는 분위기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안’이 전파되면서 현역이나 생도들도 이런 상황을 감지하고 있다고 한다.

3사 출신의 한 인사는 “얼마 전 내가 만난 현역 장교는 ‘잠이 안 온다. (육사 출신들이) 본인들의 경쟁 상대를 말살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분개하고 있다. (3사) 생도들이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개개인들은 통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3사 출신의 현역 대령(연대장)은 “육사와 3사 통합에 반대한다. 13년 주기로 3사를 없애려고 하는데 육사와 3사를 통합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3사 출신들의 사기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3사 죽이기이다”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3사 출신들이 반발하자 국방부는 9월17일 3사 총동창회를 찾아 ‘육사-3사 통합’과 관련해 설명 자료를 제시하고 약 2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이근범 국방교육정책관은 “합동성·경제성·효율성 강화를 위한 단일 사관학교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하기 이전에 육군 내 두 개 사관학교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동일군 내 양성 목표가 비슷한 두 개의 사관학교를 운용함에 따라 출신별 진급 관리로 능력 본위의 인사 관리를 하는 데 제한을 받고 있다. 육사와 3사를 통합하면 진급 선발을 할 때 출신 안배가 불필요하고 능력 본위의 선발이 가능하다. 출신 간 갈등과 피해 의식을 완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손무현 3사 총동문회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사관학교를 통합하려면 우선 3사를 포함해 각 군 사관학교를 동시에 폐교하고 통합을 추진하면 된다. (육사와 3사는) 학교의 시스템이 다르고 예비역의 역할이 다르다. 정말 우리 군을 개혁하려면 사관학교 통합이 아니라 육군의 인사 분야를 먼저 개혁하고 출신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3사 총동문회는 10월1일 국군의 날을 맞아 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국방부가 3사 총동문회의 반대 의견을 제고해야 한다”라며 압박했다. 사관학교 통합과 3사 출신들의 반발에 대해 육군본부 관계자는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넘어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언급할 것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해군과 공군도 사관학교 통합에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국방부에서 통합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어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이다. 해군본부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검토하고 있는 의제이기 때문에 아직은 입장을 내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안이 공식화될 경우 해·공군의 조직적인 반발이 예상된다.

박광용 해군사관학교 총동창회장(예비역 해군 소장)은 “아직 동창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각 군의 고유 기능이 있고 임무가 다른데 통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없다. 육군에서 ‘합동성’을 말하는데, 통합군이 성공한 예가 하나도 없다. (육군이) 통합을 말하면서도 (해·공군을) 자기들 밑으로 해놓고는 자기들 권력만 유지하려고 한다. 통합이라는 것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서로 협동하고 의견을 통합하자는 것이지 권한과 권력을 집중하고 자기 밑에 모든 것을 흡수하는 통합은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지난 9월27일 서울 방배동 3사관학교 동문회관에서 동문회 간부들이 ‘3사 - 육사 통합 반대’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 의견 많아

공군은 공식적인 입장은 피했지만 사관학교 통합은 신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공군본부 관계자는 “통합 추진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좀 더 깊이 있게 검토된 다음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상태에서는 시기적으로 빠른 감이 있다. 각 군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추진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으니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사관학교 통합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비등하다. 찬성하는 측은 우리 군이 통합군으로 가기 위한 절차의 하나로 우선 사관학교를 통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각 군의 고유 특성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통합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은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것은 찬성한다. 좀 늦은 감이 있다. 현재 육·해·공군의 교육 과정과 훈육 과정이 너무 비슷하다. 1, 2학년 때는 함께 교육하고 3·4학년 때 각 군의 특성에 맞게 교육을 하면 된다. 내가 참모총장 할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해·공사의 경우 사관학교가 통합할 경우 교장 자리, 교수부장이나 행정부장 자리 등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자리는 돌아가면서 하면 되고, 필요하다면 법제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육사와 3사를 통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육사와 3사, 학군, 학사 등은 나름의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런 특징을 무시하고, 육사와 3사를 한 곳으로 모아버리는 것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대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표대표는 “통합이니 합동이니 이런 것은 운용에 관한 문제이다. 이것과 양성의 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각 군이 고유 업무를 가지고 발전하면서 조직과 제도 그리고 리더십에 의해서 운용되는 것이다.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하겠다는 것은 독재적인 발상이고 시대착오적이다”라고 말했다.

사관학교 통합 여부를 둘러싸고 군심은 지금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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