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이 대중문화 흐름을 바꿨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2.0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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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시장의 ‘카테고리 킬러’로 뜨고 드라마·영화계 ‘블루칩’으로…스마트 열풍 업고 인터넷 커뮤니티도 ‘부활’

원작 소설을 옮긴 드라마 . ⓒ KBS 제공

장르 소설이 대중문화 장르의 핵심 카테고리로 떠오르고 있다. 시청률 30%대를 기록하고 있는 <해를 품은 달>은 원래 국내 최대의 로맨스 소설 인터넷 커뮤니티인 로망띠끄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교보문고의 지난해 전자책 판매는 2010년에 비해 77.1% 늘어났다. 전자책 매출액은 1백10억원, 이 중 장르 소설의 비중은 52.2%. 국내 최대의 판타지 소설 커뮤니티 사이트인 조아라닷컴에는 모바일 결제만으로 월 5백만원의 인세를 얻는 작가가 등장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의 최근 소설 베스트10 항목을 보면 <해를 품은 달>이 1·2위, 대중소설로 분류되는 귀욤 미소의 <천사의 부름>과 <밀레니엄> 시리즈, 김진명의 <고구려>가 포진하고 있다. 순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는 10위에 오른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이 유일하다.

지난해는 모바일 혁명 원년으로 불린다. 카카오톡 사용자 숫자가 100만명대에서 3천만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는 전자책 시장의 팽창을 불렀고, 장르 소설이 전자책의 카테고리 킬러로 세를 확보하며 대중문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다’는 입소문에 일반 독자들까지 끌어모아

최근 장르 소설의 존재감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각인시킨 것은 정은궐 작가이다. 지난해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은 정작가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가 쓴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최근까지 1백20만부가 팔렸다. 그가 무명 시절 로맨스 소설 인터넷 커뮤니티인 로망띠끄에 연재했던 <해를 품은 달>도 지난 2010년 개정판이 나온 뒤 30만부가 나갔다. <해를 품은 달>은 2005년 시공사에서 초판이 나왔을 때는 1만부가 나간 뒤 절판되었다. 그런데 다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로맨스 소설의 팬을 넘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정은궐의 작품이 재미있다’라는 입소문이 퍼진 덕분이다.

장르 소설은 로맨스, 판타지, 호러, 무협, SF 등의 가지를 거느리고 있다. 1990년대 시드니 쉘던 류의 대중소설 번역본은 서점 매대에 전시되어도 국내 대중소설은 ‘대여소용’이라고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 최근까지의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으로 장르 소설이 각광받고 전자책 시장에서 장르 소설이 주역이 되고 있다.   

국내 장르 소설의 젖줄은 인터넷 커뮤니티이다. 장르 소설의 팬들이 모여 스스로 작품을 생산하고 이를 게시판에 올려 서로 읽고 즐기면서 커뮤니티가 탄생하고, 조회 수가 많은 회원은 작가로 진화했다. 국내에서는 조아라닷컴과 로망띠끄, 고무림, 러브팬닷넷 등이 있다. 이들은 대개 PC통신 시대의 끄트머리인 2000년대 초반 발화되어 전성기를 누렸고 최근에는 주춤한 상태이다. 로맨스 소설 사이트 이용자는 20~30대 여성이 주류이고, 판타지나 무협 사이트에서는 20~40대 남성이 주력이다. 판타지와 무협 장르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 조아라닷컴은 지난해부터 수익 모델이 자리를 잡으면서 매출이 배로 뛰었다. 2010년 4억원이던 매출액이 지난해 15억원대로 뛰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보급되면서 전용 앱으로 조아라닷컴에 접속하는 트래픽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러면서 하루 1천2백원 하는 정액제 고객이 크게 증가했다.  

이수희 조아라닷컴 대표는 “2000년 11월 사이트 문을 연 뒤 5~6년간은 우리 사이트에서 나온 소설을 책으로 묶어 내는 출판사가 15개 정도가 되었다. 초창기 도서대여점 서가에 꽂힌 책의 60~70% 정도는 우리 사이트에서 나온 책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서대여점이 3만개에서 1천여 개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장르 소설의 수익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돌파구는 유료화 모델이었다. 2007년부터 수익 모델을 도입했지만 손익분기점은 2011년 4월부터 맞출 수 있었다. 이대표는 올해 예상 매출액을 30억~50억원으로 내다보았다. 현재 독자들의 결제 현황을 보면 연 20억원 정도인데, 유입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가 가파르다는 것이다. 현재 조아라닷컴에서 월 5백만원 정도의 인세를 받는 작가는 한 명, 3백만원대 작가는 두 명, 100만원 정도를 받는 작가는 10명가량이다. 조아라닷컴의 하루 방문자 수는 40만명이고 전체 작가 수는 13만명, 작품 수는 26만 편으로 랭키닷컴 기준 문학 분야 1위 사이트이다. 작가가 많다 보니 지난해에는 서울·부산·광주 3개 도시에서 회사 대표와 작가와의 집단 간담회(사진)가 열리기도 했다. 이대표는 “오는 3월부터는 우리 사이트가 아닌 예스24나 교보문고, SK텔레콤 같은 다른 사이트를 통해서도 전자책 판매가 시작되면 매출이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장르 소설의 전자책 시장 진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종이책 시장으로 진입했던 한새로, 김주일, 무람 같은 유명 작가가 다시 조아라닷컴으로 회귀하는 등 장르 소설에서 전자책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미디어의 힘이 커지면서 순수문학 작가의 영역이 줄어들어”

