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디도스 범인 검거’, 얻어걸렸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2.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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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하다 우연히 발견” 주장 나와…경찰은 “IP 추적 등 자력으로 범인 검거” 반박

지난 12월3일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 공 아무개씨가 선관위 등에 디도스 공격을 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월2일 경찰은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9급 비서 공 아무개씨가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를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고, 모든 세간의 관심은 경찰에 쏠렸다. 여권에서는 “야권 후보가 떨어진 선거도 아니었고,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설에 대해) 누구도 관심이 없었는데, 경찰이 어떻게 그것을 그렇게 집중 수사했는지 모르겠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야권에서도 “경찰의 수사 의지가 놀랍다”라는 탄성이 터져나왔고, 트위터 등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 쪽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불거진 갈등 증폭

경찰은 12월1일 공씨를 긴급 체포했고, 12월9일 수사 결과를 공씨의 단독 범행으로 발표한 후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하지만 상황은 불과 며칠 만에 급반전되고 있다. ‘디도스 공격’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축소 수사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찰이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수사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마치 수세에 몰렸던 검찰의 대반격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번 사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과도 같았다. 수사권을 더 확보하려는 경찰과 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검찰 양측 입장에서는 국민 여론을 자기네에게 더 유리하게 조성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경찰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통해 경찰이 했던 (디도스 공격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드러날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검찰 수사에 의해 지금까지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은 훨씬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디도스 공격 시점에 피의자들 사이에 1억원가량의 돈 거래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는 이 돈 거래 내역을 경찰도 이미 파악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수사 결과 발표 때는 이 사실을 뺐다. 경찰은 “범행 대가로 사용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사 발표 때 밝히지 않았을 뿐 축소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청와대와 디도스 공격 사건 발표 수위를 놓고 조현오 경찰청장과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 통화를 통해 사전 조율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 12월9일 서울 경찰청에서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디도스 공격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또, 이 사건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 아무개씨가 청와대 박 아무개 행정관에게 10·26 선거 당일 5백만원을 전달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경찰은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5백만원 거래 내역도 이미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이 사실도 경찰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빠졌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수사 발표 때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조사는 일종의 요식 행위였다”라고만 밝혔다. 이 사건과 박행정관이 무관하다고 ‘면죄부’를 준 셈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돈 거래’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처럼 부실·축소 수사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와중에 “경찰이 사실을 왜곡하면서 자신들의 수사 성과를 과대 포장하고 있다”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경찰은 “디도스 공격을 당한 선관위의 고발 조치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고, 한 달 만에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해왔다. 범인 검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는 디도스 사건을 경찰이 자력으로 해결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찰이 다른 수사를 진행하다가 아주 ‘우연히’ 디도스 사건을 알게 되었다”라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디도스 사건’에 대해 잘 아는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12월20일 기자와 만나 “경찰이 디도스 범인을 처음부터 추적해 체포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전혀 무관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업체를 압수수색했는데, 압수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선관위 디도스 공격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에 용의자들을 강하게 추궁해서 마침내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제보가 민주당에도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12월1일 공씨를 긴급 체포한 다음 날, ‘사정 당국 고위 간부’로부터 ‘경찰이 우연히 범인을 잡았다’라는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제보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귀띔했다.

한 IT 전문가는 “농협 전산망이 디도스 공격을 당했을 때도 수사 당국은 ‘중국을 경유한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라고만 발표했다. 이처럼 디도스 공격은 수많은 좀비 PC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디에서 공격을 개시했는지 알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디도스 공격으로 사이트 전체가 아닌 특정 메뉴만 마비시키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12월22일 기자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선관위 고발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고, IP 추적 등을 통해 범인들을 검거했던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 수사를 하다가 엉겁결에 범인을 잡았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의 부실·축소 수사 논란’에 대해 “피의자 체포 후 열흘 안에 검찰로 송치해야 한다. 12월1일 공씨를 긴급 체포했고 9일 검찰로 송치할 때까지 제대로 수사한 날짜는 5일간에 불과했다. 당연히 수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디도스 사건과 관련해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사이버테러 진상조사위원장인 백원우 의원은 “경찰 수뇌부와 일선 수사팀 사이에 결과 발표를 놓고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일선 경찰들은 ‘이번 사건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된다’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하지만 경찰 수뇌부에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수사 결과를 발표한 측면이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여야, 검찰 수사 미진할 경우 ‘특검’ 도입키로

지난 12월20일 여야는 디도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될 경우, 특별검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특별검사 선임에 대해서는 야당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검찰 수사 결과에 상관없이 특검으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강한 공세를 펼 수 있는 ‘정치적 호재’를 그냥 폐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저축은행 사건 등 대형 사건을 뺀 대부분의 사건은 올해 안에 수사를 마무리하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디도스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시점을 12월 말쯤으로 보고 있다. 2012년 새해 벽두부터 디도스 특검 정국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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