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CD 금리 개혁, 금융위가 방해했나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8.0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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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스크포스팀 꾸려 해결 나섰는데 중단 요구받은 정황 드러나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월7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론스타 관련 현안 보고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증권사들의 CD 금리 담합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증권사 10곳을 중심으로 현장 조사를 마친 후 자료를 확보해 담합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다. 조사가 시작됨에 따라 금융 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CD 금리와 관련한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어왔음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금융 당국이 손을 써보려 했지만, 오래 못 가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금융위의 과장급 인사가 이메일로 요구”

<시사저널>은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CD 금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대책 마련에 착수했으나 외부 상황에 의해 논의가 중단되었다는 제보를 확보했다. 내막은 이러했다. 오래전부터 CD금리는 금융 당국에게도 골칫거리로 여겨지고 있었다. CD는 ‘양도성 예금 증서’의 영어 표현이다. 말 그대로 ‘예금을 했다는 증서’이다. 그러나 예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언제라도 돈을 찾을 수 있는 예금과 달리 CD는 일정 기간 동안 돈을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만기 3개월의 CD를 사면 3개월 동안 고객은 돈을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일반 예금보다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정 기간 동안 고객의 돈을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은행에서는 CD 금리를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등의 금리를 정해왔다. 그러나 CD 발행 물량 자체가 감소하면서 CD 금리가 시중 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CD 금리를 대체할 수 있는 지표 금리를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금융투자협회(약칭 금투협) 등과 협조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12월1일 첫 미팅을 시작으로 12월7일, 12월14일에 걸쳐 논의를 진행했다. 논의는 건설적이었다. 당시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통안채나 은행채 3개월물 금리로 CD 금리를 대체하는 등의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해당 TF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 금융위 한 과장급 인사로부터 금감원과 금투협 관계자들에게 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의 이메일이 전해졌다.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취지의 내용이었다”라고 전했다. 그 이후 금감원은 테스크포스팀의 논의를 중단했다. 해당 내용이 사실일 경우 금감원의 CD 금리 문제 개선 의지를 금융위가 꺾은 꼴이 된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TF를 계속 진행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담합 여부 조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지목된 금융위 이 아무개 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는 “당시 회의를 통해 논의를 하는 것은 좋지만 대외적으로 요란스럽게 하기보다는 조용히 진행하자고 했다. 어떻게 이메일을 통해 그런 말을 하겠느냐. 사실이 와전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의혹은 최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제기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무위에 참석했던 한 의원의 비서관은 “금융위가 뭐가 아쉬워서 협의를 하자고 했겠느냐. ‘조용히 논의하자’는 수준이 아니라 ‘TF 논의를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당시 정황이 무엇이든 금융위와의 접촉 후 금감원 TF가 중단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이 금융 업종에 대한 감독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면 금융위는 금감원을 지도·감독하는 기관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주문이 내려오면 금감원은 따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금융위의 젊은 직원들이 금감원 국장급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금감원은 현재 내부적으로 CD 금리 관련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에서 지적하는 CD 금리 문제의 근원은 발행 규모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CD 금리는 CD 거래 실적 상위 10개 증권사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여기에 해당하는 10개사는 금투협에 수익률을 보고한다. 금투협은 제출된 수익률 중 최고와 최저 수익률을 제시한 한 곳씩을 제외한 후 평균을 낸다. 그런데 최근 CD 발행 규모가 급감하면서 증권사들이 수익률을 보고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 담당 직원들은 주관적 판단에 근거해 CD 금리 수준을 보고하게 되었다. 이것이 곧 CD 금리가 시중 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왔다는 것이 금감원의 시각이다.

CD 금리 발행 규모가 갑자기 급감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010년 금융 당국은 은행에 예대율을 100%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예대율은 예금 대비 대출 규모를 말한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은행들이 ‘예금 기근’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는 주식시장 활황기로 많은 돈이 주식으로 몰리고 있었다. 또 고금리를 원하는 돈다발은 저축은행으로 향했다. 은행 예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와중에 예대율을 100% 이하로 낮추라는 주문이 나오자 은행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되었다. CD는 예금 실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은행들은 예대율 낮추기에 전념하며 예금을 늘리는 데 치중했다. 그 대신 CD 발행 규모를 줄여나갔다. 2008년 1백15조원에 달했던 CD 시장 거래 규모가 2011년에는 32조원으로 뚝 떨어졌다.

금감원은 CD 금리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증권사들의 담합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담합 가능성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권혁세 금감원장의 발언을 놓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내적으로도 금감원은 ‘담합 가능성이 작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확인한 최근 금감원 내부 문건 역시 증권사들의 담합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금감원측 “증권사들의 담합 가능성은 작다”

금감원이 이처럼 분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담합을 해서 증권사들이 얻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CD 금리 제출 의무가 있는 10개 증권사는 CD 거래의 직접 매도자가 아닌 중개자에 불과하다. 담합해도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가 CD 거래에서 얻는 수익은 1bp(0.01%)에 불과하다. 또, 금융 당국은 2008년부터 CD 금리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해 CD 금리 대신 코픽스를 권하며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 어떤 증권사들이 담합을 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발표 후 CD 금리에 대한 논의는 금융 당국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CD 금리 개혁 논의 방해 의혹을 받는 금융위도 지금은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와의 차이가 있다면 담합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고 개선책 찾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성진 금융소비자협회 사무국장은 “아직 담합 여부에 대한 의혹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앞으로 어떻게 개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담합 정황이 나온 만큼 우선 담합 여부 조사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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