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 넘은 전기차, 힘차게 재시동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12.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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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자동차업체마다 새 모델 출시하고 판매 지역 확대 나서…떨어졌던 판매량 다시 오름세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왼쪽). 오른쪽은 충전 중인 닛산 전기차 리프. ⓒ GM대우(왼쪽), ⓒ 닛산(오른쪽)

전기차 시장이 온갖 악재를 뚫고 다시 성장 가도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 2분기 전기차(EV)나 하이브리드 전기차(HEV)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가 싶었는데, 지난 11월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서 팔린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전기차 대수가 지난 4월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일본의 도요타·혼다·미쯔비시 미국의 포드, 독일의 BMW가 내년 초부터 잇달아 전기차종을 출시할 예정이다. 전기차의 단점이라고 지적받은 주행거리까지 해결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가 내년에 본격적으로 팔릴 것으로 보여 전기차 판매량은 크게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당초 전기차 개발에 시큰둥하던 현대차그룹까지 12월22일 기아차 경차 ‘레이’의 하이브리드 전기차종을 출시한다.

올해 중순까지만 해도 전기차 앞길에는 온갖 장애물이 쌓여 있었다. 지난 4월 일본 도호쿠 대지진이 일본 자동차업체의 전기차 생산 라인을 강타했다. 전기차 생산 시설이 일본 본토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가 컸다. 생산 라인은 9월까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일본 엔화가 치솟았다. 일본 업체는 가격 경쟁력을 잃은 나머지 전기차 마케팅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8월부터는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서 전기차 구매 유인이 감소했다. 지난 5월에는 GM이 생산·판매하는 전기차 ‘볼트’의 리튬이온 2차전지가 폭발하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기차에 대한 안전성 조사를 벌이고 내년 1월 공청회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기차의 대체재까지 나오고 있다. 연비가 좋은 디젤 차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전기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 11월 전기차 시장에 ‘반전’ 일어나

악재가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오다 보니 지난 9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팔린 전기차는 1만9천3백79대에 불과했다. 지난 8월과 비교해 15.2% 줄어든 것이다. 완성차 총 판매 대수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8%까지 떨어졌다. 8월과 비교해 0.3%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GM이 생산 시설을 늘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일본 자동차업체가 대지진과 쓰나미에 피해를 입은 지난 5~6월을 빼면 지난 9월 전기차 판매 비중은 2007년 9월 이래 가장 낮았다. 올해 전기차 판매량은 26만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27만5천66대)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07년 35만대 넘게 팔린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강정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 2008~09년 유가 하락, 2010년 클린디젤 차량과의 경쟁으로 인해 (전기차 시장은) 지난 4년 동안 해마다 5~10%씩 역성장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유가는 떨어지고 디젤 차량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어 전기차가 당분간 내리막길을 달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데 지난 11월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나타났다. 전기차 판매 지표가 다시 오름세로 바뀌었다. 지난 11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전기차종 2만8천22대가 팔렸다. 10월과 비교해 27.2% 늘어난 수치이다. 일본 도요타가 전기차 생산 시설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면서 11월 시장 점유율이 68.4%까지 올랐다. 도요타의 시장 점유율은 일본 지진 직후에 38.1%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도요타는 지난 11월 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PHV를 출시하고 사전 예약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 12월1일에는 BMW와 손잡고 차세대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합작 계약을 체결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은 하이브리드 차량과 순수 전기차의 중간 단계 차종으로 가솔린 엔진(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로 주행하는 것은 하이브리드 차량과 비슷하나 길가에 설치된 전기 충전 시설에서 플러그를 꽂아 고속으로 충전할 수 있다. GM의 볼트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에 속한다. 도요타 프리우스PHV는 볼트보다 값이 9천 달러가량 싸다.

2012년에는 전기차가 쏟아져 나온다. 자동차업체마다 기존 전기차 모델의 판매 조직을 늘리는가 하면 새 전기차 모델을 잇달아 출시하기 때문이다. 일본 닛산은 순수 전기차 ‘리프(Leaf)’를 팔지 않던 미국 7개 주에서 사전 판매 예약을 시작했다. 일본 미쓰비시는 유럽 시장 공략에만 치중하던 판매 전략을 미국으로 확대한다. 미쓰비시는 지난해 4월과 12월 각각 일본과 유럽에서 출시한 순수 전기차 ‘i-MiEV’를 내년 초 미국에 선보인다. 혼다는 내년 초 새 전기차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자동차업계 ‘빅3’ 가운데 가장 빨리 회복한 포드는 전기차 시장에 합류한다. 포드는 순수 전기차 ‘포커스일렉트릭’을 올해 미국에 출시한 데 이어 내년 말까지 유럽에 선보인다.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업체 BMW는 내년 7월 말 런던올림픽에서 순수 전기차 i3와 i5의 시제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 밖에도 도요타 프리우스PHV, 포드 C맥스, 볼보 V70, 스즈키 스위프트, 아우디 A1이트론, BMW i8이 2012~13년 출격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종이다. 
 

세계 각국 전기차 기술 개발에 투자 활발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전기차 블루온을 공개했으나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 한정 공급했다. 지금까지 2백50대 생산했으니 전기차를 만드는 시늉만 한 셈이다. 기아차가 11월22일 출시한 전기차 레이는 2천5백대까지 생산할 계획이다. 전기차 레이가 계획대로 생산되면 국내 최초로 전기차 양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 양산 기술이나 판매량은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해 형편없다. 플러그인 전기차종 기술에서는 중국 업체에도 뒤지고 있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는 각각 1997년과 1999년 하이브리드 전기차량 프리우스와 인사이트를 출시했다. 도요타는 지난 8월까지 전세계 70개 지역에서 2백36만대(누적 판매량 기준)를 팔았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은 미국이다. 미국 도로에는 하이브리드 전기차량 2백만대(지난 5월 기준)가 달리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 4월과 8월까지 각각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프리우스 100만대를 팔았다. 플러그인 차종에서는 GM이 앞서고 있다. 볼트PHV는 지난 10월가지 5천3백29대가 팔려나갔다. 플러그인 차종 기술에서는 중국이 빠르게 움직였다.

중국의 전지 및 자동차 제조업체 BYD오토는 지난 2008년 12월 플러그인 차량을 개발하고 지난해 3월 선전 지역에서 팔기 시작했다. 현대차 협력사이자 전기차 부품업체의 연구원은 “전기차종은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업체의 성장 잠재력이나 시장 대응력을 가늠하는 지표이다. 전세계 자동차업체가 전기차 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내연기관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현대차그룹이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기차 투자를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업체가 전세계 2차전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은 전세계 자동차업체에 대용량 2차전지를 공급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차량 제조 기술만 갖춰진다면 전기차 분야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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