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장과 정책적 공감대 갖고 있다”
  • 정락인 기자·홍재혜 인턴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2.07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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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인터뷰 / “나는 노선 투쟁에서 밀려난 사람…안철수 원장과는 자주 만났다”

ⓒ 시사저널 유장훈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과 안철수 교수는 ‘산업 생태계’ ‘공생 발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이 비슷하다. 곽위원장은 “(안교수가) 미래기획위원으로 있을 때도 산업 생태계, 대기업과 관련한 부분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여기에 공감하고 있다. 안교수가 직접 사업을 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곽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월31일 오후 1시간30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들 이야기라서 내가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정부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국민에게 그런 이미지가 전달되어 안타깝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화되는 부분이 생긴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곽위원장에게는 유혹이 없었나?

이상하게 없었다. 나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정책 부분만 맡았다. 그리고 내가 측근 실세라고 하지만 정책 노선 투쟁에서 밀렸다.(웃음) 대통령과 생각은 같았지만 주위에 다른 생각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해 얘기할 입장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다.

CNK 주가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UAE 원전 수주’에도 의혹의 시선이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유전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있는 검사 출신을 투입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게 했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까 봐 완벽하게 했다. 실수를 해도 어떤 부분도 문제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것을 모두 공개적으로 했다. 밀실에서 처리한 것은 없다.

CNK와는 완전히 다르다.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발표를 했다. UAE 왕세자와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인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UAE의 모든 미디어에 다 나왔다. 2~3월에 1차 결과가 나온다. 협상은 다 끝났고, 내부 승인 절차만 남았다. 월드컵 랭킹 74위인 국가가 4강에 가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이다.

얼마 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B학점을 주었는데, 근거가 무엇인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서 경제학과 기준에서 점수를 주었다. 보통 학생들에게 C를 주면 재수강하려고 한다. 거의 낙제점이기 때문에 불만이 엄청나다. B 정도는 되어야 학점이다.

내 관점에서 현 정부가 세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선방했다. 또 앞으로 30~40년간 먹을거리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만들어놓은 전자·자동차·철강·조선 산업으로 30~40년간 버텨왔다. 반도체, 유전 등은 새로운 먹을거리로, 이런 부분은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기업은 너무 커졌고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졌다. 물가가 올라서 서민 경제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주었다. B는 그다지 좋은 학점이 아니다. 받는 학생 입장에서는 불만이 많다. 정책 노선 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무슨 B냐’라고 버럭 했다. 그래서 기말고사가 아직 남았으니까 잘하면 A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국민 대다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실망으로 돌아섰다.

ⓒ 시사저널 유장훈
처음에 기대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이 이명박을 지지했고, 지금은 안철수 원장을 지지한다. 국민들은 분명히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 노무현에게 기대가 컸지만 새로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다.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이유도 ‘샐러리맨의 신화를 재창조하겠다’며 ‘경제는 좋게 만들 것이다’라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집권 1~2년차에 강하게 추진했으면 좋았던 정책이 많았다. 하지만 관료주의나 변화를 싫어하는 장벽에 막혔다. 4년차에 들어서야 (겨우) 작동하고 있다. (집권 5년차인) 지금은 기말고사를 본다는 생각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장벽과 걸림돌은 무엇이었는가?

기득권이다. 변화하고 개혁하면 기득권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예를 들어 전경련은 우리나라 최고의 자본가와 인재가 모여 있고 이익 단체도 가지고 있다. 시장주의 자본주의는 항상 다른 체제와 경쟁하면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잃지 않기 위해 진화와 변화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자본주의는 1960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머물러 있다. 성장판이 닫혀버렸고 국민과 소비자에게 외면받게 되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전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기득권의 저항을 충분히 예측했을 것 같은데….

일단 내부에서 투쟁이 필요했지만 이도 쉽지 않았다. 국정 경험이 부족했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책 노선 투쟁에서 밀렸다. 그렇지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개혁하지 않는 조직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도 미국 대공황 때 위기를 맞지만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로 바뀌면서 계속 자본주의를 유지했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혁명을 맞았다.

