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백만 베이비부머 ‘은퇴 충격’ 다가온다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09.1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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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고정 소득 확보 및 금융 상품 고르는 요령

9월1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킨텍스에서 열린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 게시판을 보고 있다. ⓒ 뉴스뱅크
최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베이비부머 일자리 박람회’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의 중·장년층 수백 명이 아침부터 긴 줄을 섰다. 이력서 수십 장을 미리 써 온 사람도 있었다. 제빵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한 부스는 하루 종일 북적였다.

1955~63년생을 통칭하는 베이비부머들은 고단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나 평생 일과 가족에 헌신하다 노부모까지 봉양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출산율이 최고조에 달할 때 태어났기 때문에 일생 동안 치열한 경쟁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조기 퇴직 대상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4% 정도인 7백12만명에 달한다는 통계이다.

사회적으로 이들 베이비부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그들의 은퇴가 최근 들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베이비부머 47만명이 퇴직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이들이 앞으로 10년 내 한꺼번에 경제 일선을 떠나면서 사상 최대의 ‘은퇴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무방비 상태로 준비 안 된 자 1백56만여 명

문제는 베이비부머 대다수가 은퇴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매달 월급을 받아 자녀 교육비 등 생활비로 쓰고 나니 은퇴 이후를 대비할 여력이 별로 없었던 탓이다. 평생 직장이라는 의미도 퇴색되었다. 만 55~79세 남성이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의 평균 근속 기간은 19년 7개월로 집계되었다. 30세에 취업했다면 49세에 회사를 떠난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 일한 직장을 기준으로 보면, 근로자들이 퇴직하는 시점의 평균 연령은 53세에 불과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중에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에만 의존하는 사람이 전체의 27%에 달했다. 이들은 국민연금 말고는 딱히 은퇴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을 조금이라도 가입한 사람까지 다 포함하면 78%이다. 나머지 22%인 1백56만여 명의 베이비부머들은 은퇴 충격에 대해 무방비 상태이다. 전문가들은 기대 여명이 30~40년에 달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베이비부머의 조기 퇴직은 사회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준비가 안 된 베이비부머들은 평균 은퇴 시기 이후에도 일자리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퇴직 전에 받던 임금을 기대할 수는 없다. 때문에 아예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 50대 이상 중·장년층 자영업자가 3백1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리스크는 오히려 더 커진다. 생계형 창업의 경우 경기 변화에 민감하고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다. 진입 장벽이 낮고 초기 투자금이 적게 드는 분야의 창업이 주종을 이루지만 제대로 된 직업 훈련이나 창업 교육을 받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금융결제원이 올 들어 8월까지 당좌 거래가 정지된 개인 사업자 2백여 명을 조사했더니, 베이비붐 세대가 44%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당좌계좌는 은행이 사업자에게 열어주는 전용 계좌로, 이 거래가 정지되면 사업체가 부도 났다는 의미이다. 베이비부머가 자영업에 나섰다가 부도 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2010년에는 30%였지만, 지난해에는 40%로 늘어났다. 한 창업 전문가는 “40~50대 중에서는 기술이나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킨집처럼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에서 창업하는 사례가 많다. 경쟁이 워낙 치열해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나이가 많다 보니 실패 후 재기를 꿈꾸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은 여유 자금을 많이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창업할 때 빚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대출에서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28.1%로, 8년 전인 2003년(20.4%)보다 8%포인트 정도 늘어났다.

자산 80%가 부동산…“기형적 구조” 지적

베이비부머들이 여생을 보내는 데 필요한 돈은 어느 정도일까. ‘어떻게 사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부부를 기준으로 최소 3억~4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이다. 평균 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다, 저금리 기조도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예금과 같은 금융 자산의 경우 5천여 만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통계청의 분석이다. 상당수 자산은 거주 주택과 같은 부동산에 묶여 있어 현금화하기 쉽지 않다. 퇴직 후 고정 소득이 가구당 평균 소득의 절반 이하이면 빈곤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우리나라 노년층 중에서는 45%가 빈곤 상태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부동산 비중은 약 78%이다. 미국(35%), 일본(41%) 등에 비해 크게 높다. 해마다 보유세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고정적인 소득은 창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베이비부머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면적이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 노후를 대비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베이비부머들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이들이 대거 퇴직하는 시기와 부동산 침체기가 겹친 탓이다. 보유 중인 집을 처분하지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진 경우가 많다.

