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도 벌어도 ‘헉헉’‘무늬만 중산층’의 잔혹한 추락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6.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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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빚잔치”…세금·이자 제하면 아르바이트 시급 수준 돈벌이

사례 1 하우스푸어. “대출금 이자에 가위눌린다”

남자가 운다. 5억원짜리 아파트가 있지만 5천원이 없어 점심을 걸러야 하는 삶이 서럽다. 황성민씨(34·가명)는 비비 꼬인 삶을 되짚자니 목이 메어 이따금 헛기침하지 않으면 말을 잇기 어려웠다. 오래전 부모를 여읜 그는 혼자 힘으로 학교를 마치고 직장도 얻었다. 직장 생활 3년 반 만에 경기도 광주시에 22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결혼을 앞두고 모아둔 돈과 은행 대출금을 합쳐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한 셈이다. 그의 소박한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다. 작은 집이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장만하고, 가족이 오순도순 사는 삶은 그의 오랜 소망이었다. 자신의 부모는 끝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 터이다. 황씨는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아내도 아르바이트로 몇 푼 벌어서 월 3백만원 벌이가 되었다. 세금 내고,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남은 돈으로 조금이나마 저축도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9년부터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상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살 수밖에 없었던 황씨는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4억5천만원에 아파트를 덜컥 계약했다. 그는 “당시 분양하는 아파트는 대부분 중대형이었다. 제일 작은 평수가 35평이었는데, 추첨으로 분양이 끝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남은 45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그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대금의 절반은 기존에 살던 집과 작은 선산을 팔아 충당하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우선 은행에서 1억6천만원을 융자받아 계약금을 냈다. 선산을 팔아 1억원을 마련했다. 입주까지는 3년이 남아서 재투자를 하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돈을 더 불릴 생각에 평당 20만원짜리 땅을 샀다. 선산을 팔고, 땅을 사는 과정에서 양도세와 취득세로 2천만원이 나갔지만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년이 지나 입주할 시기가 왔지만 그는 입주를 포기했다. 은행 대출과 아파트를 판 돈으로 어떻게 분양금은 충당했지만 대출 이자가 만만치 않았다. 황씨는 “장인과 장모를 모실 수 없게 되었다. 아파트로 입주하면 대출금 이자를 갚기 위해 월급을 다 써도 모자랄 판이었다. 아파트를 1억8천만원에 전세를 주고, 나는 아내와 경기도 일산에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1989년에 지은 18평짜리 집을 6천만원에 얻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직장을 옮겼다. 연봉 3천5백만원 계약직이다. 월급에서 세금을 원천 징수하면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2백20만원 선이다. 아내가 임신해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파트 대출금의 이자만 매달 100만원이다. 아파트 취득세 8백만원도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아서 해결했지만, 한 달에 이자가 28만원이다. 얼마 전 생활비가 부족해서 1천만원을 카드로 신용 대출받고 월 5만원씩 이자를 갚고 있다. 대출 이자만 모두 1백30만원인 셈이다. 교통비 5만원, 통신비 10만원, 관리비 4만원, 점심값 6만원, 장인 용돈 10만원을 제하면 55만원이 남는다. 요즘 시장에 가면 10만원으로도 살 것이 거의 없다. 물가는 오르고 수중에 돈은 뻔하다.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세금을 내거나 경조사비를 내기라도 하면 적자 인생이다.

그의 취미는 사진 촬영이다. 생활비가 없으니 카메라를 헐값에 팔았다. 황씨는 “아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빌려 주말에 결혼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 건당 15만원을 받는다. 다음 달에 아이가 나온다. 아이 용품이 얼마나 비싼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중고품이라도 마련하려면 투잡을 하지 않는 한 도리가 없다”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평당 20만원에 산 땅을 평당 10만원에라도 팔아서 우선 생활비로 쓰려고 해도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 세금과 확장비 등을 합쳐 5억원에 분양받은 45평 아파트를 4억원에 내놓아도 거래가 없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사람 만나기를 피한다. 커피라도 한잔해야 하고 술도 먹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있어야 말이지. 아내는 화장품과 옷을 언제 샀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아내와 밤에 누워 이런 말을 한다. 월급 2백20만원을 그대로 생활비로 쓰고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나는 매달 빚잔치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셈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례 2 워킹푸어. “돈이 없어 출산이 두렵다”

직장 생활 10년차인 이호민씨(36·가명)는 집이 없다. 대출 이자 부담이 없고 매달 20만원은 저축한다. 한 달에 3백만원을 버는 이씨는 전형적인 중산층에 속하지만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씨는 “지난달 보험료 38만원, 통신비 10만원, 교통비 15만원, 대출 이자 10만원, 소득세 12만5천원, 건강보험료 10만5천원을 냈다. 연간 근로소득 원천 징수금은 92만원 정도이다. 살림이 빠듯하다. 중산층이라면 대출 없이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출 이자가 무서워 집 장만은 꿈도 못 꾼다”라고 말했다.

