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틀어쥐기 위해 군부 군기 잡기 나섰다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2.11.27 18: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은 체제 1년, 북한 ‘개혁·개방 후퇴설’ 들여다봤더니… 시행착오 불구 ‘6·28 방침’ 서서히 스며들어

지난해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지 1년이 되었다. 새로 출범한 김정은 체제가 향후 어떠한 경제 정책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의 대북 정책 방향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제1 비서가 평양 만수대언덕에서 조선인민내무군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만약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아버지처럼 고립주의적이고 반개혁적·반개방적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면서 제한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경제난은 앞으로도 장기간 계속될 것이고,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도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김정은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처럼 개혁·개방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비효율적인 경제 체제의 과감한 개혁과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추진한다면 북한 경제의 회복과 남북한 관계에서 좀 더 실용주의적인 재편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내각을 ‘경제사령부’로 내세우고 군부 압박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 1년. 김정은 시대 북한의 행보는 여전히 다소 불투명하다. 김정은은 지난 4월6일 담화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조선노동당의 지도 사상으로 내세웠다. 4월15일 김일성의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한 첫 공개 연설에서 선군 정치 계승 입장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28일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 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협동농장과 기업소에 더 큰 인센티브와 자율성을 제공하는 이른바 ‘6·28 방침’이 북한 내부에 공표된 사실이 알려졌다. 이러면서 북한의 경제 개혁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우리 사회에서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6·28 방침’의 전면 실시가 계속 미루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다시 북한의 경제 개혁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회의적인 전망이 또다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김정은 제1비서와 군부와의 긴장 관계를 둘러싼 이야기도 들려온다. 과연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전체 경제에서 ‘군(軍)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때문에 김정은 제1 비서의 경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이 가지고 있는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으로 이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군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의 경제 개혁 성공 가능성과 관련해 외부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이 나왔던 것은 바로 내각이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 4월께부터 내각을 ‘경제사령부’로 내세우고 군부의 외화벌이 사업 중 무기 판매를 제외한 대부분을 내각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은 올해 북한 군부의 부패 실상을 파악하고 격노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전언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6일 당중앙위원회 고위 간부들과의 담화에서 “인민 생활 향상과 경제 강국 건설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하여서는 경제 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나가는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과거에 김정일 총비서도 이처럼 내각의 권위를 세워주는 발언을 하기는 했으나, 내각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까지 충당해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각의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김정은 시대에 내각의 활동에 과거보다 확실히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최영림 내각 총리가 지난해보다 훨씬 활발하게 ‘현지료해’(현지 사정이나 형편을 살펴보는 것) 활동을 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김정은은 지난 5월14일 “군대가 너무 돈에 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하면 된다”라고도 질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6·28 방침’은 이처럼 북한 전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군(軍) 경제’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내각 경제’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확정되었다. 지난 7월15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군의 핵심 실세 중 한 명인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된 사건 또한 과거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으로 이전하는 데 대한 군부의 반발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7월10일 ‘데일리NK’는 북한이 6월 말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 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6·28 방침’을 내부에 공표했다고 밝혔다. 데일리NK가 입수한 내용에 의하면, 이 방침은 북한 당국이 협동농장과 국영 공장에 시장 가격이 반영된 생산 비용을 선(先)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앞으로 협동농장에서는 현재 10~25명으로 구성된 작업 분조(分組) 단위를 4~6명 단위로 축소·관리하고, 작업 분조에 따라 토지와 생산 비용을 할당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 각급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지(遊休地)까지 작업 분조에게 맡긴다는 계획도 들어 있었다. 이 방침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국가가 작업 분조에게 필요한 생산 비용을 ‘선지급’한다는 것과 생산비 책정이나 수확량에 대한 가격 평가 과정에서 현실적인 시장 가격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인민의 불만 나오면 정책 변경하면 된다”

‘6·28 방침’ 내용을 전한 대북 소식통은 “중요한 것은 ‘가변 가격 제정’이다. 그것은 (시장의) 현 시세에 맞게 가격을 매긴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공장기업소에도 이같은 방식이 도입되어 기업소의 경우 최초 생산비는 국가에서 ‘투자’하고, 그 돈으로 원자재를 사다가 생산·판매하게 되면 판매 수입을 국가와 해당 기업소가 일정 비율로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해당 기업소는 분배된 돈으로 기업소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이 지난 9월25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를 개최하자 대다수 전문가는 뭔가 획기적인 경제 개혁 관련 입법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는 결국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또한 ‘6·28 방침’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 개혁 실험이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자 북한은 지난 10월부터 신경제 관리 조치와 관련된 각 단위별 교양 및 시행 조치 하달을 일절 중단시켰다. 다만 새로운 경제 조치를 적용하는 생산 단위에서는 공장 기업소별로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생산 지표를 제출하고 상급 단위(내각 부서)에서 이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했다. 좀 더 신중하게 새로운 경제 조치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같은 정책 변화와 관련해 김정은은 경제 개혁에 대해 “실패해도 무방하다. 인민으로부터 불만이 나오면 정책을 변경하면 된다”라는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월 들어 북한은 마침내 일부 국영 기업에서 배급제를 폐지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등 시장경제적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의 영상 부문 계열사 APTN은 평양 인근 택암협동농장을 방문해 개인 할당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증언한 농장 관리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지난 10월18일 공개했다. 택암협동농장의 정명철 농장 관리인은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는 종자와 가축 먹이(사료), 개인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에 바쳐야 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용한 땅과 물, 국가에서 받은 농사 재료 대가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모두 농장원이 나눠 가져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조치가 북한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택암농장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은 북한이 ‘6·28 방침’의 시행 조치를 일부 단위에서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각의 부정적 시각에도, 북한 내부의 변화가 계속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