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에 숨은 ‘이라크·아프간’
  • 조홍래│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10.2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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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이슈에서 사라져…빈 라덴 행방 묘연한 채 탈레반-아프간 화해 움직임도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전쟁이 미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 전쟁을 망각하고 있고, 9·11을 기획한 알카에다와 그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은 파키스탄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안락하게’ 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가 건재하다는 소식은 허탈감을 준다. 이런 전쟁을 왜 시작했으며, 언제까지 더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나온다. 이 전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는 허공을 맴돈다.  

▲ 아프가니스탄 복무 중 숨진 미군 병사의 운구 행사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미국인. ⓒAP연합

CNN 보도에 의하면 빈 라덴과 그의 참모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파키스탄 서북부의 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나토 관리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 정보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만약 사실이라면 미군과 나토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연합군은 그동안 두 사람이 아프간 북부 동굴 속에 은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믿고 해당 지역에 무인비행기를 통해 수많은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으나 민간인 피해만 내고 성과는 없었다. 익명의 나토 관리에 의하면 두 사람은 파키스탄 정보국의 보호 아래 비교적 한적한 도시에서 은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이런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으나 파키스탄 정보국과 알카에다와의 유착설을 감안하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빈 라덴의 은신처는 중국 국경 최서북단의 치트랄 산악 지대에서 아프간 접경 토라보라 지역의 쿠람 계곡에 이르는 2만7천㎢의 광대한 지역으로 추산된다. 토라보라는 2001년 아프간 침공 당시 탈레반의 거점으로서 빈 라덴이 한때 숨었던 곳이다. 빈 라덴은 토라보라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9년간 행방이 묘연하다. 2천5백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인물의 행방이 9년째 깜깜한 것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미국 관리들은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 역시 이 지역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공식적으로는 이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미국이 파악하고 있는 빈 라덴의 소재지는 아프간 국경과 파키스탄 사이의 부족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다는 것이다. 미국 고위 관리는 그가 동굴이든 아파트든 주택이든,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파악되었다면 진작 체포했을 것이라며 그에 관한 소문은 그야말로 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리언 파네타가 몇 달 전 한 말을 상기시켰다. 즉, 빈 라덴의 행방에 관해 미국은 수년째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종합하면 빈 라덴은 나토 관리들이 이번에 지목한 지역에 깊숙이 숨어 있는 것이 확실하나 정확한 소재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리처드 홀브루크 특사 역시 이 보도의 신빙성을 일축했다. 빈 라덴의 소재지에 관해서는 파키스탄 정부에 일임한 상태이며 따라서 그에 관한 작전도 파키스탄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홀브루크는 말했다. 파키스탄 내무장관 레만 말리크도 빈 라덴에 관한 정보는 과거에도 모두 허위로 판명되었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빈 라덴이 파키스탄 영토 안에 있다는 정보도 부인하면서 그가 파키스탄 안에 있다면 즉각 체포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 데이비드 패트리어스 장군이 아프간 전쟁에 일부 진전이 있다고 말해  이 발언이 빈 라덴의 소재 파악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기는 했다. 다만 이 시점에 왜 빈 라덴의 행방에 관한 보도가 나왔는가 하는 점을 두고 여러 가지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이목을 끈다.
 
 이라크의 정치 불안과 아프간 전쟁의 미스터리는 오는 11월2일의 중간선거에서도 실종되었다. 미국 선거 사상 가장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미국이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가 이슈로 등장했다. 미국의 미래, 공공 부채, 일자리 창출, 의료보험 제도, 금리, 티파티 운동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광고가 등장하고 토론이 벌어지고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 모든 것을 종합 판단해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공방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9년째 전쟁을 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대략 5천명의 미군 남녀가 죽고 3만명이 부상했다. 일부 부상자들은 상처가 너무 깊어 집에 돌아와서도 가족과 사회의 부담이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전쟁 비용으로 9조 달러 이상을 썼다. 이만큼 쓰고도 앞으로 들어갈 돈이 천문학적이다.  

긴 세월에 걸친 전쟁에 지쳐가는 듯

▲ 최근 ‘SITE 인텔리전스 그룹’이 입수해 공개한 오사마 빈 라덴 관련 비디오. ⓒEPA
이렇게 엄청난 인명과 자원을 투입한 전쟁과 그것이 미국에 끼친 파장이 어찌하여 선거 이슈에서는 사라졌는가를 두고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 문제가 취업이나 세금 문제보다 중요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누구도 답변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다수의 미국인들이 경기 침체로 인한 팍팍한 삶의 고달픔에 지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일한 추론이다. 미국인들은 매일 아침, 오늘은 생활이 좀 나아질까 하는 희망을 안고 잠에서 깨어난다. 가족의 일원이 이라크나  아프간에 있지 않는 한, 전쟁을 걱정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이를 나무랄 수도 없다. 일상의 삶보다 더 긴박한 일은 없으니 말이다. 두 전쟁에 참전 중인 병사들은 모두 지원병들이다. 이들은 미국인의 1% 미만이다. 이들만으로도 전쟁은 100% 치러지고 있다. 이라크나 아프간 근무를 여러 차례 지원한 병사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전쟁이 사실상 직업화된 셈이다. 전쟁에도 참가하지 못한 젊은 실업자들은 오히려 군인들을 부러워한다. 게다가 지원병들은 대부분 미국의 중산층 또는 취업 가정 출신이다.

이들의 가족들도 나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참전자의 가족들에게는 삶의 형태에 변화가 생겼다. 가급적 창문을 닫고 군용차량이 질주하는 도로를 보지 않으려 한다. 가끔 그 도로를 통해 전사자 통지서가 오기 때문이다. 무사히 귀국하는 병사도 많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앨링턴 국립묘지에서 장례식이 열리는 날이면 참전 용사 가족들은 대부분 창문을 닫고 밖을 보지 않는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 온갖 현안을 놓고 핏대를 올리면 참전 용사 가족들은 묻는다. 왜 수천 마일 떨어진 이국 전선에 투입된 우리 아들딸들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가 하고.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굳이 참전 용사 가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슬람 세계와의 긴긴 전쟁이 향후 미국의 미래에 가져올 결과에 대해 모든 미국인은 질문할 권리가 있고 이 점에서는 참전 가족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망각증과 때를 같이해 탈레반이 요즘 군사적 승리를 포기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화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정황이 감지된다. 이래저래 아프간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탈레반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목격될 뿐만 아니라  특히 탈레반 내부에서 그런 정보가 흘러나와 이목을 끈다. 최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나토군 주변에서는 탈레반이 군사적 승리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놓고 지금이 탈레반과 종전 회담을 할 수 있는 적기가 아닌가 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탈레반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뉴스이다. 탈레반을 지치게 만든 것은 자원 부족이나 전의의 약화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토록 긴 세월에 걸친 전쟁에서 지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탈레반은 얼마 전까지도 모든 외국 군대가 철수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도 완강하던 탈레반은 요즘 각종 선결 조건을 철회하고 일정 수준의 참정권만 보장하면 무기를 내려놓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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