더구나 중·장년층이 많이 갖고 있는 중대형 아파트값은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국민은행의 아파트 규모별 매매 가격 지수 통계를 보면, 전용 면적 95.9㎡ 이상의 대형 아파트 가격 지수는 지난해 말 100.4에서 지난 7월 첫째 주 98.8로 낮아졌다. 반면 중형(62.8?95.9㎡)과 소형(62.8㎡ 미만)은 각각 103.1에서 103.5로, 104.9에서 106.4로 상승했다. 서울만 보아도 같은 기간 대형 아파트 가격 지수는 98.4에서 95.8로 2.6포인트 떨어져 중형 -1.7포인트(99.1→97.4)와 소형 -1.3포인트(99.5→98.2)에 비해 하락 폭이 컸다.

황원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퇴직자 자산의 50~60%가 금융 자산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기형적인 구조이다. 베이비부머들이 부동산 자산을 어떻게 유동화하느냐가 노후 생활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베이비부머들은 전 세대 중에서 생명보험에 가장 많이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사망하더라도 배우자와 자녀에게 생계의 대안을 마련해주겠다는 의도에서다. 보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생명보험 가입률은 87.3%로, 다른 세대보다 평균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생명보험 중에서는 질병보험이 전체의 83.7%로 가장 많았다.

베이비부머들이 노후 설계를 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월급 이외의 고정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미 퇴직을 했거나 조만간 은퇴를 하면 더는 월급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금 등 목돈을 받았다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선 기대 여명을 계산해야 한다. 이때 보수적인 셈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평균 여명이 30년이라도, 40~50년 더 살 것으로 예상하라는 것이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연장되는 추세를 계산에 넣을 필요가 있다.

또 부동산 가격 변화를 부정적인 쪽으로 예측하는 것이 안전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집의 가격이 앞으로 오르기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얘기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급속한 고령화로 집을 매각해야 하는 노인층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주택 매입 수요는 더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출산률 저하와 청년 실업 등의 영향이다.

시장 금리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일본과 같은 ‘제로 금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연 2~3%대로 낮은 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가 정체 또는 저성장 단계에 진입한 탓이다. 변동 금리형 금융 상품을 선택할 때는 저금리 상황이 수십 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연금의 3층 구조’ 외에 탄탄한 4층 탑 구조를 쌓을 것을 조언하고 있다. 3층 구조란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연금 삼총사’를 말한다. 여기에다 예·적금이나 부동산, 펀드 등 가용 자산을 네 번째 노후 대비 수단으로 확보하라는 것이다. 황원경 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들은 개인연금 가입률이 낮은 편이고 가용 자산 역시 적다 보니 은퇴 준비를 위한 탑을 2층까지밖에 쌓지 못했다. 자녀 교육비나 결혼 자금 등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은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은 다양하다. 미국에서는 주식·펀드 등 투자 상품 위주이지만 유럽에서는 저축 상품이, 일본에서는 보험 상품이 많이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예금 위주이다. 다만 퇴직자들이 위험을 최소화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만은 만국 공통이다. 투자 상품 천국인 미국 역시 퇴직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큰 펀드에 돈을 넣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년 설계를 위한 취업 특강이 열렸다. ⓒ 연합뉴스
안정적 투자에 초점… 비과세 활용을

베이비부머들이 노후 생활을 위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는 생애 설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은퇴 후 부부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어떤 취미를 가질 것인지, 전원생활을 할 것인지, 현재 및 미래의 수입과 지출은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개별 금융 상품에 가입한다면, 세제 혜택을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금리가 조금 더 높은 수신 상품보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품이 소비자 입장에서 유리하다. 만 60세 등 일정 나이를 넘으면 비과세와 분리 과세, 저율 과세, 세금 우대를 주는 상품이 적지 않다.

