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봐주기 재판 이제야 종지부 찍나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8.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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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법정 구속…2심에서 판결 뒤바뀔지 주목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떠넘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8월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액의 비자금을 횡령·배임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현직 재벌 총수로는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되었다. 지난 2010년 8월 한화증권 퇴직자가 금융감독원에 차명 계좌 5개를 제보하면서 촉발된 비자금 사건이 결국 김회장 법정 구속으로 이어진 것이다. 재계에서는 경제 사건으로 10위권 재벌까지 구속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워하는 분위기이다. 그동안 재벌가와 관련된 사건에서 총수가 구속된 일이 드물었고,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불구속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법원이 김승연 회장의 유죄를 인정한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김회장이 한화그룹 지배 주주로서의 영향력을 이용해 계열사에게 부실한 위장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게 하면서 계열사의 피해액이 2천9백억원에 이른 점, 계열사가 보유한 주식을 김회장 일가에게 싼값으로 양도해 계열사에 손해를 입힌 점, 또 임직원 이름을 빌려 1천억원대의 차명 계좌를 관리하고 이를 주식 거래에 이용하면서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점이다.

계열사를 동원해 우량 계열사와 부실 계열사를 섞어서 부실함을 덜어내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재벌 선단 경영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재벌에서는 ‘총수의 결단’에 의해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 대부분 계열사에서 자금력을 동원하고 사업 실패로 이어져도 총수의 손해는 없이 계열사들이 손실을 떠앉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해왔다.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법원이 유죄를 내림에 따라 재벌의 선단식 경영 행태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 셈이다.

이번 법원 판결이 한화에 꼭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시각도 있다.

한화는 지난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현 한화투자증권)을 인수한 뒤 한화증권과의 합병 작업을 추진해왔다. 이 합병 작업 추진 도중 김회장의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자본시장통합법에는 형사 사건에서 유죄를 받는 경우 대주주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규정이 있다. 지난해 하반기 예정되었던 한화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의 합병 작업이 무산된 뒤 한화그룹 쪽에서는 전산 통합 문제로 미루어졌다고 했지만, 금융계에서는 비자금 사건의 불똥이 튄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지난 3월 김회장 명의의 한화증권 지분이 매각되었다. 한화측에서 문제의 소지를 사전 차단한 것이다. 지난 6월20일 금융위원회는 한화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의 합병을 승인했다. 2년여를 끌어오던 합병 작업이 마무리된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이은태 국장은 “이번 비자금 사건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합병 인가 요건을 충족시켰기에 승인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왔던 경제개혁연대에서도 “검토 결과 흡수 합병을 통해서 대주주가 되는 경우 대주주 변경 심사 대상이 아니기에 더는 문제 삼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김회장이 구속되기는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김회장이 드라이브를 걸었던 한화의 금융 그룹 변신 노력이 이번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는 전기가 된 셈이다. 

세 아들에게는 거액의 소득 그대로 남아

2세 재산 승계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한화S&C의 주식 저가 매입으로 인한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김회장 입장에서는 소득이다. 한화그룹의 IT계열사인 한화S&C의 주식은 ㈜한화 소유였다. 이를 한화의 대표이사인 남 아무개씨가 2005년 6월께 김회장의 장남인 김동관씨 등 아들 세 명에게 주당 5천100원에 매각했다. 검찰에서는 한화S&C의 주당 가치가 약 23만원에 달한다고 보았고, 한화에서는 회계법인의 가치 평가에 따르면 4천6백14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한화S&C 건을 문제 삼아 김승연 회장을 상대로 주주 대표 소송을 진행 중인 경제개혁연대는 “무죄를 납득하기 어렵다”라는 논평을 냈다. 경제개혁연대의 강정민 연구원은 “검찰의 한화S&C 가치 평가에 의하면 한화는 김회장의 세 아들에게 주식을 헐값에 팔아 회사에 9백억원대의 손실을 끼쳤다. 경제개혁연대가 삼성 특검에서 삼성SDS 신주 인수권의 적정 가격 산정 방법으로 인정된 방법으로 주식 가치를 평가했더니, 한화S&C의 적정 가격은 12만2천7백36원으로 한화에 4백50억원의 손실을 끼친 것이다. 재판부가 ‘매각 과정에서 임무 위배의 정황이 보이기도 하지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적정 가치를 꼼꼼이 따져보지 않은 것은 심리를 소홀히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김회장, 주주 대표 소송에서도 유리한 국면

어쨌든 이번 판결로 김회장은 세 아들에 대한 재산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4백50억원에 달하는 소송 가액이 걸린 주주 대표 소송에서도 유리한 국면에 서게 되었다. 때문에 이번 재판이 김회장의 아들 구하기 시리즈 두 번째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7년 김회장은 둘째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하고 돌아오자 경호원을 이끌고 가해자를 찾아가 보복 폭행을 해 구속된 전력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재벌 권력이 종신 권력으로 5년짜리 정치권력을 좌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회장에 대한 법정 구속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때문에 곧 이어질 법원의 2심 판결이 주목된다.


‘종신 경제 대통령’ 재벌 총수의 릴레이 구속으로 이어질까 

재벌 총수들은 경제 사건으로 재판정에 서도 구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실형을 선고받아도 불구속이나 보석,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래서 재벌 총수에 대해서는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의 정찰제 선고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이들에게 실형을 내리지 않는 표면적 이유는 ‘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였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법정 구속은 이런 ‘관행’이 당분간 나타나기 힘들 것임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해당 기업 관계자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9월 중 1심 선고가 예상되는 SK그룹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선 직전이어서 경제 민주화, 재벌 개혁이라는 화두가 더욱 민감해질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회사 돈을 횡령해 선물 투자를 했다는 혐의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2심 재판 결과도 주목된다. 이회장은 1천4백억원대의 회사 돈을 횡령·배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지난 2월 열린 1심에서 징역 4년 6월의 실형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2심을 진행 중이다. 특히나 이회장 건에서는 그의 모친인 83세의 이선애씨가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이선애씨는 현재 구속 집행 정지로 나와 있다.

횡령 사건으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금호석유화학의 박찬구 회장은 일러야 내년 상반기에나 1심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SK그룹이나 금호석유화학 쪽에서는 한화 비자금 사건과는 해당 재벌 총수의 배임 사건이 성격이 다른 사안이라고 말하지만, 경제개혁연대에서는 “법원이 재벌 총수에게 양형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다음 사례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의 형사 사건이다”라며 좀 더 엄격한 집행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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