2007년 결혼할 때 이씨는 자신이 자취하던 서울 연남동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아내가 임신해서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가진 돈이 없으니 서울에서 밀려나 인천 부평구로 이사했다. 34평 빌라를 1억원에 얻은 것은 행운이었다. 이씨는 “집 주인이 급히 1억원이 필요해서 시세보다 싸게 전셋집을 구했다. 그렇지만 2년 후 전세 재계약 시기가 되자 집주인은 시세대로 전세금을 올려 받아야겠다고 했다”라며 당황스러웠던 그때를 떠올렸다.

추가로 1억원이 필요했다. 다시 짐을 꾸려 근처에 있는 20평짜리 빌라를 1억2천만원에 전세로 얻어 이사했다. 은행에서 2천만원을 대출받았고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도움을 받았다. 이씨는 “다음 달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걱정부터 앞선다. 출산비, 아이 용품 비용 등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 투잡을 뛰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시간이 만만치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요즘 중산층이 두터워졌다고 하는데 도대체 중산층이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통계적 중산층과 체감 중산층 온도 차 여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의한 중산층은 이렇다. 소득이 가장 많은 사람과 가장 적은 사람을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기준으로 삼아, 그 소득의 50%에서 1백50%까지에 해당하는 가구가 중산층이다. 1백50% 이상은 상류층, 50% 이하는 하류층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금액으로 따져 볼 때 월 1백75만원에서 5백25만원인 가구가 해당한다. 한국은행과 현대경제연구원 등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중산층 비중이 1995년 75.3%에서 2010년 67.5%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만큼 중산층이 얇아졌다는 뜻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산층이 얇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기술 진보 현상이다. 숙련된 기술자나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만 늘어났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또 다른 하나는 금융 자유화(규제 완화)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 경영자들이 과도할 정도로 많은 임금을 가져갔다. 고급 인력을 채용하려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자는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통계적으로는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하류층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이른바 중산층 포기자가 생기는 이유는, 통계적 중산층과 체감하는 중산층의 온도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보편적인 개념은 이렇다. 월급이 보장된 직업이 있고, 자기 집이 있으며, 저축도 조금 하고, 승용차 등 생활 편의 수단을 갖춘 가구를 중산층이라고 본다. 그런데 통계청이 지난해 국민에게 물었더니 상류층은 1.9%, 중간층은 52.8%, 하류층은 45.3%로 나타났다. 상류층은 중간층이라고 엄살을 떨고, 중산층은 하류층이라고 자신을 비하하는 경향 때문이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에는 전체 가구의 70~8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10년 후인 2006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를 보면 그 수치는 28% 수준에 그쳤다.

또 지난해 중산층의 20%가량이 해마다 계층 하락의 위험에 놓여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내려간 비율은 1998~2008년 사이에 10~20%로 꾸준히 오르락내리락했고, 2006~08년 사이에는 20%에 근접했다. 상류층으로 올라간 비율은 10%를 밑돌았다. 중산층은 빈곤층보다 상대적 위치만 나을 뿐, 자산 변동 폭이 크고 소득 불안정성도 매우 높아 안정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설윤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통계적인 중산층과 심리적으로 느끼는 중산층의 개념 사이에 괴리감이 크다. 최근 중산층 비중이 다소 회복되는 것 같지만 심리적 괴리감은 여전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중산층 몰락 예방책은 교육에 있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내·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들어오는 돈은 빤한데, 꼭 써야 할 돈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소득 중에서 비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8.8%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비소비 지출이란 재산세·소득세·자동차세 등 세금과 건강보험료·국민연금·이자 비용 등의 경직성 비용이다. 100만원을 벌어 연금·이자·건강보험료 등으로 18만8천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여유가 그만큼 줄어들어 살림살이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칼국수 한 그릇의 가격은 5천3백78원이다. 올해 최저 시급은 4천5백80원이다. 비소비 지출을 제하고 자신의 손에 쥐는 돈이 월 80만원 정도라면 아르바이트 시급을 버는 것과 비슷하다. 월 90만원이라면 시간당 칼국수 한 그릇 살 돈을 버는 셈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66.3%로 최저점을 찍은 중산층 비중이 2009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지난해에는 67.7%까지 회복되었다. 전문가들은 전·현 정부의 복지 정책 및 공정거래법 강화 등이 제동을 건 때문으로 분석한다. 이런 증가세를 유지해 중산층의 몰락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방책은 교육에 있다. 먹고사는 일이 급하다 보니 응용 학문이 많이 늘었다. 정보 처리, 금융학 등인데, 이런 학문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강조되는 점이 문제이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학문이어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현실 학습 능력이 약하다. 오히려 인문, 기초과학을 강조해서 어떤 현실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플랫폼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교육의 기회가 균등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장학금을 소득 수준에 맞춰 지급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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