만 60세 이상이 생계형 계좌로 금융 상품에 가입하면 전액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인당 3천만원 한도이다. 저축은행 등의 고금리 예금에 부부가 각자의 명의로 가입하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금리가 아무리 높더라도 3천만원 한도만큼은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어서다. 요즘 들어 영업정지를 당하는 저축은행이 많지만, 원리금을 포함해 5천만원(예금자 보호법 한도) 이하로 넣으면 안전하다.

비과세 상품은 또 있다. 녹색 전문 기업 등 친환경 자산에 자산 총액의 60% 이상을 투자하는 녹색 예금(1인당 2천만원)과 녹색 펀드·채권(1인당 3천만원)이 그것이다. 시중은행에서 ‘그린예금’ ‘그린적금’ 등의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즉시연금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즉시연금은 가입한 다음 달부터 월급처럼 연금을 꼬박꼬박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이다. 연내에 가입하면 평생 비과세이다. 금융 소득 종합과세에 포함되지 않아 절세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다. 다만 10년 이상 가입하는 조건이다. 상속이나 증여를 해야 할 때 연금이 6.5% 할인 평가되기 때문에 세금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생명보험회사에서 종신형 즉시연금에 가입하면 사망할 때까지 일정액을 받는 방식이다.

즉시연금에 가입할 때는 보험사별로 제각각인 공시 이율(적용금리)과 수수료를 확인해야 한다. 현재 보험사별 즉시연금 수령액 차이(종신형 기준)는 연간 60만원 정도이다. 시중 금리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 보증 이율이 높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즉시연금 최저 보증 이율은 보험사에 따라 연 2~3% 선이다. 다만 종신형 즉시연금에 가입하면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다. 도중에 목돈이 필요해도 인출할 수 없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넣는 형태여서 최소 가입 기준이 있다. 보험사에 따라 5백만~1억원이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은퇴 후 준비는 빠를수록 유리하지만 지나치게 재무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젊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전문적인 취미를 되살리거나 자원봉사 등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다”라고 전했다.

은퇴 이민 생각한다면 퇴직 직후에

은퇴 이민을 고려하는 베이비부머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가에 따라 생활비를 크게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이온컨설팅이 2010년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 아일랜드, 독일에서 은퇴 이후 자국에 남겠다는 비율은 전체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에 가서 연금을 쓰겠다는 것이다. 실제 영국 전국연금펀드협회(NAPF)의 조사에서 연금 생활자의 3분의 1은 은퇴 후 외국으로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전체의 46%는 “생활비가 적게 드는 나라로 은퇴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했다. 스페인에서는 지방 도시의 50세 이상 인구 중 15%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트렌드에서 비켜가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 등 동남아시아가 인기 있는 은퇴 이민 대상지이다. 일본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은퇴 이민 바람이 불었다. 동남아는 한국과의 거리가 가깝고 선진국 생활에서 압박감으로 작용하는 그들의 문화적 우월주의도 느낄 필요가 없는 곳이다. 한국에서 필요한 노후 자금의 50%만 확보하면 동남아에서는 꿈에 그리던 상류 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은퇴 이민을 생각한다면 비교적 나이가 젊을 때 실행하는 것이 좋다. 골프·여행 등 현지 생활을 마음껏 즐기려면 체력은 필수이다. 50대에 퇴직했다면, 퇴직 직후를 은퇴 이민 시기로 정하라는 조언이다. 언어·문화·기후·물가 등 모든 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만큼 사전 답사와 전문가 상담이 무엇보다 철저해야 한다.

은퇴 이민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외로움과 불안감이다. 이런 문제를 푸는 방법은 은퇴 이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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