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모란봉악단, ‘김정은 변화’를 알리다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2.07.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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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평양공항의 새 단장에도 적극 나서 고려항공 기내식도 바꾸고 이동 버스도 교체

조선중앙TV가 7월11일 녹화 방송한 모란봉악단의 공연모습. 이번 공연에서는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하얀 드레스와 미니 원피스, 굽 높은 하이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캐릭터 출연 등 파격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 연합뉴스·AP 연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7월17일 ‘공화국 원수’직을 수여받음으로써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치를 명확히 하게 되었다. 이미 필자가 지난 6월19일자 <시사저널>(제1183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부에 대한 김정은의 관리 체계가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군부 지도 횟수가 감소하고 있고, 민생 문제에 대한 로동신문의 기사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 둔 바 있다. 뿐만 아니라, 7월에 접어들면서 필자는 또 북한에서 보도한 영상과 신문 등을 통해 놀라운 변화들을 목격했다. 이런 일련의 파격적인 변화에 연이은 이번 조치는 북한의 후계 구도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인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새롭게 조직된 ‘모란봉악단’의 7월6일 시범 공연은 과거 북한의 공연 문화와 상당히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명의 악단과 6명의 가수로 시범 공연을 펼친 모란봉악단의 공연 곡목 선정에서도 그렇지만, 의상과 악기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김정은 제1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약 두 시간가량 이어졌는데, 시작부터 전자바이올린과 전자첼로가 등장하며 의상에서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쪽 어깨 소매가 없는 드레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짧은 치마도 서슴지 않고 등장했다.

미국에게 주는 메시지 효과 클 듯

김정은이 북한 유일의 민간 항공사인 고려항공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 ?
연주 곡목 선정에서도 동서양을 넘나들었다. <아리랑> 경음악 연주로 시작된 1부 마지막 곡으로는 중국곡 <오성홍기>를 중국어와 번안 가요(<붉은기 펄펄>)로 부르며 ‘오성홍기… 너의 이름 목숨보다 귀중해’라는 가사를 부르면서 북·중 관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2부에서는 미국의 할리우드 문화와 서양 경음악들을 연주했고, 3부에서는 미국 월트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 주제곡들을 연주하면서 해당 작품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말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을 거두었던 할리우드 영화 <록키>의 주제곡 <Gonna Fly Now>가 <이제 곧 날아오르리>로 소개되면서 연주되고, <My Way(나의 길)> <집시의 노래> 등이 연주되었다. 3부에서는 ‘세계 동화 명곡 묶음’이라는 타이틀로 여러 곡이 소개되었는데,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작은 세상(It’s a small world)> <톰과 제리> 등이 연주되었고, <곰돌이 푸> <미키마우스 행진곡> <미녀와 야수> 등이 번안되어 노래로 소개되었는데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무대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백조의 호수> 등이 연주되었는데, 동화를 연주할 때에는 해당 캐릭터의 가면과 옷을 입은 무희들이 함께 춤추는 장면을 연출했다. 마지막 피날레는 당과 김정은에 대한 찬양 가요로 장식했고, 이를 끝까지 관람한 김정은 제1비서는 엄지를 치켜올리고, 손을 흔들며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퇴장했다.

이와 같은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기존 북한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것으로 틀을 벗어나는 것이며, 전 세계와 교감하겠다는 점, 특히 미국 문화에 대한 거리감을 상당히 좁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또한 이러한 공연이 미국에게 주는 메시지가 대단히 클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김정은 시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모란봉악단을 통해 전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평양공항에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7월5일자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항공역 사업을 현지 지도’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먼저 과거 평양의 순안공항으로 알려졌던 명칭의 변화부터 알 수 있다. 공항청사 건물이 새롭게 완공되었는데 지난해 9월 착공해 태양절을 맞아 제1항공역사가 6개월 만에 완공된 바 있고, 새로 건설되는 제2항공역사에 대해 현지 지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항공역이 자리 잡고 있는 순안지구를 위성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수도 평양의 관문, 얼굴답게 꾸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는데, 유럽 생활을 경험한 김정은 제1비서의 인식에도 평양 공항의 낙후성이 일찍부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4년여 동안의 스위스 유학 당시 북한을 오가는 청년기의 김정은의 눈으로 볼 때 서구 유럽과 비교되는 평양의 공항 모습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로 작용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또한 일반 여객기와 과거 김일성·김정일이 이용했던 (전시된) 사적 비행기를 둘러보고 개선을 위한 지도를 시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특히 최근 북한 여객기의 기내식이 유튜브를 통해 최악의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사가 되었었는데, 이후 고려항공의 기내식도 달라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공항 내 이동 버스도 신형 차량으로 교체되었다.

주변국과 관계 개선하겠다는 의도 내비쳐

이와 같이 김정은 시대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통해 남북 관계 및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의도들을 엿보게 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에서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 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것은 남북 관계 개선 의지가 여전하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변화의 상징이 되고 있는 모란봉악단 시범 공연의 첫 곡이 <아리랑>이라는 사실 역시 바로 이러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이후 김정은 제1비서가 만족을 나타내면서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으면서 전통과 대중성을 균형감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특히 “다른 나라의 것도 좋은 것은 대담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언급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음악들을 받아들인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바로 북한이 서구의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 눈높이는 김정은 제1비서의 젊은 나이와 걸맞은 수준에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나라들로부터 받아들인 음악들의 특징을 보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작품들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히려 김정은 제1비서가 어린 시절과 청년기 때 좋아했던 작품들을 북한의 어린이, 젊은이들이 함께 공유하기를 희망하는 점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들이 북한 전체 인민 대중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범 공연이라는 성격이 있지만,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한 청중의 숫자가 3백여 명에 불과해 최고지도자가 참석하는 공연의 청중 규모로는 매우 소규모라 할 수 있다. 이는 서구 음악들이 갑작스레 대중에게 전파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을 감안한 조치가 아닌가 평가된다. 따라서 이러한 공연 문화 전파의 범위와 속도는 인민 대중들의 반응을 감안하면서 조절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최근에 나타난 북한의 시도들은 그동안 전무했던 새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미 로동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변화 시도는 이례적이지만,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사저널 주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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