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디젤’이야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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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 시장 잡아야 강자…수입차 ‘파상 공세’, 국산차 ‘눈치작전’

문제는 ‘디젤’이다. 디젤 시장을 잡아야 소비자를 잡을 수 있다. 현재 국내 자동차 시장 구조는 디젤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젤 모델의 선전은 특히 수입차들을 위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10대 중 7대는 디젤 엔진을 달고 나온 모델이다. 수입차들은 디젤차 라인업을 늘리며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국내 브랜드들은 나름의 디젤 모델을 개발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디젤 모델이 각광받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연비 문제이다. 고유가로 인해 연비 수치가 어느새 차를 판단하는 중요 스펙이 되었다. 디젤차는 휘발유보다 보통 100원 이상 값이 싼 경유를 연료로 쓴다. 경유는 값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효율도 좋아 같은 양으로 가솔린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배경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이다. 한때 사람들은 ‘디젤차’ 하면 트럭을 연상시켰다. 디젤은 연비는 좋지만 정숙성은 취약하다. 달달 거리는 소리 때문에 승용차에는 잘 쓰이지 않았고 트럭이나 승합차 등에만 디젤 엔진이 탑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BMW가 ‘20d’ 엔진을 5시리즈와 3시리즈에 달고 한국 시장에 데뷔시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고급 브랜드 BMW가 승용차에 디젤을 달고 나왔는데 소음도 적고 연비도 좋더라’라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는 수입차 시장이 활성화되는 데 큰 몫을 했다. ‘좋은 차’는 ‘조용한 차’라는 등식이 점차 깨져갔고 휘발유보다 큰 힘을 내는 디젤 모델 자체를 선호하는 사람도 늘어갔다. 그렇게 한국 시장은 디젤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수입차 업체는 디젤 모델 라인업을 늘리며 시장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의 변신은 한국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수입차 브랜드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만하다. BMW는 2011년 처음으로 가솔린차보다 디젤차를 더 많이 팔았다. 그 후 격차를 크게 벌려가고 있다. 아우디는 지난해부터 디젤차 판매량이 가솔린 모델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벤츠는 그동안 독일차 브랜드 중 유일하게 국내 시장에서 가솔린차를 많이 팔았다. 대표적 히트 모델인 E클래스가 휘발유 모델 위주로 나왔기 때문이다. 2012년 국내 시장에서 판매된 벤츠 중 디젤 모델은 33%에 그쳤다. 그런데 최근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지난 1월 판매 수치를 보면 디젤 모델이 가솔린 모델을 오히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벤츠가 최근 출시한 디젤 쿠페 모델 The new CLS 슈팅브레이크(왼쪽)와 포르쉐 카이엔S 디젤 모델(오른쪽).
벤츠 “시장 변화 맞춰 디젤 라인업 늘려”

메르세데스 벤츠는 최근 의미 있는 신차 모델을 연달아 내놓았다. BMW 520d가 인기몰이를 하기 전까지 수입차 판매 부문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E클래스의 4륜 모델 E250 CDI 4MATIC과 왜건형인 ‘The new CLS 슈팅브레이크’가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모델 모두 ‘디젤’형이라는 점이다. 특히 E250 CDI 4MATIC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한국 시장에 맞게 적응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올겨울은 수입차에게 고난의 시기였다. 전륜 구동이 주를 이루는 국산차와 달리 수입차에는 후륜 구동 방식이 많아 눈길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독일차 3형제(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중 특히 벤츠가 눈길에 약한 이미지로 부각되었다. 아우디는 특유의 콰트로 기술(4륜 기술)로 ‘눈길에는 아우디’라는 명성을 지켰다. BMW는 자사 4륜 기술인 ‘엑스드라이브’로 ‘눈길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슬로건을 스키장 광고판에 내걸었다. 이 두 형제가 ‘4륜 마케팅’을 내놓는 사이 메르세데스 벤츠는 상대적으로 눈길에 약하다는 인식이 소비자 사이에 퍼져갔다. 이번에 출시된 4륜 세단 E250 CDI 4MATIC은 한국 시장 성공의 키워드인 ‘디젤’과 ‘눈길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모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4MATIC은 2륜에서 4륜으로 전환하지 않고 전륜과 후륜에 항시 일정한 구동력을 전달하는 최첨단 방식이다. 여기에 독일 본사에서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한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 한국 시장 수요에 맞게 진화한 E클래스의 출현으로 현재 수입차 시장의 절대 강자 BMW 520d의 입지가 위협당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출시된 쿠페 모델 The new CLS 슈팅 브레이크도 디젤 모델이다. ‘슈팅 브레이크’는 사냥을 다니는 사람들의 장비를 싣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명칭이다. 섹시함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벤츠의 한 관계자는 “예전부터 거의 모든 라인업에 디젤을 갖추고 있었지만, 최근 디젤 수요가 많아져 더 다양한 라인업으로 디젤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디젤 모델 도입은 ‘슈퍼카급’에도 예외가 아니다. 포르쉐 카이엔S가 대표적이다. 포르쉐  카이엔 디젤은 지난해 수입차 디젤 SUV 모델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동안 디젤 차량들은 초반 가속은 빠르지만 고속 주행에서는 가속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근 추가로 도입된 포르쉐 카이엔S 디젤 모델은 이런 지적을 비웃는다. ‘슈퍼카급’답지 않게 10km/ℓ라는 두 자릿수 연비를 내며 최고 속도 2백54㎞/h로 달린다. 3백82마력의 성능을 발휘하며 최대 토크는 무려 86.7kg/m이다. 중형차 2대의 힘이다. 4인 가족이 무리 없이 탈수 있고 고연비의 고성능을 갖춘 포르쉐 카이엔S 디젤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하면서도 때로는 달리고 싶은 남자의 로망을 동시에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모델이다.

한편 국산차 메이커들도 디젤 모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언제 시장에 내놓을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르노삼성은 현재 SM5의 수출용 모델 ‘래티튜드’에는 2.0 디젤 엔진을 얹어 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역시 말리부 디젤 모델을 생산해 올 1분기 시장에 내놓으려 했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해 뒤로 미루었다. 한국GM의 한 연구원에 따르면 “언제 출시할지는 알 수 없지만 공장 내에서 테스트 모델은 돌아다니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국GM 관계자는 “구체적 판매 시기가 언제일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개발은 어느 정도 되었으며, 준비는 하고 있는 단계이다”라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제네시스 디젤 출시 소문이 있지만 아직은 사실무근이고, 일단 아반떼 디젤 모델로 시장 변화에 대응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브랜드들이 이처럼 중형 디젤 시장 출시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애써 개발한 모델이 타이밍을 잘못 잡아 흐지부지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신차 출시에는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 시장 주도권을 갖고 있는 곳의 출시 시기 등과 겹치면 소비자에게 제대로 인식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델을 제대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해 최적의 출시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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