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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사과하고 적극 수사 나서라

14년 지난 ‘이태원 살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 / 시민의 안전이 국가의 제1 의무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ㅣ 승인 2011.10.16(Sun) 2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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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동물의 이름이다. 성경에는 ‘낚시로 낚을 수 있느냐? 그 혀를 끈으로 맬 수 있느냐? 코에 줄을 꿰고 턱을 갈고리로 멜 수 있느냐? … 지상의 그 누가 그와 겨루랴. 생겨날 때부터 도무지 두려움을 모르는구나’라고 적혀 있다. ‘리바이어던’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지상 최강의 존재를 상징했다. 1651년 영국에서 ‘리바이어던’이 다시 탄생했다.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를 상징한다. 그는 영국의 혼란 상태를 종식시킬 강력한 군주 국가를 옹호했다.

토마스 홉스는 혼란의 시대에 태어났다. 1588년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가 영국을 침략하던 해에 탄생했다. 사는 동안에도 혁명이 일어나고, 왕이 처형되고, 의회파와 왕당파의 오랜 내전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왕당파로 의심받은 홉스는 프랑스로 망명해야만 했다. 그러나 무신론자라는 혐의로 왕당파의 미움도 받았고,  말년까지 왕당파와 의회파의 정쟁에 시달렸다.

전쟁과 혼란을 겪은 홉스는 인간이 ‘늑대적인 본성’을 지니고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한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 그래서 개인의 생명을 보전하고 평화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면 개인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 기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통해 강력한 군주제를 옹호했으나, 국가 주권의 기초는 시민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오며 군주는 통치권의 위임자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민주주의적 사고는 군주가 신의 위임을 받았다고 생각한 왕당파에게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런던데리의 주교는 홉스의 책을 “생명의 빛을 빼앗는 거대하고 흉측한 외눈박이 괴물이다”라고 불렀다. 그러나 홉스는 현대 국가의 제1 의무가 시민의 안전이라는 원칙을 제시한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이태원 살인 사건’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질문

   
▲ KBS 뉴스에 방영된 ‘이태원 살인 사건’ 이미지.
최근 ‘이태원 살인 사건’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커지면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되돌아보게 한다.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아더 패터슨(당시 18세)은 1997년 4월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홍익대 학생 조중필씨(당시 23세)를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흉기 소지 혐의로만 복역했으며, 불과 8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났다가 곧 미국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황당한 사법 처리 과정이 알려지면서 사법 당국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도시의 치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실 수사로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만들어 범인을 놓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살인 용의자가 특사로 풀려난 후 버젓이 해외로 출국하도록 방치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저질렀다. 과연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직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14년 전 ‘이태원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피해자 가족들의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가족들의 끈질긴 싸움도 시작되었다. 살인 사건 현장에 있었던 아더 패터슨과 그와 친구 사이인 에드워드 리(당시 18세)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주장해 사건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패터슨은 주한미군의 아들이어서 초동 수사는 미군범죄수사대(CID)가 맡았지만, 허술한 현장 보존으로 증거 수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사를 인계받은 한국 검찰은 패터슨 대신 에드워드 리를 살인범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졌다. 범행 흉기인 칼을 미8군 영내 하수구에 버려 처음부터 유력한 용의자였던 패터슨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했지만,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패터슨이 출소하자마자 새로 고소했다. 당시의 수사 책임자인 서울지검 형사3부장은 바로 현 권재진 법무부장관이다. 그러나 검찰은 약 15일 후에야 출국 정지 조치를 취했다. 두 차례 연장된 출국 정지 시효가 1999년 8월23일 끝나자 사법 당국은 ‘사흘 뒤에야’ 기한을 연장했다. 이 사이에 패터슨은 미국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결국 수사와 재판은 모두 멈췄다. 가족은 14년 동안 시민단체, 검찰, 국회를 찾아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검찰이 적극적으로 재수사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만약 부유한 상류층의 자제가 이런 피해를 겪었다면 이렇게까지 무관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탄도 나온다.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냥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잔뜩 머리고 어깨고 찍어누르고 있어요. 이것을 밝혀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라고 말했다. 검찰의 부실 수사가 만든 끔찍한 고통이다. 개인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국가의 무능이기도 하다. 이제 공소 시효 15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끝난다. 그러나 이렇게 묻혀버릴 뻔했던 사건이 다시 세상에 떠올랐다.

   
▲ 지난 10월13일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살인 사건 용의자 패터슨의 즉각적인 송환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영화의 힘과 시민의 힘이 재수사 이끌어내

2009년 9월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의 개봉과 함께 다시 여론이 들끓었다. 홍기선 감독이 제작한 <이태원 살인 사건>은 저예산 영화였지만 무려 7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1980년대 영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장산곶매와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한 홍기선 감독의 논쟁적인 영화에서 정진영이 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로 등장했고, 장근석이 용의자 패터슨 역을 맡아 시선을 끌었다.

영화 이후 정말 영화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 2009년 9월 주광덕 국회의원이 한 언론인의 제보를 받아 패터슨이 미국에서 주거침입죄로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광덕 의원의 요청에 따라 법무부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곧바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두 달 후에야 요청했다.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주광덕 의원은 검찰의 태도에 대해 “정말 어안이 벙벙하고 도저히 이것이 믿기지도 않고, 제가 정말 이 상황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장관한테 질책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어 패터슨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살인 사건의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세상에서 잊혔던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2011년 영화 <도가니>가 관심을 끌면서 다시 한번 <이태원 살인 사건>이 제2의 <도가니>로 조명받고 있다. 정말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는 한 인터뷰에서 “나라가 있으나 마나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우리는 국가가 한 시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14년간 범인을 잡으러 국회와 시민단체를 찾아다니고, 미국 사설 탐정까지 고용했던 가족의 한 맺힌 절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먼저, 정부는 ‘이태원 살인 사건’의 수사에서 부족했던 내용을 철저히 조사해 그 결과를 피해자 가족과 국민 앞에 공개하고 사과해야 한다. 동시에 유력한 범인 용의자 패터슨을 조속하게 한국 법정에 세워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미국의 범죄인 인도 재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우려가 있는데, 검찰은 피의자를 조속하게 송환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미국인이 범죄 용의자인 사건에 대한 한국 경찰의 적극적 초동 수사를 위해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시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수행해야 할 제1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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