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상선’ 지분 넘기고 ‘현대’ 되찾나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2.2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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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정몽구-현정은, 법적 분쟁 중지하기로 결정…한 일간지의 비확인 보도 이후 ‘속전속결’

 

▲ 2007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부터). ⓒ시사저널자료

 “결과적으로 오보가 화해를 이끌어냈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이에 조성되는 화해 분위기를 오보가 만든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지난 2월22일 국내 일간지 한 곳이 ‘정몽구 회장이 제수씨인 현정은 회장과 화해하고 현대그룹 경영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라는 요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현대그룹은 이에 화답하면서 ‘현대건설 지분 매매 양해각서(MOU) 해지 금지’ 가처분을 요청하는 대법원 재항고 계획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현대그룹 고위 임원은 “범현대가(汎現代家)가 화합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현대그룹의 일관된 입장이다”라고 화해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이 재항고를 포기하면서 법적 분쟁을 중지하기로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화해의 물꼬를 트라고 정몽구 회장이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부인했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내부적으로 확인해보니 정몽구 회장이 화해와 관련해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홍보실 관계자도 출입기자들에게 ‘정몽구 회장이 화해를 지시했다’라는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현대그룹이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일간지에 슬쩍 흘린 것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화해 지시 보도와 함께 현대그룹은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바로 재항고 계획을 철회하고 화해와 협력을 천명하고 나섰다.

 현대그룹이 ‘언론 플레이’를 기획했다면, 전략기획본부 소속 하종선 사장과 진정호 상무가 주도했을 것으로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추정하고 있다. 하종선 사장은 현대건설 인수전을 총괄한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이다. 하사장은 대법원 재항고가 의미 없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매매 양해각서 해지 금지 가처분 소송 1, 2심에서 잇달아 패소했다. 진정호 상무는 전략기획본부 투자기획 담당이다. 지난해 초 현대그룹에 합류한 투자 전문가이다. 하사장과 진상무는 현정은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다. 현회장은 두 사람에게 현대건설 인수 업무와 관련해 전권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한 언론 플레이’에 대해 부인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단정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하사장과 진상무가 현대건설 인수전 관련 업무에서는 현정은 회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시숙·제수 간 화해 업무까지 관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이 한창일 때만 하더라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관계까지 치달았다. 당시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일간지 광고면까지 사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인수전이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화해는 없다. 현정은 회장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만 해도 현대그룹측에 현대건설을 양보하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현회장 일가에게 넘기겠다는 뜻을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수전이 비방전으로 치달으면서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상선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KCC를 비롯해 범현대가가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은 31.5%에 이른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75%까지 합치면 39.25%까지 우호 지분이 늘어나 현회장이 보유한 지분 40%에 육박한다. 나중에 범현대가가 현대상선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지분은 3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지분 35%는 언제든지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직 남아 있는 ‘화해에 이르는 필요조건’들

ⓒ시사저널 윤성호

 이에 따라 시숙-제수 사이 화해의 열쇠는 현대상선 지분이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75%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지금 현회장은 현대상선 지분 45%를 확보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의 지분을 넘겨받으면 경영권 분쟁은 다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지분의 시가는 3천2백40억원(2월25일 현대상선 종가 2만9천2백원 기준)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이행보증금조로 채권단에 낸 2천7백55억원을 돌려받으면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

 채권단이 이행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현대그룹은 당장 3천2백4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그룹의 현금 흐름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액수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 8조8백70억원, 당기순이익 4천3백71억원을 거두었다.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당기순손실 8천억원을 기록했다가 지난해에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해 실적 개선과 유상 증자로 들어온 돈은 지난해 9월 말 2백60%나 되었던 부채 비율을 줄이는 데 투입되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현대상선 지분을 유가증권 시장에서 현대그룹 우호 세력에게 블록세일(일괄 매각)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화해 차원에서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그룹에게 넘긴다면,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에게 주어야 할 반대급부는 무엇일까.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에게 무엇을 바랄까. 현대그룹의 모태 기업인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정몽구 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업한 현대그룹의 적통을 이었다고 인정받고 있다. 남은 것은 ‘현대’라는 브랜드이다. 추가로 계열사를 세우더라도 ‘현대’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라는 브랜드를 양보할 리는 없다. 범현대가가 현대그룹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고 현대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그 전제 조건은 정몽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이 완벽하게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3월21일은 정주영 회장 10주기이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추모음악회에 현대의 정씨 일가가 모두 참석한다. 현정은 회장도 참석한다. 정씨 일가와 현정은 회장이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할 절호의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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