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온갖 비리 ‘실험장’인가
  • 한만중│상임집행위원·개포중 교사 ()
  • 승인 2012.02.07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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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고교의 입학·편입 관련 부정·불법·편법 행위 ‘위험 수위’…학벌·학력 서열 체제 바로잡아야

이명박 정부 임기 말이 측근들의 비리와 돈 봉투 살포, 디도스 공격으로 어지럽다. 가장 깨끗한 정부라는 자화자찬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동안 은폐되었던 비리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2012년 새해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 와중에 감사원은 지난 2월1일 ‘학사 운영 관리 실태’라는 이름으로 대학교와 고등학교 입학과 편입학 등에 관련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 부문이라도 이 사회에서 청정 지역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번에 발표된 내용에는 온갖 부정과 불법, 비리 등이 망라되어 있다.

농어촌 특별 전형 제도는 교육 여건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확보해주기 위해 적극적 역차별 정책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이다. 이 제도마저 공직자와 교원이 다수 포함된 위장 전입자들에게 악용되었다. 적발된 사례 중에는 실제 거주할 수 없는 공항 소재지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주소로 한 경우도 드러났다. 더구나 일부 학교에서는 위장 전입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농어촌 특별 전형 확인서를 발급해 준 경우가 드러났다. 대학 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욕심에 학교에서 불법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해외 특별 전형에서는 국내에 살면서 자녀를 해외 교포에게 입양까지 시켜서 합격시킨 기상천외한 수법도 발각되었다. 

학벌 사회의 진상 보여주는 편입학원 난립

대학 입시학원만큼이나 전국에서 성업 중인 편입학원은 학벌 사회의 폐해가 우리 교육에 얼마나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이다. 해마다 수만 명에 이르는 대학생이 전문대학에서 지방 대학으로, 지방 대학에서 수도권 대학으로, 자신의 학적을 옮기기 위한 편입 시험을 치르고 있다. 2010년 편입학 모집 충원율을 살펴보면 수도권 대학의 일반 편입학 충원율이 93.6%, 학사 편입학 충원율이 73.7%에 이른 반면에 지방대는 각각 49.6%, 19.5%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어떤 대학과 어떤 학과를 나왔는가에 따라 경제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에서 결원 학생들을 충원하는 제도로 도입된 편입학 제도는 대학 서열의 사다리를 한 계단 더 올라가기 위한 방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작동되는 상황에서 편입학을 둘러싼 편법과 비리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사례 중에는 인문계 전공자를 기계공학과 편입생으로 선발하거나 의학전문대학원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면접 점수 반영 기준을 사후에 반영한 경우 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해마다 실시되는 대학 편입학 시험은 수학능력고사 등에 비해 관리가 소홀한 것을 감안할 때 이번에 적발된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이러한 양상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강남과 목동 지역의 학교에 원서를 내고 입학이 확정되자 다시 원주소지로 복귀한 학생이 5백16명에 이르고 있다. 이른바 강남 8학군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대학 입시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신화가 깨어지지 않는 한 이처럼 하루에 몇 시간을 들여 원거리 통학을 하려는 학생들의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감사원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정 통학 시간 범위 내에 위치한 고등학교는 추첨해 배정하는 등 공정한 배정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대책은 현실을 도외시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교 선택제가 실시되면서 제도상으로 정원의 20%까지 다른 학교군 학생들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타 지역 학생들이 배정된 비율이 2.75%에 불과한 것은 이 지역 학부모들의 압력에 의해 2단계 전형에서 근거리 배정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있는 한 외국어고의 경우에 거주지를 이전하지 않은 학생들을 정원 외로 선발하거나 2009년 입학 전형에서 불합격한 학생이 위장 전입을 하여 합격한 사례들이 적발되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1개의 외국어고가 난립하고 있는 경기도의 경우 서울 지역의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전략적인 과제이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본격화된 학교 계층화 정책으로 일반계 고교에 비해 세 배 이상의 학비가 들어가는 자율형 사립고가 확대되면서 경기 지역의 외국어고에 진학하려는 서울 지역 학생들의 수요가 감소하게 된 것이다.

한 대학의 편입학 시험에 응시생들이 대거 몰렸다. ⓒ 연합뉴스

비리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 앞서야

제약 산업 육성에 필요한 약사 인력 양성을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에 불과 12일을 근무한 응시자가 합격하는 경우도 적발되었다. 입학 자격에 3년 이상 근무 경력자를 원칙으로 하되 업체가 상응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면 예외로 하도록 한 조항이 이러한 편법을 키운 온상이 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 고졸 경력자들이 개방 대학에 들어와 전문성을 키우도록 하는 제도를 원용한 이 제도가, 선호도가 높은 약학대학 진학의 꼼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기 성적을 높이기 위해 우수 운동선수를 입도 선매하는 데 수십억 원의 스카우트 비용이 사용되거나 예능대학 전형에서 자신이 개인 지도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입학 시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이미 익숙해진 비리 역시 온존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 정부는 2010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공정 사회 구현을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하고 나섰다. 교육 부문에서도 2010년 6월2일 지방자치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데에는 ‘리틀 이명박’으로 불렸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과 관련된 온갖 비리가 주요 요인이 되었다. 이번 감사 결과는 인사 비리, 채택료 비리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교육 부문 비리를 발본색원하라는 엄명이 내려진 산물이라 할 것이다. 여하간 이번 감사 결과에서 적발된 편법·불법 행위들은 엄단되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공정해야 할 입학 전형에서 이러한 기상천외한 편법들이 판치는 것을 감사에 의해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이러한 편법과 불법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근본적인 요인에 대한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학과 고교 입학 전형에서 이러한 비리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은 졸업장의 직인을 바꾸기 위한 경쟁이다. 최근에 전문계 출신 고교생들에게 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졸과 고졸 간의 임금 격차는 1.77 대 1 수준이다. 또한 교원대학교 장수명 교수는 ‘대학 서열의 경제적 수익 분석’에서 상위권 대학 출신과 다른 대학 출신 간의 임금 격차가 커져 22%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공정한 사회는 한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버팀목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은 사회 발전의 추동력이었다. 사회 양극화의 심화와 학교의 계층화로 이러한 동력이 훼손되고 더구나 일부 기득권층에 의해 비리와 편법이 판을 치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 무엇을 바꾸고 갖추어야 할지를 명확히 드러내주고 있다. 봉건적인 학벌·학력 서열 체제의 타파는 교육 비리의 근절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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