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불안 심리 악용 배 채우는 대학들
  • 조철 기자·유호 인턴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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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전형료 장사 가관…당국은 뒷짐만

경기 성남시 경원대학교가 있었던 자리에 가천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 학교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떠올리게 만든다. 우선 도로 옆에 들어선 웅장한 학교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전철 가천대역에 내려 학교 입구로 올라가다 보면 로마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방문객을 압도하는 이 건축물들을 만든 배짱과 여유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 대학 입학 전형 기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가천대는 입학 전형료 수입으로 매년 건물 하나씩 올린다”라는 말들이 나도는 것이었다. 대학 설립자의 공이라 생각하고 넘기려던 참에 소문을 듣자 씁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대입 전형료 수입과 관련한 잡음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었다.

해마다 전형료 수입·지출 내역과 관련해 구설이 퍼져나오고, 학부모의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진다는 지적까지 잇달아 제기되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중순 교과부에서 대입 전형료와 관련해 제도를 손보겠다며 입법 예고를 발표했다. 2013학년도 대입 현장에서는 ‘전형료 장사’라는 오명이 지워질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선을 치르는 동안 한 후보의 공약에서도 ‘공약(空約)’ 하나가 올랐다가 현실성이 없다며 사라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2013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또다시 ‘전형료 장사’판이 펼쳐졌고,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더한 ‘상술’까지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인·적성 시험을 수시 전형에 도입한 학교 수도 크게 늘어났고, 수시 전형을 형태만 살짝 바꿔 두 기간으로 나누는가 하면, 그와 마찬가지로 정시를 두 기간에 나눠 모집하는 전문대까지 늘어났다. 복수 지원을 늘려 수험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겠다는 당국의 ‘감읍할 따름’인 방침에 각 대학이 잔치를 벌이는 꼴을 연출한 것이다. 많은 수험생이 안전한 지원을 한다며 여기저기 몰려가고, 한 곳이라도 붙어야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집 요강을 보지도 않은 채 복권 사듯이 지원할 것이라는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서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교정을 나서고 있다. ⓒ 뉴시스
한 학생당 100만원 안팎 써

취재를 하면서 보니 불안한 중위 혹은 중하위 성적권의 수험생들을 ‘유혹’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집 요강들이 눈에 띄었다.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낮추는 대신 인·적성 시험 결과를 90% 반영해 선발한다는 모집 요강을 내세우는 대학도 보였다. 수시 전형에 지원해 합격하면 정시보다 장학금 혜택이 더 주어진다고 홍보하는 대학들도 있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다양한 전형에 맞춰 입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학교에 떨어질 것이 분명해도 일단 넣고 보자는 식인 것이다. 적성고사를 치르는 수시 전형에 지원했다는 한 학생은 “한 장짜리 사지선다형 시험으로 수천 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고작 20여 명을 고르는데, 변별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조금만 반영한다는 학생부 성적이 기준이 되지 않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4년제 대학의 수시 전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문대학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했다. 전형료는 조금 싼 3만~5만원 수준이지만, 환불 규정도 없고 지원 횟수도 무제한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 불안한 수험생들 중에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10여 곳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전문대학의 지원률 또한 해마다 상승 일로였다. 취업이 잘된다는 인기 학과의 경우, 10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는 곳도 있었다.

선택의 폭 넓혀준 캠퍼스에 ‘돈 비’

이번 대입 수시 전형부터 추가 합격을 시행해 기대감을 키운 덕에 수시 전형 경쟁률을 높였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예비 번호를 받아 추가 합격한 수험생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대학교마다 기준을 정했는지, 예비자 중에 학력 수준(내신 등급)이 낮은 경우 합격시켰다가 인터넷 등에 소문이 나면 학교 수준이 떨어진다며 충원하지 않고 정시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인지 소문이 돈 대학교에 전화해 확인했지만 돌아온 답은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입시 전문가는 수시 미등록 인원만큼 정시 모집 인원이 늘어나면 지원자도 몰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수를 하지 않는다면 일생에 한 번 치르는 대입 응시라 100만원을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으로 내려가면 이것은 부담 정도가 아니라 가혹한 세금 물리기나 마찬가지다. 기초생활수급자 집안의 자녀에게는 그 짐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대학교육협의회도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대학 자율’과 ‘형평성’을 들먹이고, 서류 확인 절차 등에 또다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학교측 부담 증가를 고려해 강제하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교과부 대입제도과 관계자는 “저소득층 자녀에 대해 감액이나 면제를 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개별 대학에 강제할 수는 없는 사항이다. 법령에도 감액 대상자 선별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기본적인 방침으로 사회 배려 대상자를 점차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식으로 대학들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환불에 대한 규정을 만들려고 해도 입시 기간이 짧아 강제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어 적극적으로 권고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입시 지도한 현직 교사 “‘묻지 마 지원’ 방관하는 제도 개선해야” 

<시사저널>은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수차례 입시를 지도한 현직 고3 담임교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대입 전형료에 대한 부담과 불투명한 대입 전형의 불만, 입시 지도의 고충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수시 전형 때 평균적으로 얼마나 지원하나?

많이 넣는 학생은 10~12군데나 지원한다. 순수 원서비만으로 한 번에 60만원이 빠져나간다. 일반 가정 월급에서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경우는 수급비 대부분이 원서비로 나가는 꼴이다. 실제 지도했던 학생 중 기초생활수급자 학생이 100만원을 들여 원서를 썼고, 다행히 한 군데에 붙었다. 돌려받은 전형료는 없었다.

교과부가 올해부터 수시 지원을 6회로 제한했는데, 실제 효과는 있었나?

6회 제한이 없던 2011년도에 학생 1인당 평균 지원 건수가 5.4건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사실 5.4건과 6건이 별 차이 없으니 대학에서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대학들이 전형료 장사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서울 소재 대학들 중 수익이 적은 대학이 6억 정도라 들었다. 그러면 그 대학은 6억원만큼 내년도 전형료를 깎아줘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낮추지 않으니 대학들이 그 차익만큼 전형료를 통해 장사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학들은 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수익이 많은 학교는 몇십억이나 된다. 기본적으로 책정된 전형료 가격 자체가 너무 높다.

대학들이 실시하는 수시 전형의 또 다른 문제점은?

논술이나 적성고사 같은 경우 학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다. 성적이 되지 않아도 특정 전형만으로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작용해 ‘묻지 마 식 지원’을 하게 된다. 실제 6회 제한 실시 이전에, 논술이나 적성고사 전형은 경쟁률이 100대 1을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어느 정도인가?

사실 기회균등전형제도를 제외하고는 배려가 적다. 이 제도도 뽑는 인원이 워낙 적은 만큼 경쟁이 너무 치열해, 일반 수시 전형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가야 하니 비싼 전형료를 부담해서라도 많이 지원할 수밖에 없다. 기초생활수급자가 가장 큰 문제인데, 실제로 내가 지도했던 학생 중 한 명은 전형료에 큰 부담을 느껴 수시 지원을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교육 당국이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는 대비책으로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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