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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본질은 바보가 되는 것”

한완상 전 부총리 / “시장 탐욕 다스리는 힘은 정부에 있다”

조철 기자·정리-김미림 인턴기자 ㅣ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1.14(Mon) 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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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 진영은 대통령 선거 패배 후유증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진보 성향 국가 원로들은 선거 패배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까? 보수 후보이지만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근혜 당선인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1월9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한완상 전 부총리를 만났다. 통일원장관,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대통령 고문을 지낸 진보 성향 지도자에게 현 시국에 관한 진단과 진보 진영이 나아갈 바를 듣기 위해서였다. 한 전 부총리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싱크탱크 격인 담쟁이 포럼의 대표가 되어 선거운동에 나섰다. 한 전 부총리는 대선이 끝난 지금은 모두가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제를 바로 꿰뚫어 보고, 바로 보듬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담쟁이 포럼의 대표로서 대선 패배에 아쉬움이 크겠다.

문재인 후보는 한계가 있었다.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마지막 문항을 가지고 갑론을박한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잘못은 DJ(김대중)와 노무현을 확실하게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의 정책적 내용을 국민 가슴에 와닿도록 제시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준비 기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준비 기간뿐 아니라 진보 계열 쪽에서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우선 2013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정서만 가지고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낼 힘이 없었다. 둘째는, 이제 후보 단일화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감동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이것은 민주당 내의 한계 탓도 있지만 원로 시민 사회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을 피곤하게 하면 야단을 치든지 어떡하든지 수습을 해줘야 했는데, 대체로 눈치를 보느라 후보 단일화에 필요한 대책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2013년 체제를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대선이 끝난 뒤 노인 무임승차 폐지 서명 운동이 벌어지는 등 세대 간 갈등이 사회 문제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 선거는 아마 한국에서 세대 변수가 여타 다른 변수들보다 강하게 작용한 최초의 선거가 아닌가 한다. 이 세대 변수가 언뜻 보면 계급 변수보다도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세대 차가 주로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20대는 20대대로 자기 경제적인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꼈고, 아버지 세대인 50대는 50대대로 또 직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들의 은퇴 후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니 두 세대가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상태에서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가 다시 성과 지상주의 가치관에 매몰되었다.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써도 좋다는 편법주의가 또 번지게 된다. 이 편법주의 가치관과 성과주의 가치관이 합쳐져서, 강자만 살아남게 되고 승자 독식의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했다. 그렇게 되면, 경쟁 당사자들은 이런 가치관으로 인해 대단히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두 세대가 전혀 달랐다. 20~30대는 현 상태를 확 바꿔서 희망을 얻고자 했고, 50~60대는 안 바꿈으로써 그들의 불안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이게 쫙 갈라지는 것이다.

진보적인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기성 진보 진영이 1987년 민주화운동 체제에서 변한 것이 없다, 선악의 대결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제 진보 개혁 진영이 진지하게 자기들의 한계에 대해서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1987년 체제라고 하는 것은 시민혁명을 통해 군사 권력 체제를 종식시킨 체제이다. 시민혁명으로 바뀐 정치 환경에 알맞은 정치적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패배했다. 그 이유는 두 김씨가 후보 단일화를 못 했기 때문이다. 그 실패를 2012년 12월19일에 마땅히 극복했어야 하는데, 또 실패했다. 왜 실패했느냐? 진보 진영이 정말 반성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감동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오도록 노력하지 못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인데 졌다. 두 후보의 피곤한 경쟁을 지켜보며, 변화를 바랐던 국민은 짜증이 났다. 국민이 짜증난 데 대해서 안철수 후보는 자유로울 수 없다. 2013년 체제를 강조했던 진보 진영이 말로만 강조했지, 실제로 2013년 체제가 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는 굉장히 소홀했다. 2013년의 체제를 준비하는 역사적인 시점에서 지난 과오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민주당 내에도 부족했고, 문재인 후보는 2013년 체제가 DJ와 노무현 정부 때의 실책들을 극복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부족했다.

   
지난 1월9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는 한완상 전 부총리. ⓒ 시사저널 이종현
진보 진영이 추구해야 할 미래 지향적 태도는 무엇인가?

이 기회에 진보 진영과 개혁 진영은 말로만 진보·개혁을 외치지 말고, 실천해낼 수 있는 조직적 역량 그리고 문화적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것을 함양시키는 것에 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바보 예수>를 펴냈다. 바보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2013년에 필요한 ‘바보론’은 무엇인지 들려 달라.

굉장히 중요한, 이것이 진짜 중요한 이야기이다. 내가 말하는 ‘바보’는 우리나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리더십이다. ‘바보’는 문제를 바로 보고(꿰뚫어보고) 바로 보살펴주려는 마음을 가진 지도력을 말한다. 지금 21세기에 들어와서 전 세계적으로 당면한 문제는 1%와 99%의 양극화이다. 어느 곳에서도 대체로 1%는 아주 비정한 강자이다. 가슴이 없는, 시장을 장악하려는 비정한 강자이다. 이 1%가 지금 99%를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러면 이것을 바로 볼 줄 알아야지, 바로 딱 봐서 99%의 약자들의 아픔을 바로 보듬고 보살피려고 하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시장의 탐욕이 끝없이 분출될 때 이것을 정당하게 관리해낼 수 있는 힘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갖고 있다. 시장의 막강한 탐욕을, 공정한 잣대로 경쟁을 관리해내야 하는 것이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수임받은 공적인 의무이다. 지금은 정부가 크냐 작냐, 시장이 크냐 작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이 공정하냐 아니냐가 중요하고, 정부는 적극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1%의 횡포를 바로 보면서 99%를 바로 보듬을 수 있는 능력이 크냐 작으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바보’라고 하는 것이 21세기 모든 지도력에서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 지도력의 품성이다. ‘바보’가 리더십의 본질이다.

