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방통대군’ 납시오
  • 원성윤│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13.04.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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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측근 이경재 전 의원 방통위원장 내정 논란

박근혜 정부의 첫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에 친박계 4선 의원 출신인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이 내정됐다.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MB(이명박) 정부 시절의 최시중 전 위원장에 이어 다시 대통령 측근 인사가 방통위 수장에 지명된 데 대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 관련 업무 소관이 핵심 쟁점이 됐던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간 날카로운 대치 정국이 겨우 수습된 마당에, 다시 방통위원장 문제가 정국 대치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5대부터 18대까지 4선 의원을 지낸 이경재 후보자는 대표적인 친박계 중진이다. 대통령 측근이며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최시중 전 위원장과 닮았다. 야당과 언론시민단체에서는 그동안의 이 후보자 발언에 나타난 성향을 바탕으로 향후 정국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이 후보자는 2011년 3월 같은 언론사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이 코너에 몰리자 “최측근이기 때문에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주장인데, 지금 미국의 전 위원장 둘, FCC(미국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 둘, 그리고 현재의 위원장도 과거에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며 적극 방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1년 11월8일 한나라당 의원 시절 같은 당 김영선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이경재 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동아일보 비판 무마용 인선’이라는 말도

이 후보자는 18대에서는 국회 문방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미디어법 처리를 주도했다. 2009년 7월 직권상정에 회의적이던 박근혜 당시 의원을 설득해 미디어법 처리를 성사시킨 주역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3월25일 낸 논평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방송 정책 전반을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로 이관해 정부의 방송 독립성 침해를 합법화하려는 방송 장악용 정부조직법 원안 통과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측근 인사를 통해 방통위를 장악하는 것으로 방식을 선회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역시 “현행 방통위 설치법은 정당의 당원을 방통위원의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의원으로 4선을 지냈고, 박근혜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던 이 후보자가 일시적으로 당적을 버렸다고 해서 ‘당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꼼수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은 “‘제2의 방통대군’ ‘방송 장악 시즌2’를 막는 데 주력하겠다”며 향후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예고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3월26일 “미디어 악법 날치기 주역인 이 후보자에게서 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공영성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방송의 중립성·공영성 회복을 위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지 않도록 인사청문회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12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하기 위해 최시중 방통위원장(왼쪽)과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방통위와 미래부 관할 둘러싼 갈등 불가피

험난한 인사청문회가 예고되고 있음에도 박 대통령이 굳이 측근을 방통위원장으로 앉힌 데 대해 최근 동아일보의 박근혜 정권 비판 논조를 의식해 이런 기류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는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 후보에 대해 검증의 칼날을 매섭게 들이대며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아들 병역 문제, 위장전입 의혹 등 결정적인 연쇄 보도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허태열 비서실장 후보자의 병역 의혹과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 후보의 로비 주선 논란, 사회 지도층 성접대 동영상 파문 등 날 선 보도로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김용준 총리 후보자 낙마 때는 동아일보를 염두에 두며 “신상 털기 식 검증은 문제가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동아일보는 곧장 “노무현 정부 때 고위 공직자 4명이 도덕성 문제로 중도 하차했던 시기에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당선인은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을 특히 강조했다”고 맞받아쳤다. 이 때문에 민주당 대변인실에서도 3월25일 논평에서 “특정 언론사를 겨냥한 비판 무마용 인선이라는 말이 항간에 나돌 정도”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방송·통신 경험이 없는 이 후보자가 방통위를 잘 컨트롤하고, 미래부와 공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래부와 방통위의 업무 분장이 아직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탓이다. 여야는 협상 46일 만인 지난 3월1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으나, 합의문 해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 탓에 본회의 처리까지 닷새가 걸렸다. 이후 열린 방통위 인사위원회에서는 직원들의 미래부 이동과 방통위 잔류를 놓고 잡음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미래부와 방통위가 본격 출범한 뒤에도 관할 업무 조정을 두고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도 미래부와 방통위의 업무 분장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상황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고위 관계자는 “방송과 통신에 대한 이해 없이 정치적 협상으로 방송을 유료 방송과 무료 방송으로 단순히 나눠먹기 한 결과”라며 “사전 동의라는 제도가 명시돼 있지만 독임제 부처인 미래부와 여당이 다수를 점한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협의라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지상파 재송신 분쟁이다. 2008년 7월 한국방송협회가 케이블TV방송협회에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신호 재송신 중단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재송신 분쟁은 5년 동안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재송신 대가 산정을 두고 지상파와 케이블 업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2011년부터 세 차례나 지상파 송출이 중단되는 ‘블랙아웃’ 사태까지 겪었지만,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방통위는 속수무책이었다.

문제는 재송신 갈등이 여전히 시한폭탄이라는 점이다. 법원은 지난 2월 지상파 방송 3사가 현대HCN과 티브로드를 상대로 낸 신규 가입자에 대한 지상파 재송신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4월11일까지 이들 SO와 지상파 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블랙아웃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쪼개진 주파수 정책도 혼란을 부추길 여지가 크다. 개정된 정부조직법과 전파법에 따라 방송용 주파수는 방통위, 통신용 주파수는 미래부가 관리한다. 신규·회수 주파수는 국무총리실에 신설되는 주파수심의위원회가 분배 및 재배치 권한을 갖는다. 관할 부처가 세 군데로 나뉜 탓에 신규·회수 주파수를 재분배할 때마다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집권 초 1년 동안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 그리고 미래부와의 공조 체제를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가 향후 방통위의 행보를 가름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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