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판결 하는 판사 너무 많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2.21 02: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전력 있는 방희선 교수 / “피고인 여러 명 세워놓고 일괄 처리하기도”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계기로 법관 연임 심사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2월17일에는 이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중앙·서부·남부 지법과 수원지법에서 잇따라 판사회의가 소집되기도 했다. 지금의 사법부 파동을 바라보는 방희선 동국대 법학 교수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 역시도 지난 1997년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당시 수원지법 판사였던 방교수는 1992년 피의자 불법 감금을 이유로 해당 경찰관들을 직접 고발했고, 이를 빌미로 보직이 바뀌자 대법원장을 상대로 헌법 소원을 내기도 했었다. 또한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유신·5공 판사들을 정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사법부 수뇌부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판사로 임용된 지 11년 만에 법복을 벗게 되었다.

이후에도 방교수는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법원 개혁에 앞장서왔다. 지난 2월15일 서울 강남구 양재동에서 만난 방교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관 평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쇄적 관료주의에 함몰된 사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이어졌다.

수원지법 판사 출신 방희선 교수가 우리나라 법관의 근무 평정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서판사의 재임용 탈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서판사의 ‘가카의 빅엿’ 발언으로 사태의 본질이 정치적 사안인 양 흐려지고 있는데, 이번 사태의 핵심은 법관 평정 제도에 있다. 대법원은 지난 10년간 서판사의 근무 평정이 낮아 재임용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 문제는 이 근무 평정에 대한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판사들도 승복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관 평정은 재임용은 물론 인사의 근거가 되는 만큼 객관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관 인사와 연임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그 법률에 의거해 인사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현직 판사 중에 재판을 엉망으로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근무 평정에 대한 기준이 바로 선다면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20~30명은 재임용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 능력 없는 판사들이 자리 보전을 하다 보니 영화 <부러진 화살> 같은 문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다룬 김명호 전 교수의 실제 석궁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보는가?

공판 속기록까지 샅샅이 살펴봤는데 절차상 문제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유죄 판결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의 성공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해진 만큼 대법원은 김 전 교수의 재판을 다시 한번 살펴봤어야 한다. 담당 재판관을 비롯해 사법부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문제이다.

불공정한 재판이 실제로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인가?

굳이 과거 판사 시절로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직접 겪은 사례만도 부지기수이다. 몇 년 전 위조 학위 사건에 대한 변호를 맡은 적이 있는데, 증인 심문 도중 진술 내용이 조서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이 점을 지적하자 검사도 가만히 있는데 판사가 나서서 “증인이 변호인과 사전에 만나 진술을 번복한 것이 아니냐”라며 오히려 나를 몰아세웠다.

판사들이 조서를 부실 작성하거나 허위 기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형사소송법 56조에 따라 공판 절차에서 있었던 일은 오로지 조서로만 증명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사실 이 법 자체도 악법이다. 뿐만 아니라 판사들이 이를 이용해 실제로는 부인했음에도 조서에는 인정했다고 써버린다. 판사의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변호사가 이의를 신청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유명 인사가 얽힌 사건에서는 재판관의 태도가 정반대로 달라진다. 피고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뇌물 수수 재판이 그렇다. 이처럼 재판의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판사가 법이 아닌 관행에 따라 재판을 하기 때문이다.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대한변협에서 법관들을 평가한 자료를 대법원에 제출하고 있다. 재판에 대한 지적이 나올 경우 해당 판사의 평정에도 좋지 않을 텐데?

대법원은 평가 자체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면서 이 자료를 활용하지 않는다. 변협의 평가 자료는 세부적인 항목에 따라 객관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소수의 인사권자가 밀실에서 평가를 하다 보니 윗사람한테만 잘 보이면 그뿐이다. 이는 평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법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직 대법관 중에도 재판을 엉망으로 했던 사람이 있다. 이 대법관은 단독판사 시절 ‘공포의 저승사자’로 악명을 떨쳤던 사람이다. 내가 직접 보기도 했었는데, 형사 재판을 할 때 피고인을 한꺼번에 여러 명을 세워놓고 일괄 처리해버리더라. 전쟁통에나 있을 법한 즉결 심판을 보는 것 같았다. 또한 헌재 재판관은 막말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증인이 조서 내용과 다른 진술을 하면 “너 수사받을 때 자백했잖아. 이 ○○○야”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인사가, 엄격한 시스템이 아닌 ‘정치’를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이런 사람이 대법관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인사가 정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사례를 하나 들어주겠다. 고위 법관을 임명 제청하는데 행정부와 사법부가 서로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트레이드하기도 했다. 즉, 사법부가 행정부에서 미는 법관을 제청하고, 그 대가로 사법부가 원하는 법관이 임명될 수 있도록 행정부가 협조하는 식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사법부의 인사 시스템이다.

상당히 민감한 발언인데, 실제 그런 사례가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 다만 여기서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법원 내부적으로 자정 노력은 없는 것인가?

판사들 중에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결국 법복을 벗게 되더라. 법관 회의 때 건설적인 말을 하면 이른바 윗사람에게 찍힌다. 그렇다 보니 법원장급들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권위적인 관료주의 문화도 큰 문제이다. 부장판사는 군대의 지휘관처럼 군림하면서 다른 배석판사들에게 반말을 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전 대법원장 중에는 공개석상에서 ‘내 휘하의 부하 법관들’이라는 용어를 써서 물의를 빚은 사람도 있다. 가장 먼저 “사법부는 내 조직이다. 내가 관리하겠다”라는 대법원장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후배 판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의 판사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자기 암시에 걸린 듯하다. ‘내가 잘하니까, 내 동료도 잘한다. 그러니까 사법부는 문제가 없다’라는 집단 최면에 걸려 있다. 이런 생각이 지속되는 한 사법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현재 법관들은 사법권의 독립, 신분 보장 등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할 뿐 책임 의식이 없다. “무슨 짓을 하든 건들지 마라”라는 식이다. 사법부가 마치 독립된 공화국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집단 이기주의 속에 숨어서 사사로운 이익만 추구하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 이번 판사 회의를 통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법관 평정 제도가 갖추어지기를 바란다. 평정 제도는 국민이 올바른 재판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과 직결된다. 판사들은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와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