바보의 능력을 가진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시장을 인간적으로 만들 관리자나 지도자가 나오려면 어린 시절 교육 과정에서부터 따뜻한 마음을 갖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한국 교육이 뭔가? 초등학교에서부터 1등이 최고야, 1등을 해야만 1등 대학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회에서도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승자 독식의 가치관을 심어준다. 이것은 MB 정부에서 더 강화되었다고 본다. 세계적 기업인 고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연설했다. ‘foolish’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본다는 것인데, 우리 대기업은 돈 버느라고 순환 출자라든지 내부자 거래라든지 온갖 것을 하면서 99%가 아파하는 것을 못 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도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우아하게 패배하는 길을 정말 떳떳하고 감동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앞세우고 그것을 이용해서 1%의 권력과 특권을 더 누리려 하는 자들이 있다. 십자가는 뭐냐 하면 자기 비움의 힘이다. 자기 비움, 자기 지움, 자기 부정. 그리고 내려놓는 것,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을 높여주고, 남과 나누고, 남을 보듬고, 남을 존경해주면서 평화를 만들고 정의를 세워가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정신이다. 십자가의 의미, 비움의 의미, 낮춤의 의미를 모르는 지도자가 정책적으로도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겠는가. 지난 5년간 ‘99% 프렌들리’가 되어야 하는데 ‘1% 프렌들리’가 되었고, 이것을 새 정부가 고쳐가야 한다.

박당선인에게 대북 정책에 대한 조언을 많이 했다.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면 그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역지사지해야 한다. 남북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우선 남북 정상 간의 합의를 준수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저쪽에 설득시켜야 한다. 둘째로는 관계 개선을 위한 실용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야 한다. 주로 경제 문제이다. 지금부터라도 남북 간의 경제 협력을 남북 정상회담의 틀 안에서 좀 더 용이하게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북쪽과 함께 잘 진척시켜 나간다면 남북 관계는 파격적으로 호전될 것이다. 노무현·DJ 정부 때보다 더 잘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쫙 끼얹는 일이 있었다. 김장수 인수위 간사의 말이다. 북한을 국제적 공조로 더 옥죄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정거리 8백km 탄도미사일을 조기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을 새 정부에서 중용한다면 박당선인이 공약했던 정책들이 휴지가 될 수 있다. 인사가 만사이다. 망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햇볕 정책’ 화두를 처음 던진 것으로 아는데.

이솝 우화를 말하면서 강풍보다는 햇볕을 비춰야만 서로 변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햇볕 정책을 문민정부의 통일 정책이나 대북 정책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대선에 져서 런던에 가 있던 DJ가 그것을 존중했다. 5년 후 DJ가 대통령이 되면서 햇볕 정책을 처음으로 통일 정책으로 삼았다. 그리고 국제적인 신망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노벨평화상을 탄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자리에 동석했다. 그 장소를 장식하는 꽃이 해바라기였다. 노벨상 위원장이 하는 말이 원래 장미꽃으로 장식하는데, 해바라기 꽃으로 장식한 이유는 ‘햇볕 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정말 흐뭇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이, 그러면 남북 정상이 같이 받아야지 평화의 꽃이 한반도 전역에 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노벨평화상은 분쟁 당사국의 양쪽 최고 지도자가 같이 받는다. 만델라와 만델라를 감옥에 처넣었던 데 클레르크, 이스라엘 베긴과 이집트의 사다트가 그랬다. 싸우는 당사자들을 함께 불러서 평화를 함께 이끌어라, 이런 뜻이다. 남북의 두 김씨가 다 같이 받았으면 평화가 더 따뜻한 효과를 낼 텐데 그런 아쉬운 생각을 했다.

지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안철수 후보를 어떻게 보았나.

안철수씨가 무슨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번에 보니 안철수씨 자신이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안씨의 가장 큰 결점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기의 빛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기대와 희망임을 그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안씨는 그 빛이 내 것이다, 즉 자기가 발광체라고 착각한 것 같다.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인데….

대학 교수를 지낸 분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세 가지이다. 하나는 국가가 청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특히 평생 학습 기회를 확대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는 20세기와 달라서 평생 배우지 않고서는 시장과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적합한 지혜와 지식을 계속 얻기 힘든 시대이다. 21세기는 이른바 ‘LLL(Life-Long-Learning)’의 세기이다. 대학 4년 간 배운 것만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계속 배워야 한다. 둘째로, 교육 비용을 국가가 확 줄여주어야 한다. 셋째로, 국가가 취업 기회를 확대시켜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취업 기회라는 것이 정부의 여러 기관에 나눠져 있어서 책임질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것을 제안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는 취업창조청을 만들기를 바란다. 청년들에게 평생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확대해 주면서 그들의 취업 기회도 계속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를 담당하는 국가의 주부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꼭 ‘SKY’에 가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에서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다만 이들의 창의력 신장을 위해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그 어느 때보다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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