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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흑막 뒤에 숨은 몸통은 누구?

정락인 기자 ㅣ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3.19(Mon) 21: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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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난 최대의 ‘국기 문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사찰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검찰 수사 당시 사찰 증거를 직접 인멸했던 당사자인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입을 열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보아도 청와대와 검찰로 이어지는 정권 핵심부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민간인 사찰의 ‘판도라 상자’가 드디어 열렸다. ‘민간인 사찰’은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난 최대 ‘국기 문란 사건’이다. 다른 곳도 아닌 정권 핵심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온갖 억측만 남긴 채 수면으로 가라앉았다. ‘배후’와 ‘몸통’을 밝히라는 국민적인 요구는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사건의 배후를 밝혀야 할 검찰은 오히려 은폐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는 적극적인 ‘진실 규명’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핵심 증거들이 조직적으로 은폐되면서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꺼져가던 촛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사찰 증거를 직접 인멸했던 당사자이다. 그런 그가 입을 열고 있다. 아울러 베일에 가려졌던 민간인 사찰의 실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보아도 청와대와 검찰로 이어지는 정권 핵심부가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거대한 국가 권력을 창과 방패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가 어렵게 되었다. 검찰은 재수사를 천명했다.

이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보고 라인’과 ‘은폐 라인’의 종착점에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공직윤리 지원관실에서는 사찰 내용을 누구에게 올렸고, 그 보고서가 어디까지 올라갔느냐를 밝혀야 한다. 그러면 이 사건의 배후와 몸통을 찾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은폐 라인’이다. ‘은폐’는 보통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사전 또는 사후 조치이다. 은폐 가담자들이 누구를 감추기 위해 증거를 인멸했는지를 알면 최상층에 누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식 보고 라인은 청와대 공직기강팀을 거쳐 민정수석에까지 올라간다. 민간인 사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정동기 전 대검 차장이었고, 공직기강팀장은 이강덕 현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 총리실 지원관실에서는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아래에 김충곤 점검1팀장과 원충연 조사관이 핵심 인물이다. 검찰은 지난 수사에서 불법 사찰 혐의로 지원관실 소속의 세 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종결지었다. 즉, 이인규 지원관이 민간인 불법 사찰의 종착역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또 사찰 보고의 종점이 이인규 전 지원관이 아니라는 정황이 곳곳에 있다. 기자는 3월14일 오후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을 만났다. 이의원은 ‘청와대 대포폰’의 실체를 폭로했고, 사찰 보고가 청와대까지 이루어졌다고 주장해왔다. 이의원은 기자에게 총 13쪽 분량의 문건 하나를 넘겨주었다. 이것은 서울중앙지검 수사2과의 분석 요청에 따라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관실이 작성한 ‘분석 보고서’이다. 2010년 11월17일에 일부 내용이 공개되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 문건이다. 여기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었다.

대검이 작성한 ‘분석 보고서’에 담긴 중요 단서

그중에서도 여섯 번째 쪽은 사찰 배후를 밝혀줄 중요한 단서였다.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민간인 사찰 보고’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2008년 9월27일 사찰 보고서는 민정수석이 아닌 다른 청와대 인사에게도 보고되었고, 10월1일에는 총리에게도 보고되었다. 검찰의 분석 보고서만 보더라도 사찰 보고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총리실에 보고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대통령을 언급한 대목도 있다. 분석 보고서에는 정영운(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의 외부명 컴퓨터의 ‘휴지통’에서 2008년 3월27일자의 ‘대통령 업무보고’(최종)라는 한글파일이 나왔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이 컴퓨터가 2008년 3월21일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처음 구성된 대통령 비서실에서 사용되던 컴퓨터라는 것을 뜻한다. 즉, 청와대에서 대통령에 대한 최종 업무보고서를 작성했던 핵심 요원이 공직윤리지원관실로 파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증거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정황 자료도 있다. 바로 원충연 전 조사관이 사찰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 일명 ‘원충연 수첩’이다. 여기에도 보고 라인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대한적십자사(한적)의 동향을 파악한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여기에는 ‘2B 입장에서 조금 더 빠르게 조사’라는 대목이 나온다. ‘2B’는 이영호 청와대 전 고용노동비서관을 지칭한다. 즉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청와대 민정 쪽에서도 조사하고 있으니 2B(이영호 비서관) 입장에서 조금 더 정확한 자료를 빠르게 조사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또 있다. ‘2중 플레이’라는 메모도 있다. 이는 윤리지원관실이 민정수석 쪽에 덜 상세하게 보고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원 전 조사관의 수첩 내용으로만 보면 사찰 내용을 민정수석실에도 보고하고, 고용노동비서관에게도 보고한 것이 된다. 특히 공식 보고 라인인 민정수석실보다는 비선 라인에 먼저 보고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비선 라인은 이영호 전 비서관을 일컫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영호 비서관은 국가 기관의 정보를 개인이 사유화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여러 정황을 보면 이영호 비서관이 민정수석실을 경계하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이용했다. 마치 사조직처럼 운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번 검찰 수사에서는 이런 정황들이 무시되었다. 참조만 하고 수사 대상에서는 제외되었다.