서점가 소설 코너를 장르 소설들이 채우고 있다. ⓒ 시사저널 김미류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전자책을 담당하고 있는 김미선씨도 장르 소설의 부상을 인정하면서 ‘미디어의 힘’도 강조했다. “장르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 원작으로 쓰이면서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 중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출신 소설만 챙겨보는 독자도 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의 힘이 커지면서 순수문학 작가의 영역이 줄어들고 인터넷 게임이나 커뮤니티, 방송, 영화 등의 장르의 힘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문학상을 받으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요즘은 드라마화되면 베스트셀러가 된다. <무사 백동수>나 <공주의 남자> 같은 인기 드라마를 소설로 만든 베스트셀러도 등장했다”라고 전했다. 미디어의 전파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해를 품은 달>로 대박이 난 곳은 출판사 파란미디어이다. 2004년 설립된 파란미디어는 로맨스 소설로 특화하면서 서점 판매용 로맨스 소설만 펴냈고 <해를 품은 달>은 이 회사의 58번째 로맨스 소설이다. 이 회사의 임수진 편집장은 “초창기에는 로망띠끄 같은 로맨스 소설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열심히 다니면서 작가를 발굴했다. 하지만 출판용으로 펴내기 위해서는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고 작가와 협의해 개정 작업에 공을 들인다”라고 밝혔다. 그가 짚어낸 한국 로맨스 소설의 태동은 1980년대 <캔디> 류의 일본 순정만화와 1990년대 할리퀸문고 한국판을 읽고 자란 세대가 작가로 자리 잡은 2000년대 초반이다. 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로맨스 소설을 생산해내면서 로맨스 소설 커뮤니티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이들이 게시판에 생산해낸 소설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 한 달에 10권 정도 나왔다. 하지만 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한 달에 80권이 쏟아질 정도가 되면서 질이 떨어지고 독자도 떨어져나갔다”라고 밝혔다.

ⓒ 조아라닷컴 제공
현재 국내 최대의 로맨스 소설 사이트로 불리는 로망띠끄는 전자책 시장에 직접 진출한 상태이다. 보통 2회 정도 연재하면 로망띠끄에서 ‘될성부른 떡잎’을 전속 계약으로 잡아 책 출간까지 진행하기에 예전보다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건’이 적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로망띠끄에서 스타 작가였던 정은궐씨가 오프라인에서 이름을 알린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같은 경우는 인터넷 연재분이 아닌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었다.

최근 장르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네이버나 다음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도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웹툰 코너에 장르 소설이라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파란미디어의 임편집장은 “대형 업체의 참여를 환영한다. 이들의 참여로 일반인의 인식이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조아라닷컴의 이수희 대표는 “장르 소설은 마니아들이 전문 커뮤니티에 모여 있고 이들이 움직이면 일반인도 따라오는 구조이다.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으로 전자책 시장이 10배 이상 커질 것 같다”라며 장르 소설 시장을 낙관했다. 

ⓒ 이병규 제공
조아라닷컴에서 <만년 대리, 마법사 되다>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사열 작가(26·본명 이병규)는 대학교 심리학과 4학년 학생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글을 쓰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20세 때, ‘수익을 노리고’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부터다.  

그는 글의 소재를 주로 경험에서 얻는다. “경험과 현재 주를 이루는 대세를 잘 녹여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관심사는 사실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판타지나 장르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공감을 얻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소재로 많이 활용한다. 내가 알아야 보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내 근간이 되는 1980~90년대의 만화나 영화 등에서 모티브를 종종 얻기도 한다.”

그의 수입은 지난해 7월23일 처음 연재를 시작해서 그 달은 1만5천원, 8월은 66만원, 9월은 1백28만원, 10월은 88만원, 11월은 91만원, 12월은 2백58만원, 1월1일부터 현재(26일)까지 3백95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1월에는 4백50만~5백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하고 싶은 일로 수익이 생긴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많아도, 하고 싶은 일로 돈 버는 사람은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장르문학에 대해 ‘보는 사람만 본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그런 것을 떠나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의 새해 목표는 ‘주성치식 웰메이드 무비’같이 조금 유치해도 보고 나면 웃음과 따뜻한 뭔가가 남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 양효진 제공
조아라닷컴에서 로맨스 작가로 활동하는 양효진씨(23)는 고향은 경주이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한 학기를 남겨놓고 휴학 중이다. 2010년 6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대학에서 공부하고 학교만 오가는 생활을 보냈다. 너무 여행을 가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어디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글 속에서라도 떠나보자’라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될지는 아직도 정하지 않았다는 양씨는  “내가 보고 듣고 기억하는 모든 것이 소재이고 주위 사람과의 대화, 전문가의 조언 등에서 소재를 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신인이라 수입 액수가 들쭉날쭉하다. 한 달 수입이 대학생들이 하는 한 달 아르바이트비는 확실하게 넘는다. 독자가 내 작품을 얼마나 봐주고 책을 얼마나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피드백이 바로 들어오기에 독자의 말을 듣고 쓰다 보면 실력이 부쩍 는다”라고 밝혔다. 양씨의 소망은 “독자가 힘들었던 일을 잊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5초 뒤에 작품 이름을 잊어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려도 상관없다. 잠깐이라도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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