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래’ 연 티베트 망명정부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8.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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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후임으로 롭상 상가이 총리 취임…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경고 메시지 던져

티베트 망명정부 신임 총리에 미국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롭상 상가이(Lobsang Sangay)가 취임했다. 지난 4월 인도의 망명지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그가 달라이 라마의 후임으로 총리에 선출되었을 때부터 망명정부와 중국 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8월8일 그는 인도 북부에 있는 사원에서 정식으로 망명정부 수반에 취임했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문화에 젖은 그의 취임사가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라는 예상은 진작부터 나왔다. 그의 취임 일성은 이 예상을 넘었다. 중국과 강경 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식민주의’를 규탄하면서 자신이 총리에 선출된 것은 티베트를 경시하는 중국 공산당 강경파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선언했다.

취임식 의식에서부터 투쟁의 의지가 드러났다. 올해 43세의 패기만만한 그는 이날 9시9분9초에 총리직에 올랐다. 전통적인 다례에 이은 취임식이 9자가 3번 겹치는 시각에 치러진 데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티베트인들에게 9라는 숫자는 장수(長壽) 혹은 영원을 뜻한다. 말하자면 티베트는 중국 공산당보다 더 영원할 것이라는 결의를 함축하고 있다. 취임식에는 수천 명의 티베트인이 참석했다. 자진해서 수반에서 물러난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76)도 젊은 총리의 영혼에 불을 붙였다. 그는 “오늘이 지난 2천년의 티베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라고 말했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둔 말로 해석된다. 첫째는 망명정부가 젊은 지도자를 가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의 망명정부의 노선이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선포한 점이다.

▲ 지난 8월8일 인도 북부 다람살라의 추글라캉 사원에서 달라이 라마(오른쪽)가 롭상 상가이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를 안아주고 있다. ⓒEPA 연합

강경 투쟁 예고하며 달라이 라마와 차별화

상가이 총리의 향후 노선은 그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다. 승려인 아버지와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상가이는 티베트 난민 고등학교를 나와 뉴델리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총리에 선출되기 전에는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법률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총리에 취임한 만큼 거처도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옮길 예정이다. 그의 핏속에는 공산당의 탄압에 저항하는 원초적 반체제 기질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흐르고 있다.

그는 중국이 은전처럼 베푸는 티베트 자치권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이 라마보다는 한 차원 높다. 달라이 라마는 자치권의 확대를 요구했으나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가이는 자치권 자체를 식민주의 통치로 규정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당장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 때가 되면 행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취임사의 어조는 중국에 대한 태도에서 달라이 라마보다 더 대결적으로 나간다는 점을 비치고 있다. 그는 이를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 티베트 수도 라싸에 있는 티베트 정부 청사에 티베트 국기를 높이 게양할 것을 요청했다.

상가이의 등장은 단순한 수반 교체를 넘어 망명정부의 미래에 새 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그는 선거 직후 자신의 웹 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본국에 거주하는 6백만명의 티베트인과 세계 30개국에 거주하는 14만명 티베트 망명자들의 숙원을 구현하는 데 심혈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 결의를 취임사에서 재확인했다. 퇴임한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의 대결에서 폭력을 배제한 평화적 투쟁을 강조했으나 상가이의 취임사에 ‘평화’는 없었다. 필요하면 폭력도 불사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풍겼다. 그의 등장을 보고 1959년의 티베트 봉기나 2008년 티베트 승려들의 민주화 시위를 떠올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승려들의 반중 시위를 ‘21세기의 문화혁명’으로 규정했다. 상가이의 출현이 중동 민주화 바람과 때를 같이한 것도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지난 7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취임 후 두 번째로 달라이 라마를 만나 티베트의 민주화를 위한 지지를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민주화 열망이 아무리 강인해도 세계 2위의 강대국이 된 중국을 상대로 티베트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른다. 중국은 상가이의 취임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40대의 애송이가 해본들 무얼 얼마나 하겠느냐는 눈치이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만 죽으면 티베트의 독립 얘기는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총리 취임에 논평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여유를 반영한 듯하다. 그러나 중국도 고민이다. 티베트의 독립 요구가 중국 내 소수 민족의 봉기와 맞물리는 상황을 중국은 두려워한다. 인도는 100만명의 반정부 시위자들을 수용하고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은 단 한 명의 반정부 시위도 수용하지 못하는 폐쇄성에 스스로 갇혀 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런 자기모순이 언젠가는 혁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아는 중국인은 많지 않다. 이들은 그저 티베트는 중국의 자비로 존재하는 자치구 정도로 알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탄생한 것은 1959년 3월10일이었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봉기한 독립운동이 실패한 날이기도 하다. 이때 중국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티베트인 7만~8만명이 죽었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23세의 청년 달라이 라마는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세웠다. 그로부터 52년간 그는 행정 수반과 종교 지도자로서 거대한 중국에 맞서 티베트의 독립과 자치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정치·종교 분리되는 이원 정부 재탄생

▲ 중국의 티베트 편입 60주년을 맞은 기간에 티베트인들이 포탈라 사원 앞을 지나고 있다. ⓒEPA 연합

그 점에서 중국이 달라이 라마의 사망만을 기다리면서 티베트 문제를 여유롭게 바라볼 처지는 아니다. 50년을 가슴에 품어온 독립의 의지는 달라이 라마 한 사람의 퇴진과는 무관하게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그가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 남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상가이의 취임으로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는 이원 정부로 재탄생했다. 또한 새 총리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선거를 통해 선출됨으로써 망명정부 자체의 정통성도 확보되었다.

그동안 달라이 라마를 ‘불법적 대표’로 깎아내렸던 중국은 할 말이 없어졌다. 총칼과 탱크로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시대는 세계 도처에서 쇠퇴하고 있다. 이 상황을 중국 지도자들이 간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상가이의 취임에 의미를 부여한다. 달라이 라마는 과거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중국은 정부가 망하든지 공산당이 망하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보고 그의 예언이 빗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로마도 망하고 소련도 소멸한 역사를 감안하면 티베트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세계의 이목이 상가이의 취임을 심상찮게 바라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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