현 정부가 ‘친재벌 성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곽위원장은 재벌 개혁을 주장했는데,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대기업은 정부보다 유능하다. 정부가 더 지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정부는 시장경제에서 탈락한 자를 보듬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 ‘뉴스타트 2008’이었다. 정권 일부에서 감세, 기업 프렌들리를 주장했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잘린 것 같다.(웃음)

권력 내부에 노선 투쟁은 항상 존재한다. 공통적으로 합의한 것은 규제 완화를 하면서 감독, 견제, 감시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업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국정 경험이 없었다. 내 정책 노선이 밀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MB노믹스의 핵심은 ‘따뜻한 시장경제’였다.

재벌의 사유화를 어떻게 하면 구조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를 강제로 하려 하면 계급 투쟁으로 보일 위험이 크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갑작스럽게 겪으면서 상류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갖지 못했고 서민들은 반기업적 성향을 띤다. 돈이 많으면 무조건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대기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고 국민도 세금 잘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존중해야 한다. 강제적으로 행하기보다 언론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기업도 이미지 향상을 위해 움직인다. 기업이 이윤 추구만 하는 것은 과거 1940~50년대 체제 경쟁을 할 때이다. 지금 기업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속 가능하고 존속 가능한 체제를 추구해야 한다. 정부 예산은 유연해도 5조~10조원가량만 운용할 수 있지만, 한 기업은 5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 기업이 시장의 공익적 기능을 하지 않으면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다. 나눔, 기부와 더불어 이윤 추구가 합쳐진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 절반’ 공약을 내세웠고, 집권 후에는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돌이켜보면 ‘사교육비’가 크게 줄지는 않았다.

재작년 통계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3% 감소했다. 국민들이 느끼지 못하지만 사교육비가 감소한 경우는 처음이다. 아직 국민들이 느낄 정도는 아니다. 만약 지난해에 현상 유지라도 했다면 내년에는 국민이 (피부로) 느낄 것이다. 나는 공교육 개혁보다는 가계 지출을 줄이려는 의도로 사교육비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항상 늘어온 사교육비가 현상 유지라도 한다면 이것도 의미가 크다.

지난해 대학가에서는 ‘반값 등록금’이 이슈였다. 어떻게 해야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가?

말이 쉬워 반이지 ‘반값 등록금’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안타까운 점은 등록금 올리는 사람과 잡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등록금이 7% 정도만 올랐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50%가 올랐다. 정부가 개입하건, 시장의 공익적 기능을 활용하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해도 대학 구조조정을 병행하면서 대학 진학률도 낮춰야 한다. 대학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졸자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 초기에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말만 무성하고 차기 정부로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2008년 정권 초기 공기업 민영화를 시도했지만 촛불 시위가 일어나면서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집권 1년차, 2년차, 3년차에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은 모두 다르다. 공기업 민영화는 1~2년차에 해야 했다. 개혁의 칼을 빼들고 노조를 설득하는 일은 힘 빠진 정부가 하기 어렵다.

지금 돌이켜보아 가장 아쉬웠을 때가 언제인가?

2008년 촛불 정국이었다. 사실 별것 아닌 것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한·미 FTA는 지난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소셜미디어의 힘도 컸다. 나는 이것은 중·고등학생의 팬클럽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정부에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국민들이 다시 협상하라고 했을 때 했어야 했다. 국민에게 재협상은 없다고만 하고 한 달 반이 갔다. 촛불 시위로 인해 정책을 추진하면서 발목을 여러 번 잡혔다. 처음 1~2년차 개혁의 동력이 가장 큰 때였지만 진영과 노선이 많이 흐트러졌다. 그때 밀리는 바람에 해야 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중도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인 논란에 휩싸였다. 일을 할 수 있는 중도 노선의 내부적 체제가 많이 흐트러졌고 개혁하려는 쪽이 뒤로 밀렸다. 국민과 정권은 급격히 멀어졌다. 정부는 반작용으로 더 강경하고 수구적인 방향으로 가버렸다. 사람도 많이 바뀌었다. 2007년의 이대통령은 굉장히 중도적이고 개혁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의 안철수와 비슷했다.

성숙하게 토론을 통해 잘 넘어갈 수 있었는데 사건이 커졌다. 적과 아군으로 이분법적인 구분이 행해졌다. 가장 아쉬움이 많은 부분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잘 설득하지 못했다. 나부터 비판해야 한다. 소통을 잘 하지 못했다. 초기 위기관리를 잘 하지 못하면서 5년 전체 진영과 노선이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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