하지만 재수사는 달라야 한다. 검찰이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있다면 ‘보고 라인’으로 지목된 인사들을 조사해야 한다. 정동기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당시 공직기강팀장이었던 이강덕 서울경찰청장이 그들이다. 또 국가 조직을 사조직화하며 비선 라인을 운영했다는 의혹이 있는 이영호 전 고용노동비서관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 이들의 조사를 통해 ‘사찰 보고’가 누구에게까지 되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이영호 당시 비서관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는 비서관이었음에도 종종 대통령에게 직보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증거 자료의 은폐에는 누가 관여되어 있을까. 검찰의 민간인 사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나돈 것이 ‘은폐 의혹’이다. 2010년 7월 사찰 문제가 불거지자 국무총리실은 이인규 지원관 등 네 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런데 검찰의 태도가 이상했다.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서는 압수수색이 시급했지만 무려 나흘간이나 미적거렸다. 그 사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원관실은 중요 증거들을 인멸했다. 사찰 관련 자료들은 없앴고, 민간인 사찰을 맡았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복구가 불가능하게 파괴했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통해 증거 인멸은 진경락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지시했고, 장진수 전 주무관과 권중기 전 조사관이 실행했다고 밝혔다. 외부의 입김이 없이 지원관실 차원에서 증거 인멸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당시 검찰 수사가 미적거린 이유가 드러났다. 장 전 주무관은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이 ‘검찰이 먼저 요구하고 있다’라며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 또 최 전 행정관은 검찰 압수수색 날짜를 8일쯤으로 알고 있었고, 검찰은 8일에 압수수색을 청구하고 9일에 압수수색을 했다”라고 폭로했다. 장 전 주무관의 말대로라면 청와대와 검찰이 압수수색을 조율했다는 것이 된다. 최종석 전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 인멸에 이용하라며 대포폰을 준 인물이다.

   
대검찰청 분석 보고서(위)에는 사찰 내용을 청와대와 민정수석실, 총리에게 보고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원충연 전 조사관의 수첩(왼쪽)에는 민정수석실과 이영호 고용노동비서관에게 보고한 정황이 담겨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보고 라인’으로 지목된 인사들 조사 불가피

청와대에서 대포폰이 지급된 것은 ‘청와대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이다. 그런데 검찰은 대포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최 전 행정관의 직속 상관인 이영호 비서관은 검찰로 불러 조사한 반면, 최 전 행정관은 서울 시내의 호텔에서 방문 조사를 했다. 최강욱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 조서에는 대포폰에 관한 것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검찰이 청와대를 감싸거나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증거 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진경락 기획총괄과장과 장진수 주무관 두 사람만 기소했다. 최 전 행정관은 대포폰을 준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 기소 대상에서는 빠졌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최 전 행정관이 증거 인멸에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최 전 행정관의 직속 상관이던 이영호 비서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지난 수사에서 이 전 비서관을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한 후 혐의가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장 전 주무관은 이 전 비서관이 적극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이영호 비서관이 장진수 전 주무관의 입막음을 위해 돈을 준 정황도 포착되었다. 최종석 행정관이 “이영호 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며 2천만원을 줬다”라고 했다. 증거 인멸과 입막음을 위한 ‘용도’로 보인다. 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를 매달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에 상납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과 장진수 전 주무관의 말을 보면 사찰 증거를 인멸하는 데에는 최종석 행정관과 이영호 비서관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이에 대해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최강욱 변호사,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 등은 고개를 흔든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BH 지시 사항’이라는 수첩 메모와 청와대에 올리는 내사 보고서 외에 대포폰까지 청와대가 만들어준 사실을 검찰이 모두 파악했으면서도 청와대를 기소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는 “수사 진행을 보면 검찰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덮고 은폐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의 검찰 수뇌부가 바뀌지 않는 한 재수사에 회의적이다. 특검이나 청문회 등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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